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를 위해 한국에서 해야 할 일들은 다 끝냈습니다. 준비한 서류만 해도 얇은 책 한 권 분량이었습니다. 이제 브라질에서 처리할 일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이 업무를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었습니다. 브라질에 가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여행 삼아 서울에 즐겁게 오간 것처럼 브라질도 같이 다녀올 수 있다면 참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여러 문제가 그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갑자기 장시간 일을 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결국 Magda 혼자 브라질에 다녀와야 했습니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결혼비자가 승인되기까지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준비한 서류가 미흡하여 승인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우리는 기약도 없어 또 한동안 떨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Magda는 3주 안에 비자를 승인받아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며 자신했습니다.
Magda를 브라질로 보내야 할 날이 다가왔습니다. 기약 없는 이별에 침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우리는 비져나오는 슬픔을 애써 감추며 최대한 즐겁게 이별을 준비했습니다. 지난번에 인천공항으로 향할 때는 혼자였지만 이번에는 함께였습니다. 지난번에는 연인이었지만 이번에는 부부였습니다. 지난번에는 직접 운전해서 갔지만 이번에는 둘만의 시간을 만끽하고자 버스를 이용했습니다. 고속도로가 차들로 빼곡하여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습니다. 버스 안 승객들은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지 조잘조잘 떠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평소 같았으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했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말보다 침묵을 선택했고 다만 서로의 손을 꼭 잡아줄 뿐이었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출국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에게 허용된 시간이 끝나갈수록 가슴속 어딘가에서 개미 한 마리가 기어 다니는 듯 불편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시 못 볼 이별도 아닌데 드라마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감정이 널뛰었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다 되어 Magda와 출국 게이트 앞에 줄을 섰습니다. 저는 마지막 1초라도 함께 있고 싶어 끝까지 Magda의 곁을 지켰습니다. 게이트를 지키는 공항 직원이 무표정으로 승객들의 탑승권과 여권을 확인했습니다. 탑승권 확인을 마친 승객들은 게이트 너머로 한 사람씩 사라졌습니다. 줄은 계속해서 짧아졌고 Magda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웃으면서 헤어지자고 약속했지만 우리의 두 눈은 이미 붉어지기 시작해 눈물로 젖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입술을 포갰습니다. 저는 그제야 줄에서 빠져나와 멀찍이서 Magda를 바라봤습니다. 우리는 공항 직원이 탑승권을 확인하는 그 짧은 시간도 아쉬워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 우리는 손을 흔들었고 Magda 또한 불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사라졌습니다.
Magda를 보내고 나라를 잃은 백성처럼 털레털레 걸어 버스정류장에 왔습니다. 공항에 올 때는 완전한 인간이었는데 돌아갈 때는 반쪽짜리 불완전한 인간이 된 것 같았습니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그런가 버스 안에는 저를 포함하여 세네 명의 승객밖에 없었습니다. 이내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희끄무레하게 빛나던 실내등이 꺼졌습니다. 짙은 어둠이 깔리고 적막한 가운데 버스 엔진 소리만 불규칙하게 들려왔습니다. 죄다 빈 좌석인데 유난히 제 옆자리만 텅 빈 것 같았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마저 들었습니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저는 이 불완전한 느낌이 오래 지속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Magda는 안전하게 브라질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최대한 자주 텍스트를 주고받고 영상 통화를 하면서 서로에게 사랑을 전했습니다. 이 사이 Magda 또한 제가 느꼈던 것과 같은 불완전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가 즐거울 만도 한데 Magda는 브라질에 있는 것이 편하지 않고 낯설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이야말로 자기가 있어야 할 곳 같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Magda는 자신이 사전에 꼼꼼하게 계획한 대로 비자 관련 업무들을 하나씩 해치웠습니다. 저는 Magda가 3주 안에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예상에 여전히 회의적이었습니다. 비자를 받으려면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는데, 이 부분이 특히나 마음에 걸렸습니다. 우리는 한국어도 아니고 포르투갈어도 아니고 제3 국의 언어인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우, 공인된 영어 시험 점수가 있거나 영어 사용 국가에서 장시간 체류한 사실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저야 영어 점수도 있고 호주에 장시간 체류한 사실도 있었지만 Magda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Magda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영어 실력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들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료들이 매뉴얼이 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여 저는 불안했습니다. 제가 계속 걱정하는 사이 Magda는 여전히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3주 만에 비자가 승인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당신은 내 말을 듣는 법이 없어!'라고 말하며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데, 이번에도 Magda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앞으로는 자기 말 좀 잘 들으라며 저를 놀려댔습니다. 이제는 영원토록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저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습니다. 비자가 승인되자마자 Magda는 최대한 빠른 일정의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갔으면 좀 더 여유 있게 즐기고 돌아올 법도 한데 Magda는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습니다. Magda가 브라질로 돌아간 것이 5월 3일,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날짜는 5월 26일이었습니다. 정확히 23일 만에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래 글은 Magda가 제 곁을 잠시 떠나 있었던 23일간의 심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난생처음 한 여인과 약 3개월가량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느낀 감정도 새로웠지만 이 23일간의 감정은 특히나 더 새로웠습니다. 이 글을 조금 수정하거나 다시 쓸까 생각도 해봤지만 제 심정을 이렇게나 완벽하게 설명하는 글은 없을 것 같아 원문 그대로 첨부합니다.
난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두세 시간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내면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다. 이런 내게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결혼이라는 관계는 상상컨대 몹시 불편할 것만 같았다. 결혼 전, 당시에는 여자친구였던 아내를 내 삶의 한가운데에 초대하면서도 설레는 마음만큼이나 두려운 마음이 컸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놀랍게도 아내는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며 내 삶에 녹아들었다. 그 과정이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잃어버린 반쪽을 찾은 것처럼 온전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독립적인 성향은 이따금씩 고개를 쳐들어 그 존재를 알렸고,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내가 비자를 위해 브라질에 가 있는 동안 자유를 만끽할 생각에 한껏 마음이 부풀기도 했다.
그러나 인천공항에서 아내를 보내고 홀로이 집으로 돌아오던 그날 밤 실로 자유로웠던 것은 오히려 아내와 함께 했을 때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자유는 무한한 자율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진정 자유롭기 위해서는 어떤 체계나 틀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한다. 어떤 위험성이나 불안정성에 대한 안전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었을 때 인간은 참 자유를 누리는 것 같다. 난간이 있는 발코니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지, 난간이 없는 발코니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지 고민해 보면 이해가 쉽겠다. 더 이상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위태로움을 느끼며 털레털레 집으로 걸어오며 내가 아내와 함께 사는 삶의 방식에 완전히 길들여져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가 떠나고 나니 집 안 구석구석에 금방 먼지가 내려앉는다. 달콤한 꽃향기는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달갑지 않은 홀아비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운다. 과일은 냉장고 안에서 썩어가고 줄어드는 것은 라면봉지뿐이다. 꼭 붙어 걷던 산책로를 혼자 걸으며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서도,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파란 하늘에서도, 이곳저곳 발그레 피어난 야생화에서도 아내를 본다. 그나마 지구 반대편에 내 반쪽이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가. 살면서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정신적 충격이 배우자의 죽음으로부터 기인한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기나 긴 세월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며 삶 가운데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고난이란 적들과 맞서 싸웠다. 두 사람은 그 과정에서 사랑과 우정을 접착제로 하여 진정으로 하나가 되었는데 그런 한 사람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혼자 남은 사람의 삶이 빠르게 시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사람은 왜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걸까.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오랜만에 아내를 내 가슴팍에 있는 힘껏 안아본다. 얼굴 한 번 보고 다시 한번 힘껏... 23일간의 위태로웠던 삶이 이렇게 끝나간다. 오늘은 아내가 한국 음식 중에 가장 좋아하는 치킨을 먹어야겠다.
글을 마치며 용기 내어 내 삶에 찾아와 준 아내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가득 담아 보낸다.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는 수줍은 약속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