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2월 8일이 되었습니다. Magda는 이미 지구 반대편에서 제 품으로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경유지에 머무르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20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대장정이었습니다. Magda에게 이 여정은 위대한 도약이었습니다. Magda는 출발하기 전 며칠 동안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계속 설사를 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Magda는 이 기나긴 여정이 너무 무서워서 다 관둬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agda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용기 내 그 음성을 따랐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 데미안에 아주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Magda는 기존의 세계를 깨뜨리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신에 의한, 신을 향한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Magda는 인천국제공항으로 도착할 예정이었습니다. 저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직접 Magda를 맞이하기 위해 하루 휴가를 냈습니다. 오랜만에 멋도 좀 부려봤습니다. 좋아하는 옷을 입고, 평소에는 뿌리지 않던 향수까지 뿌렸습니다. 집을 나서기 전 거울 앞에 선 제 모습이 제법 그럴싸해 보였습니다. 여기저기 긁히고 부서진 차가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Magda가 이런 것에 큰 가치를 두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운전석에 앉아 드디어 인천국제공항으로 떠날 준비를 다 마치고 나니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았습니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페달을 밟아 어두컴컴한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습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랬고, 햇살은 한 겨울임에도 더없이 따사로웠습니다. 온 세상이 우리의 만남을 축복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한 시간 이상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인천공항까지 두 시간 넘게 운전하면서도 그저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 터미널, 그리고 역은 참 낭만적인 곳입니다. 만남의 기쁨과 헤어짐의 아쉬움이 뒤엉킨 이곳은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오늘 공항은 제게 만남의 장소입니다. 그것도 국경을 뛰어넘은 만남입니다. 제 마음은 벌써 방망이질을 시작했습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하고 국제선이 도착하는 곳으로 기쁨의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Magda가 사전에 보내준 일정표를 확인해 Magda가 탄 비행기를 확인했습니다. 전광판을 보니 도착까지는 한 시간 남짓 남은 듯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비즈니스 파트너, 손님 등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게이트는 이미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한 남자입니다. 저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Magda를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서서 Magda를 기다리고 있으니 여러 생각이 오고 갔습니다. 내 모습에 실망하면 어쩌지? 키스를 해야 하나, 포옹을 해야 하나? 아니면 악수를 해야 하나? 나는 반가운 내색을 잘 못하는데 어떡하지? 마땅히 할 말이 없으면 어떡하지? 온갖 걱정을 하며 저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도착할 시간이 이미 지났는데 Magda와 연락이 닿지 않으니 더 긴장됐습니다. 게이트가 열릴 때마다 수많은 인파가 쏟아져 나오는데 거기에 Magda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Magda가 나오지 않아 입국 심사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걱정하던 와중에 Magda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Magda는 잘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줄이 너무 길어 한참 걸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쨌든 Magda는 인천국제공항 안에 있었습니다. 저기 앞에 보이는 게이트 너머 어딘가에 지구 반대편에서 저를 만나러 오는 위대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제 계획은 Magda가 게이트에서 나올 때 동영상으로 그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Magda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Magda에게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은 지 한 시간이 넘었습니다. 여전히 게이트는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며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게이트가 열릴 때마다 아찔한 설렘을 느끼며 Magda를 찾았지만 Magda는 끝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조금 피로해져 잠시 앉아있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잠깐 앉아서 Magda에게 언제 오냐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는데 낯설지만 뭔가 익숙해 보이는 여자가 제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Magda였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만났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영상을 남길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좋았습니다. 우리는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진 짐을 다 내팽개치고 서로에게 달려가 서로를 와락 끌어안는 모습을 상상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저 또한 그런 상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우리의 경우는 조금 달랐습니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만남에 멋쩍은 웃음을 주고받았고 어색하게 서로를 끌어안았습니다. 오랜 비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Magda에게는 좋은 향기가 났습니다. 저는 Magda 또한 제게서 좋은 향기를 맡았기를 바랐습니다. 저만의 느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어색함이 우리 사이에서 계속 감돌고 있었습니다. 일평생 저에게 여자는 외계인처럼 대하기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더군다나 제 눈앞에 있는 여성은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외계인 그 자체였습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제가 당시에 무슨 말을 했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명확하게 기억나지도 않습니다. 커다란 캐리어 세 개가 가지런히 놓인 카트를 Magda 대신 열심히 밀며 아무 말 없이 주차장으로 걸어간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있습니다. 수많은 인파를 뚫고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Magda의 짐을 차에 싣고 우리는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이로써 세종시로 돌아갈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