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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9 - 결혼을 결심한 이유

by 정현태

언젠가 저는 이상적인 배우자상에 대해 아주 상세히 적어본 적이 있습니다. 일단 글을 다 쓰고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보는데 제가 바라는 배우자상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상상한 배우자가 이 세상에 존재할지도 의문이었지만 존재하더라도 그 사람이 저를 좋아해 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구 반대편에 제가 일평생 꿈꿔온 이상적인 배우자가 있는 듯했습니다. Magda가 한국에 오기 전에 이미 우리는 거의 모든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당연히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저는 늘 결혼을 염두에 두고 연애를 시작하는 편이라 Magda도 같은 마음인지 궁금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Magda 또한 결혼을 전제로 한 진지한 만남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관계가 결혼을 전제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피상적인 주제에서 멈추지 않고 더 진지한 주제까지 이야기를 확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한 가지 사실이 점점 선명해졌습니다. ‘Magda야말로 내가 간절히 찾아 헤맨 바로 그 여자다!’ 우리가 주고받은 말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우리가 결혼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말은 쉽습니다. 말은 입이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실된 사람만이 말과 행동을 일치시킵니다. 저는 Magda가 실제로도 이토록 멋진 여자일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Magda가 한국에 와 함께 살기 시작하며 빠르게 해소되었습니다.


Magda는 맑은 물과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Magda는 완숙한 여인 같기도, 갓 태어난 아기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살면서 이렇게 지혜롭고 순수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인간에 대한 회의가 깊은 사람입니다. 인간을 온전히 신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나 또한 인간이라서, 그 시커먼 속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같은 인간을 신뢰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 관계가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웠음에도 결혼을 결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티끌만 한 의심이 제 마음을 부여잡고 있었습니다. 'Magda가 본심을 숨기고 있는 것이라면? 이 모든 것들이 Magda의 진심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은 시간의 흐름 속에 변하기 마련 아닌가?'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결혼하려면 그 사람과 함께 사계절을 다 겪어봐야 한다.' 결혼을 결정하기 전에 적어도 1년은 만나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Magda와 제가 함께 한 계절은 겨울과, 봄이 전부였습니다. 개월수로 따지면 4개월도 채 되지 않았고, 만나서 함께 산 것은 2개월도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평생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을 서두를 필요는 없었습니다. 저는 조금 더 시간을 가져보기로 결정했습니다.


Magda는 일반적인 관광비자로 한국에 왔기에 3개월 동안만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3개월이 지나기 전에 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면 꼼짝없이 브라질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물론 브라질에 돌아가서 다시 장거리 연애로 관계를 지속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우린 더 오랜 시간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결국 방법은 세 가지로 추려졌습니다. 첫째는 Magda의 관광비자를 학생비자로 전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경우 정부에서 인가한 한국어학당에 등록해야 했습니다. 학당이 너무 멀리 있고, 비용도 크며, 무엇보다도 Magda가 원치 않는 방법이었습니다. 둘째는 인접 국가로 잠시 출국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경우 관광비자는 자동으로 갱신되어 다시 3개월 동안 한국에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Magda와 여행겸 일본이나 베트남에 다녀올 수도 있고, 절차도 간단하여 여러모로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았습니다. 셋째는 결혼한 뒤에 관광비자를 결혼비자로 바꾸는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우리 둘은 두 번째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Magda와의 관계에 대한 확신이 깊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티끌만 한 의심이 제 마음을 떠날락 말락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Magda에게 말은 안 했지만 제 마음은 자꾸만 세 번째 방법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결혼이라는 중대 결정을 앞두고 갈팡질팡하던 이 시기에 하나님께 같은 기도를 참 많이 했습니다. '주님 뜻대로 하십시오. 저는 따르겠습니다.' 저의 고민과 저의 계획은 하나님의 뜻 아래 무력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Magda는 이미 오래전에 저와의 결혼을 결심한 상태였습니다. Magda는 제가 진실된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Magda는 본인의 결정이 끝났다고 저를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결정이든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저의 결정만 남은 상황에서 하루가 지나고, 또 다른 하루가 지나고, 그렇게 여러 날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Madga를 브라질로 보낼 것이 아니라면 하루라도 빨리 무슨 결정이든 내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로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이 관계의 끝을 알고 계셨습니다. 저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결혼을 결정하던 날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우리는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카페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날은 제법 추웠지만 햇살이 참 좋은 날이었습니다. 어떻게 무얼 하다가 제가 이런 제안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Magda에게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한번 적어보자고 말했습니다. 두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내가 당신과 결혼하고 싶은 다섯 가지 이유

2. 당신이 나와 결혼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


펜은 있는데 적을 종이가 없었던 우리는 카페에서 준 티슈에 각각의 이유를 적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Magda는 거침없이 이유를 써내려 갔습니다. Magda가 총 10개의 이유를 적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Magda가 10개의 이유를 쓰는 동안 1개의 이유밖에 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주어진다고 해도 더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적은 내용을 같이 확인했습니다.



Magda가 쓴 것


* 내가 현태와 결혼하고 싶은 다섯 가지 이유

1. 그는 내가 가족을 원하게 만든다.

2. 그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3. 나는 그와 멀리 떨어져 있는 나를 상상할 수 없다.

4. 그는 근면한 사람이다.

5. 그는 나를 매일 행복하게 만든다.


* 현태가 나와 결혼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

1. 나는 따듯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다.

2. 나는 그를 항상 돌봐줄 것이다.

3. 나는 그를 내 삶의 중심에 놓을 것이다.

4. 나는 그를 평생 사랑할 것이다.

5. 나는 최고의 여자 친구이자, 최고의 와이프가 될 자신이 있다.






제가 쓴 것


* 내가 Magda와 결혼하고 싶은 다섯 가지 이유

1. 그녀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준다.

2.

3.

4.

5.


* Magda가 나와 결혼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

1.

2.

3.

4.

5.



제가 Magda와 결혼하고 싶은 단 한 가지의 이유가 굉장히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이니 나머지 네 줄을 빈칸으로 남겨놓은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저는 Magda가 저와 결혼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데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상이 있듯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남성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남자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남자는 돌처럼 무거워야 하지만 저는 바람처럼 가볍습니다. 남자는 흔들리지 않는 거목 같아야 하지만 저는 흩날리는 꽃잎 같습니다. 남자는 대지를 비추는 태양 같아야 하지만 저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달 같습니다. Magda가 이런 저와 결혼해야 하는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남편감으로서 너무 형편없었습니다. 그런데 Magda는 이런 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결혼까지 바라고 있었습니다. 나의 취약한 부분을 상대방이 어여삐 바라봐줄 때 우리는 누구나 무장해제 됩니다. 저는 두 가지 물음에 10가지 이유를 빼곡하게 적은 Magda에게 감동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놓친다면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 것 같았습니다. 이날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저는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고민의 과정은 지난했지만, 결정의 순간은 찰나였습니다. 살면서 이런 확신이 든 적이 또 없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가 Magda 앞에선 무색해졌습니다. 지난 걱정과 의심들이 따듯한 햇살에 눈 녹듯 사라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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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da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바로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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