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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7 - 변화의 바람

by 정현태

바퀴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고, 차 안에는 적막이 흘렀습니다. 낡은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만 이따금씩 우리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우리가 텍스트를 주고받을 때나 수다쟁이였지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텍스트를 주고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제가 시답잖게 배고프지는 않냐, 피곤하지는 않냐고 물었고 Magda는 짧게 답변했습니다.(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Magda에게는 제가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사람처럼 너무나도 편안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창밖으로는 주홍빛 저녁놀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Magda는 핸드폰을 꺼내 들어 사진을 찍고, 영상도 찍었습니다. Magda가 다른 데 주의를 쏟으니 저는 그제야 긴장을 조금 풀 수 있었습니다. 그때 기어봉을 감싸고 있던 저의 손에 따듯한 무언가가 포개졌습니다. Magda의 손이었습니다. Magda는 피부에서 피부로 전해지는 온기를 통해 저에게 긴장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부담감과 긴장감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영하의 날씨로 한겨울이었고 Magda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추위에 몸을 떨었습니다. 저는 집에서 챙겨 온 두꺼운 점퍼를 Magda에게 건넸습니다. 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마음만은 함께였습니다.


도로 위에서 한참을 달리다가 밥때가 되니 허기가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잠시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따듯한 차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엄청난 추위가 엄습해 왔습니다. 얼어붙은 날씨에 바람까지 더해져 한국 사람인 저도 몸을 움츠릴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서로 꼭 붙어 온기를 나눴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우리는 간단한 요기만 하고 저녁은 집에 도착해서 편하게 먹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휴게소 간식 중에 Magda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호두과자를 조금 샀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호두과자를 Magda 또한 좋아해 주길 바랐습니다. 호두과자는 방금 구웠는지 따끈따끈 했습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우리는 다시 자석처럼 꼭 붙었습니다. Magda의 표정을 보니 난생처음 경험하는 강추위에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추위에 떨며 후다닥 차로 돌아온 우리는 벨트를 채우고 다시 출발 준비를 마쳤습니다. Magda가 호두과자 하나를 입에 넣더니 맛있다고 했습니다. 예의상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Magda는 호두과자를 오물거리며 제 입에도 하나 넣어주고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세종에 도착했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주차장은 무수히 많은 차들로 빈틈없이 꽉꽉 차 있었습니다. 주차 공간을 찾아 한참을 헤맨 뒤 알맞은 곳에 주차하고 Magda의 짐을 챙겨 드디어 집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꼭 안아준 뒤 입술을 포개 첫 키스를 나눴습니다. 두 달간의 랜선 연애 끝에 우리는 드디어 같은 시공간에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꿈속을 헤매는 듯 정신이 혼미했습니다. Magda는 간단히 짐을 정리했고, 브라질에서 챙겨 온 몇 가지 선물도 제게 건넸습니다. 선물 중에는 브라질 국기가 새겨진 쪼리가 있었는데, 이 신발은 여전히 제가 가장 즐겨 신는 신발입니다. 대강의 짐정리를 끝낸 Magda는 샤워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고, 잠시 후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책상에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이 삶이 정말로 진짜인가 의심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간의 현실과 너무나도 달랐고, 이것이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너무나 특별했습니다. 생전 처음 본 브라질 여인이 제 방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Magda가 샤워를 끝내면 먹을 수 있게 한국 음식 하나를 주문해 놓았습니다. Magda에게는 한국에 와서 제대로 먹는 첫 식사가 될 터였습니다.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많이 있지만 실패 확률만 놓고 봤을 때 이것만큼 낮은 것이 없습니다. 바로 치킨이었습니다. 저는 절대 실패할 수 없는 한국 음식을 Magda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작전은 성공이었습니다. Magda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치킨이라는 것을 먹어보는 어린아이처럼 치킨 조각들을 야무지게 해치웠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저는 내심 뿌듯했습니다. Magda는 엄청난 여정 때문에, 저는 장거리 운전 때문에 몹시 피곤했는데 저녁을 먹어 배까지 부르니 온몸이 녹아내릴 듯 노곤해졌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Magda는 가족에게 전화하여 한국에 안전하게 잘 도착했다고 알렸습니다. 생전 처음 듣는 포르투갈어가 집안에 울려 퍼지니 굉장히 신기하면서도 낯설었습니다. 이제는 현실을 자각할만했지만 저는 여전히 이 모든 것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Magda가 가족과 통화를 하는 동안 저는 샤워를 끝냈습니다. 어느덧 잘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침대 위에 누웠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이제 우리가 멜로영화 속 한 장면처럼 흥분의 도가니 속에 서로의 옷을 허겁지겁 벗겨버리고, 온갖 신음과 땀으로 범벅된 열정적인 섹스를 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섹시하기보다는 귀여웠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고장 난 장난감처럼 삐그덕 거렸습니다. 우리는 마치 해야 할 숙제를 하는 것처럼 사랑을 나눴습니다. 분명한 건 우리가 훌륭한 학생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우리는 하이틴 영화 속 소년소녀처럼 서툴렀고, 그 끝은 조금 어색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날 저는 늦은 밤까지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였습니다. 고요했던 삶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무엇 하나 명확한 것이 없었습니다. Magda의 마음은 물론이고 나 자신의 마음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하루의 양상이 예상과 너무 달랐습니다. Magda와 저와의 관계 사이에 불타는 무언가가 있나 의심스러웠습니다. 우리 사이의 어색함은 어느 정도 누그러졌지만, 우리 사이에 놓인 언어 장벽은 크고 또한 높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가깝지만 멀리 있는 듯했습니다. 평소 혼자서 넓게 쓰던 침대는 이제 비좁아져 불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런 밤이 계속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저는 이만큼이나 홀로 지내는 것에 익숙하고, 또한 그것을 실로 즐기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저는 제 험한 잠버릇 때문에 곤히 자는 Magda를 깨울까 봐 최대한 몸을 웅크려 잠을 청했습니다. 내일이 오는 것이 조금은 두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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