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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1 – 프러포즈도 하고 싶지 않아

by 정현태

Magda와의 결혼을 저희 부모님이 어떻게 받아들였나 궁금해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도 참 특이한 사람이지만 저희 부모님도 범상치 않은 분들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염려는 하셨지만 결혼을 하라고 먼저 말씀하실 정도로 저희 관계에 대해서 긍정적이셨습니다. 부모님과 Magda가 처음 만난 날이 기억납니다. 사실 한국 사람에게 브라질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몇 개 있습니다. 축구, 삼바, 열정, 굴곡진 몸매의 섹시한 여성들, 마초 같은 남자들... 부모님께서 Magda를 처음 보시고는 본인들이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며 놀라셨습니다. 부모님은 Magda의 인상이 차분하고 선해 보여서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저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셨던 부모님은 저의 고집을 인정해 주고, 귀여워해주는 Magda를 반가워하셨습니다. 제가 Magda를 만나기 전에 3년이 넘도록 여성과의 관계가 전혀 없었기에 부모님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을 텐데, 그런 제가 결혼을 한다고 하니 안심이 되기도 하셨을 겁니다. 그래도 조금 걱정을 하신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은 Magda가 당장에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결국 저 혼자 경제 활동을 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 걱정하셨습니다. 제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 두 사람이 먹고살기에 충분한 돈을 벌고 있었지만 부모님은 먼 미래를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저와는 다른 세대를 산 사람으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걱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분은 늘 저의 결정을 존중해 주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Magda를 기꺼이 가족으로 맞이해 주셨고 지금은 친딸처럼 잘 챙겨주십니다.


KakaoTalk_20250730_183215947_02.jpg 부모님께 Magda를 처음 소개한 날


또 한 가지 여러분들에게 고백해야 할 것이 있군요. 저는 Magda에게 프러포즈를 하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고민 끝에 결혼을 결심했는데 또 고민할 거리가 생겼으니 그것이 바로 프러포즈였습니다. 제가 고민을 했던 것이 어쩌면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가만 보면 서구권 문화에서는 결혼에 대한 합의 전에 남자가 여자에게 깜짝 프러포즈를 하는 듯합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남녀가 먼저 결혼을 결정하고 추후에 남자가 여자에게 프러포즈를 합니다. 결혼이 결정되면 여자는 남자가 프러포즈해 주길 기다립니다. 그리고 남자는 최선을 다해 프러포즈를 준비해야 합니다. 형편없이 준비하지 않거나 자신의 친구가 받은 프러포즈보다 더 멋지지 않으면 남자는 여자로부터 평생 갈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저 또한 우리나라에서 먹고 자랐기에 프러포즈 전에 Magda에게 결혼을 결심했다고 먼저 말했습니다. 이제는 프러포즈를 해야 할 차례인데 이것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상당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이 프러포즈에서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겁니다. 차라리 결혼을 기대하고 있었던 Magda를 깜짝 놀래켜 줄 수 있다면 즐거운 프러포즈가 됐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와 결혼해 줄래?'라는 물음에 이미 'yes'를 받은 상황에서 프러포즈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몇몇 친한 친구들에게 Magda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친구들은 Magda에게 평생 갈굼 받기 싫으면 무조건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친구들의 말을 듣고 이 방법, 저 방법 고민해 봤지만 도저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Magda에게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Magda라면 제 마음을 이해해 줄 것이 분명했습니다. 어느 날 카페에서 데이트를 즐기다가 프러포즈를 하고 싶지 않다고 Magda에게 솔직하게 털어놨습니다. Magda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때와 똑같이 아주 쿨하게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군요. 이런 반응을 예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하고 나니 후련했습니다. 프러포즈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저나 그걸 듣고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Magda나 참 유별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결혼반지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 내에서 최대한 좋은 것으로 맞췄으니 저를 너무 나무라지는 말아 주세요.


이제 비자 문제가 남았습니다. 아무리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는데도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Magda를 만나기 전에는 국제결혼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보니 외국인이 해당 국가의 사람과 결혼만 하면 자동으로 영주권이 발급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타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하기 위해 거짓으로 관계를 만드는 이민 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영주권까지의 과정은 엄청나게 험난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알아보니 Magda와 저의 경우는 영주권을 생각할 수 있는 단계도 아니었습니다. 우선 결혼비자를 받아야 했습니다. 결혼비자는 외국인 배우자가 한국에서 1년 동안 머무를 수 있는 비자입니다. 그런데 이 비자를 발급받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대강 알아봤는데 너무 복잡해서 어디에 먼저 손을 대야 할지 감도 잘 안 왔습니다. 이리저리 인터넷을 뒤적이다 보니 외국인 배우자의 결혼비자 발급을 대행해 주는 전문가가 있어서 의뢰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격이 너무 비쌌습니다. Magda가 옆에서 지켜보다가 어영부영하는 제 모습이 답답했는지 본인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이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슨 일을 할 때 굉장히 꼼꼼하게 계획하여 빈틈없이 해내는 사람입니다. Magda가 작정하고 이 일에 뛰어드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Magda가 혹시 놓칠만한 것들을 확인하고, 저의 유창한 한국어를 사용해야 할 일들을 담당함으로써 Magda를 완벽하게 보조했습니다.


비자 준비를 시작하기 전에는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마치 함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힘을 합쳐 미션을 하나씩 처리했고, 그때마다 묘한 쾌감이 느껴졌습니다. 주한 브라질 대사관이 서울에 있다 보니 서울에도 몇 번 다녀와야 했습니다. Magda에게 있어 서울은 꿈의 도시였기에 아무리 일처리를 위해 간다고 해도 그녀의 발걸음은 소풍 가는 듯 가벼웠습니다. 솔직히 저는 여러 이유로 서울에 오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Magda와 함께 하니 마냥 즐거웠습니다. 이때 서울에서 재밌는 추억을 참 많이 만들었는데 유난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저희가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떠들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에피소드라 여기에도 한번 소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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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향하는 버스에서 / 별마당 도서관에서


서울에 가기 전 숙소를 예약하는 것은 제 담당이었습니다. 신혼여행을 가는 것도 아닌데 오성급 호텔을 알아볼 필요는 없었습니다. 저는 에이비엔비 어플을 켜고 적당한 숙소를 물색했습니다. 검색을 하다 보니 가격대비 괜찮아 보이는 숙소가 있어서 바로 예약했습니다. 여행 당일 서울에 도착한 Magda와 저는 본격적으로 돌아다니기 전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숙소에 먼저 들렀습니다. 숙소의 외관에서부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체크인을 하고 객실에 들어갔는데 객실의 컨디션이 처참한 수준이었습니다. 객실은 얼마나 작은지 짐을 풀고 두 사람이 누우면 발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몇십 년은 족히 지난 것 같은 낡은 시설과 비좁은 공간, 그리고 아무리 환기를 시켜도 없어지지 않는 캐캐 한 냄새 때문에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습니다. 솔직히 저 혼자서 하루 대충 자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런 것에 큰 가치를 두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누추한 곳에서 재워야 한다는 사실에 한 남자로서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좀 더 꼼꼼하게 준비했어야 했습니다. 비용을 조금 더 지불하더라도 더 괜찮은 곳으로 알아봤어야 했습니다. 당혹감과 함께 온갖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래도 저는 당황한 내색까지 보이고 싶지는 않아 태연하게 굴었습니다. 최대한 괜찮은 척하며 Magda의 눈치를 살폈는데 Magda 또한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숙소를 Magda가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저는 Magda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아한다면 소탈한 사람이고, 그렇지 않다면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임을 분명했습니다. 저는 Magda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으로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 날 밤, 여행을 다 마치고 객실로 돌아와 저는 Magda에게 미안하다고 고백했습니다. Magda는 웃으며 솔직히 본인도 객실에 들어왔을 때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를 위해 최대한 감정을 숨겼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상황이 너무 재미있어서 한참 웃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여행 시 숙소 예약은 Magda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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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서 / 브라질 대사관으로 향하는 길에서 / 한 지하철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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