Magda의 질문은 자신이 먼저 한국에 올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Magda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저의 여름휴가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본인이 먼저 한국에 오고자 했습니다. 나중에 Magda가 한국에 왔을 때 그 이유를 듣게 되었습니다. Magda는 다음 여름휴가까지 남은 8개월이라는 긴 시간 속에 이 관계가 흐지부지될까 봐 두려웠다고 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만나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싶었다고도 했습니다. 아무리 두려웠다고 한들 Magda에게 이 결정은 그야말로 '미친 짓'에 가까웠습니다. Magda 본인이 실제로 이 결정을 미친 짓(crazy thing)이라고 표현했습니다. Magda는 일평생 브라질을 떠난 적도 없고, 심지어 상파울루에서 산 몇 개월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일생을 노바 유로파(Nova Europa)라는 작은 도시에서 보냈습니다. Magda는 엄청나게 내향적이며 새로운 것에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또한 그녀는 완벽주의자에, 계획 없이는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이 온라인으로 알게 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한국에 오겠다는 겁니다. Magda의 바람이 실현될지 당시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 관계에 대한 Magda의 진심이 느껴져 저는 참 좋았습니다.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세 달간의 경비를 묻는 Magda의 질문에 저는 최소한의 경비만 계산하여 답해주었습니다. 저는 만약 Magda가 먼저 한국에 올 수만 있다면 Magda가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필요한 모든 경비를 기쁜 마음으로 지불할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이 모든 리스크를 짊어진 한 여인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습니다. 이제 Magda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한국행 항공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항공권을 준비하는 것조차 Magda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Magda는 동업자와 함께 헬스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제법 잘 되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영업에 직격탄을 맞게 되었습니다. 경제난에 허덕이던 Magda는 아르바이트로 한 자동차 정비소의 회계를 관리하며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한국행 항공권의 가격을 고려해 봤을 때 Magda에게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8월이 되어 제가 먼저 브라질에 가는 것이 현실적이면서도 유일한 방법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 일어나야 할 일들은 어떻게든 일어나나 봅니다. Magda의 열망을 알아차린 친언니와 외할머니가 Magda를 도와주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렇게 Magda는 가족들의 재정적인 도움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항공권을 예약한 날 Magda는 십 대 소녀처럼 기뻐하며 제게 항공권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항공권에는 출발 날짜와 도착 날짜가 선명하게 적혀있었습니다. 도착 날짜는 한국 시간으로 2023년 2월 8일이었습니다.
Magda가 한국에 오기 전까지 Magda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재미있는 책이라고 발견한 것처럼 서로의 인생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한없이 넓고 또한 깊어졌고, 그러는 와중에 Magda를 향한 저의 마음도 무한히 확장되어 갔습니다. Magda는 제가 꿈에 그리던 완벽한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Magda가 누구에게나 좋은 여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 부분을 명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Magda는 '현태'라는 퍼즐의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일 뿐입니다. 만약 다른 퍼즐이라면 잘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기존에 있던 퍼즐까지 다 부숴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이쯤에서 여러분들이 Magda와 저와의 관계를 잘 이해하실 수 있도록 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봐야겠군요.
우리의 관계 초반에 Magda가 좋은 질문을 한 덕에 우리는 서로의 성격을 금방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Magda는 제 결점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저는 이 질문이 참 좋았습니다. 언어는 그것을 보거나 듣는 사람에게 고유한 의미를 갖게 하는데, 저에게는 이 질문이 관계에 있어서 굉장히 본질적인 무언가를 물어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결점은 피나는 노력으로 없애거나 숨길 수 있지만, 갖은 노력을 다 해도 없애거나 숨길 수 없는 결점도 분명히 존재하는 듯합니다. Magda의 질문으로 판단해 보건대 Magda 또한 저와 같은 믿음을 가진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호기심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던 질문이지만 저는 이 질문에서 Magda와 관련한 세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Magda는,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다.
Magda는, 만약 내가 그녀의 가치관에 반하는 결점을 가지고 있다면 이 관계를 끝낼 사람이다.
Magda는, 내가 가진 결점이 심각한 것이 아니라면 나를 있는 그대로 포용할 사람이다.
이 질문의 무게를 실감하고 나니 가볍게 답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진지하게 고민한 뒤에 답했습니다.
1. 저는 예민합니다.
2. 저는 지나치게 생각이 많습니다.
3. 저는 어린아이처럼 너무 많은 것들에 관심이 있습니다.
4. 저는 일하는 것을 사랑합니다.
5. 저는 저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가 가진 무수히 많은 결점 중에 고르고 골라 가장 본질적인 것들을 이렇게 다섯 가지로 추렸습니다. 이제와서는 한 가지 더 추가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와 함께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Magda에게 한 줄 더 추가해 달라고 하면 Magda도 아마 같은 말을 할 것 같습니다.(방금 실제로 글을 쓰기 전에 물어봤는데 역시나 이렇게 답변하는군요. 웃겨 죽겠습니다.)
6. 저는 고집이 셉니다.
이 결점들은 혹처럼 나에게 거추장스럽게 달린 것이라기보다는 팔이나 다리처럼 나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이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여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 결점들은 나의 일부라는 점에서 가히 본질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이제 이 본질들이 Magda의 본질과 충돌하지 않는지 확인할 차례였습니다. 본질로부터 충돌하는 관계는 절대로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속되더라도 너무나도 많은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악담을 퍼붓고 떠나간 전 여자 친구를 기억하시나요? 그녀와 저는 많은 부분에서 충돌했습니다. 저의 결점들은 끊임없이 그 친구에게 상처를 남겼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에게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겁니다! 제가 아무런 의도 없이 한 말과 행동들이 뾰족한 화살이 되어 그녀에게 날아갔습니다. 때로는 저의 존재 자체가 그녀에게 해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제가 가진 결점들이 Magda에게는 달리 해석되는 듯합니다.
1. 저는 예민합니다.
- 현태는 섬세합니다.
2. 저는 지나치게 생각이 많습니다.
- 현태는 사려 깊고 진지합니다.
3. 저는 어린아이처럼 너무 많은 것들에 관심이 있습니다.
- 현태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합니다.
4. 저는 일하는 것을 사랑합니다.
- 현태는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있습니다.
5. 저는 저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 현태는 독립적입니다.
6. 저는 고집이 셉니다.
- 현태는 고집이 더럽게 셉니다.
하나는 여전히 똑같군요. Magda가 말하길, 다른 건 몰라도 저의 고집 하나는 알아줘야 한답니다. 하하하...
이처럼 삶의 모든 것은 '해석'입니다. 저의 예민함을 누군가는 섬세함으로 해석합니다. 나의 결점이 누군가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고, 심지어 장점이 되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일의 경이로움입니다. Magda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우리의 관계는 오늘날과 판이하게 달랐을 겁니다. 매우 높은 확률로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Magda가 현태라는 퍼즐의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이 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 조각은 지구 반대편에 있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나타나 저의 퍼즐을 완성시키려고 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