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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0 -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아

by 정현태

우리는 4월 20일에 시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고,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습니다. 만난 지 143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만난 지 143일 만에, 그것도 외국인과 결혼을 결심한 저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경악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상상해 봤습니다. 만약 제 친구가 143일 만에 외국인과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하면 저 또한 경악하며 그 친구에게 미쳤다고 말할 것입니다. 143일이라면 다섯 달도 채 되지 않은 시간입니다. 랜선으로만 연애한 것이 두 달 정도 되니 실제로 만나서 함께 한 시간은 세 달도 채 되지 않는 셈이었습니다. 결혼은 뜨거운 물에 살짝 발을 담가 온도를 확인하고 너무 뜨겁다 싶으면 바로 발을 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결혼은 죽을 때까지 서로를 지키겠다는 서약입니다. 살면서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결정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중대한 결정을 143일 만에 내렸으니 주변 사람들이 경악한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치기 어린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현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고 우리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이 어떠한 것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이성적으로 고민했고 그 답은 결국 결혼이었습니다.


Magda와 저는 혼인신고를 통해 법적인 부부가 되었지만 결혼식은 따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많은 여성분들이 저를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결혼식이 여성분들에게 중요한 행사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여성분들에게는 정말로 중요한 행사인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의미 없는 무언가를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날의 결혼식에서 그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결혼식 문화는 철저하게, 아주 철저하게 상업화되어 있습니다. 결혼식을 위해서 비싼 값을 치르고 장소를 대여합니다. 그런데 이용 가능한 시간이 딱 한 시간입니다. 물론 비용을 더 지불하면 두 시간도 쓸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한 시간이라고 하지만 사진 찍는 데 소요되는 20~30분을 제외하면 실제 행사가 진행되는 시간은 30분 정도에 불과합니다. 30분 동안 쉴 틈이 없습니다. 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져 있는 물건처럼 다음 순서, 그리고 또 다음 순서로 숨 가쁘게 넘어갑니다. 너무나도 형식적이며 기계적입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결혼식을 해치우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뷔페식 식사를 합니다. 식사 장소에는 다른 커플의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도 있어 그 분위기가 대체로 몹시 산만합니다. 뷔페의 비용은 한 사람당 5만 원 정도인데 음식의 수준은 형편없습니다. Magda가 제 지인의 결혼식장에서 음식을 맛보고 말하길, 브라질에서 이 가격에 이런 음식을 내오면 그 음식점이 망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하더군요. 정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돈, 돈, 돈입니다. 상업적인 게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쓴 돈만큼의 가치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Magda에게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다고 솔직히 말했습니다. 저는 며칠간 마음고생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전했는데 Magda는 굉장히 쿨하게 그러자고 답했습니다. 다만 Magda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함께 사진을 찍어 우리만의 공간에 두고 싶다고 했고,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반지 정도는 맞추자고 했습니다. 저는 흔쾌히 그러자고 답했습니다. 저는 살면서 이렇게 소탈하고, 꾸밈없고, 진실되고, 지혜롭고, 또한 아름답기까지 한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Magda는 정말이지 놀라운 여자입니다.


1682256038246.jpg 친구의 결혼식에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결혼식을 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은 물론이고, Magda와 저의 삶을 진심 어리게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을 초청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Magda가 결혼식 장소는 어느 한적한 해변이면 좋겠다고 하는군요. 저도 좋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제게 결혼식은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공표하고 약속하는 자리로서의 의미가 큽니다. 파란 하늘과 그 하늘은 비추는 푸른 바다, 그리고 새하얗게 고운 백사장의 대비가 마치 세상을 이등분해놓은 것 같은 그런 화창한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내리쬐는 따스한 햇살 가운데 사랑하는 사람들과 두 눈을 마주하고, 때론 가슴을 내어주고, 춤추고, 노래하며 서로의 삶을 나누고 싶습니다. Magda와 제가 이 꿈을 간직하고 있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현실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때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결혼식을 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법적으로 부부가 된 4월 20일을 결혼기념일로 정했습니다. 우리는 이 날 결혼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결혼했다'는 능동태 표현보다 '결혼되었다'는 수동태 표현을 좋아합니다. 이 결혼이 저만의 힘으로 이루어졌다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Magda 또한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배우자로 삼으라고 제게 보내주신 겁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Magda를 배우자로 삼고 한동안 아주 신기한 느낌을 경험했습니다. 결혼이란 참 놀랍고 신비로운 것입니다. 창세기 2장 24절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결혼을 결심하기 전부터 이미 느끼기 시작했지만 Magda와 저는 비로소 '한 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내 삶이 Magda의 삶과 합쳐져 하나의 공동 운명체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그저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결혼 전에는 제 삶이 저만의 것이라고 확신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이것은 자명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뒤에는 제 삶이 더 이상 독립되어 있지 않고 무언가에 강하게 종속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것은 이 종속됨이 불편하지 않다는 겁니다. 저는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집단생활을 좋아하지 않고, 고독히 홀로이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제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삶에 지극한 편안함을 느낀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저 상징에 그치는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잃어버린 반쪽은 찾은 것 같았습니다. 이 놀라운 감정은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결혼 전에 제 삶이 위태롭고, 불안정한 지도 몰랐습니다. 결혼 한 뒤에 느낀 온전함 때문에 모든 것이 명확해졌을 뿐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감정을 경험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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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한 날 / 혼인관계증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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