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da와 함께 하는 두 번째 날이 밝았습니다. 저는 조금 일찍 잠에서 깼습니다. 저는 하루 삼시 세 끼를 강조하시는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 가능하면 아침까지 꼭 챙겨 먹는 편입니다. 하물며 Magda는 손님인데 간단하게라도 아침을 챙겨 먹여야 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빵이라도 좀 사놨다가 토스트 같은 걸 만들어줬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지 못했는지 집안에 먹을 것이 마땅히 없었습니다. 저는 결국 누룽지를 만들어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적당한 양의 누룽지를 물에 넣고 끓여 냉장고에 있던 오이지무침과 함께 Magda에게 대접했습니다. Magda는 음식을 보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Magda가 답하길 아침에 쌀을 먹는 게 브라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문화적 차이가 너무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Magda는 제 성의 때문인지 누룽지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학원을 운영하다 보니 저는 세 시에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Magda는 세 시 전에 집에서 나가야 했습니다. 뭔가 인과관계가 이상하다고 느껴지시겠지만,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학원 시스템이 있는데, 그중에 제가 하고 있는 시스템은 '공부방'입니다. 공부방은 선생님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공간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방식의 학원입니다. 주거 공간과 비즈니스 공간이 함께 있는 묘한 구조인 것입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동거 문화에 있어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인 듯합니다. 꼭 함께 사는 것이 아니더라도 선생님의 여자친구가 어린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육 공간에 장시간 머무는 것을 좋아할 학부모는 없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우리는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Magda가 한국에 오기 전에 에어비엔비 한 군데를 미리 예약해 두었습니다. 학원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Magda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찾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에어비엔비는 차로 가면 5분 안팎으로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이 날 두 시쯤 Magda를 에어비엔비에 데려다준 것 같습니다. 에어비엔비에 Magda와 함께 들어가 호스트의 안내사항을 Magda에게 잘 전달해 주었습니다. 호스트는 엄마뻘의 아주머니였고, 에어비엔비에서 한 달 가까이 머무르는 동안 Magda를 딸처럼 잘 돌봐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같은 일상을 반복했습니다. 출근 전에 Magda를 데려다주고, 퇴근 이후에 다시 Magda를 데려왔습니다. 그래도 주말에는 토요일 오전에만 수업이 있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관계의 시작이나 전개 양상이 굉장히 드라마틱하고, 어느 정도는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지내는 첫 한 달 동안은 우리 사이에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갈등의 대부분은 언어 장벽 때문이었습니다. 언어는 많은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굉장히 불완전한 도구입니다. 화자나 청자가 경험하는 현실을 언어가 온전히 담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에 최대한의 현실을 담아보려고 하지만 언어는 늘 현실의 파편일 뿐이지, 현실 그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대화는 늘 미완성에 그칩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도 소통에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심지어 Magda와 저는 사용하는 언어까지 다릅니다. 어쩔 수 없이 제3의 언어인 영어를 최대한으로 활용해 소통해 봤지만 우리 둘 모두가 이 언어에 서툰 까닭에 걸핏하면 오해가 생겼습니다. 어느 날은 아침에 갈등이 시작되었는데 해결이 되지 않아 Magda가 에어비엔비에 머무르는 시간 내내 지속되기도 했습니다. 일단 몸이 떨어지니 우리는 텍스트를 주고받아야 했습니다. 텍스트를 주고받을 때는 번역기를 사용할 수 있었기에 큰 부족함 없이 소통이 이루어졌고, 그 덕에 대부분의 갈등은 금방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텍스트가 더 큰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대화는 상대방의 표정과 억양을 파악하면서 할 수 있지만 텍스트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갈등이 극에 달하면 우리는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아 구글 번역기를 켜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구글 번역기’ 단계까지 와서도 해결되지 않는 갈등은 없었습니다. 일단 갈등이 해결되면 우리는 서로에게 사과하고 서로를 용서하며 서로의 눈물을 닦아줬습니다. 갈등을 겪는 과정은 분명히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 끝에 우리는 늘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우리의 관계는 자연히 더 확장되고 더 깊어졌습니다.
여러분은 동양의 음양 사상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 있나요? 음과 양은 세상이 작동하는 원리를 간단하게 표현한 기호입니다. 삶의 모든 것은 음과 양, 이 두 개의 에너지의 관계(균형) 속에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음은 어둠이며 양은 빛입니다. 어둠이 극에 달하면 빛이 생겨납니다. 빛이 극에 달하면 어둠이 생겨납니다. 우리의 하루도 그렇습니다. 영원한 밤도 없고 영원한 낮도 없습니다. 밤이 깊을 대로 깊어지면 낮이 시작되고, 그렇게 시작된 낮이 절정에 이르면 다시 밤이 시작됩니다. 이 두 에너지는 끊임없이 순환하며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때가 되면 서로에게 그 자리를 양보합니다. Magda와 저와의 관계 또한 이 음양의 원리에 의해 작동했습니다. 저는 주로 표현(양)했고, Magda는 주로 수용(음)했습니다. 제가 불 같은 사람(양)이라면 Magda는 물 같은 사람(음)이었습니다. 제가 타오르면 Magda는 식혀주었습니다. 제 관점에서 바라본 우리 관계의 성공은 Magda 덕이 큽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빛은 어둠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신 뒤 하와를 만드신 것도 다 균형을 위함이었습니다. Magda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제가 이 세상 가운데 존재해야 할 이유가 더 많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삶이 더 이상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온전하고 완전해졌습니다. 언젠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잃어버렸던 '반쪽'을 드디어 찾은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