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part 13 – 우리의 보금자리

by 정현태

비자 문제도 해결되었고 이제는 우리만의 공간을 구할 때가 되었습니다. 앞서 설명했지만 저는 주거공간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시스템의 학원(공부방)을 운영 중이었고, 이런 곳에서 부부가 함께 살기엔 불편한 구석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동산을 통해 인근 아파트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드디어 우리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생각에 한껏 들떴습니다. 특히나 Magda는 태어나서 처음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된 소녀처럼 행복해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Magda는 한국어도 제대로 모르면서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이용하여 이 집, 저 집 알아보고 괜찮은 곳이 있으면 저를 불러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제가 곁에 없을 때는 메시지로 링크를 보내오기까지 하며 부푼 마음을 감출 줄 몰랐습니다. 어떤 집이 괜찮다는 데에 둘의 의견이 모이면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직접 그 집에 가서 구석구석 살폈습니다. 첫 번째로 확인한 집은 영 별로였고, 두 번째로 확인한 집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 세 번째 집을 확인하러 갔습니다. 중개인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집에는 이제 돌이 막 지난 듯 보이는 아기가 있었고, 그 아기의 엄마로 보이는 한 여성분이 아기와 함께 놀아주고 있었습니다. 사랑스러운 그림이었습니다. 밝은 조명 때문에 집 안이 더없이 화사해 보였고, 거실 창문 밖으로 펼쳐진 야경도 멋들어졌습니다. 전체적으로 흠잡을 것이 없었습니다. Magda의 눈빛을 보아하니 Magda도 틀림없이 만족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일단 이 집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딱 한 군데만 더 알아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음날 마지막으로 한 군데 더 확인했지만 직전에 본 집에서 받은 인상이 너무 압도적이었습니다. 결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Magda를 만나기 전 제가 혼자 살 때 대형마트에 가면 그곳에 있는 커플들이 유난히 저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편안한 차림으로 서로 꼭 붙어서 조잘조잘 떠들며 필요한 물건들을 카트에 담는 그들을 볼 때면 참 아름답다는 생각과 함께 부러운 마음이 일었습니다. 내 삶에도 저런 풍경이 있을까 궁금해했던 여러 날이 있었습니다. 상상만 했던 풍경은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제 옆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딱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제 걸음걸이는 그 어느 때보다 위풍당당합니다. Magda와 저는 새 집에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쇼핑을 할 때면 늘 Magda에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Magda는 돈을 쓸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물건을 집었다가 가격표를 보고 자기 기준에 너무 비싸다 싶으면 바로 내려놓습니다. 무언가를 가지고자 하는 열망도 없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남이 가진 것을 탐하지 않습니다. 삶의 아이러니는 Magda처럼 욕심이 없고 자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 더 많은 풍요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Magda는 이미 자신이 풍요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가장으로서 이런 아내를 둔 것은 진정 축복입니다.


여러분에게 고백하기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결혼을 준비할 때 제 부모님이 도움을 많이 주셨습니다. 결혼할 때 양쪽 부모님들이 도움을 주는 것은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문화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문화가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최대한 스스로 준비해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일찍 결혼하게 되었고 전셋집을 마련하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부모님께서 흔쾌히 필요한 금액을 빌려주셨고, 덕분에 Magda와 함께 살 집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제 부모님께서는 필요한 가구와 가전제품을 사라고 꽤나 큰 금액의 돈을 Magda에게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결혼할 때 남자 쪽이 집을 준비하고, 여자 쪽이 그 집에 들어갈 가구와 가전제품을 준비하는 듯합니다. 제 부모님께서는 Magda를 딸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여자 쪽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해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Magda와 저는 가구와 가전제품을 위한 예산을 미리 준비해 두었기 때문에 한사코 거절했지만 부모님의 뜻은 완강했습니다. 지난 세대를 보내셨던 부모님이 이 특별한 결혼을 인정해 주시고 축복해 주신 것도 감사한데 금전적으로 도움까지 주시니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결혼을 위해 참 많은 분들에게 빚을 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 행복하게 살며 하나씩 다 갚아나갈 예정입니다.


이사 날짜가 정해졌습니다. Magda는 제가 일하는 동안 이사할 집에 가서 몇 날 며칠을 열심히 청소했습니다. 손쉽게 청소 업체에 맡기는 방법도 있었지만 Magda는 앞으로 우리가 함께 살게 될 공간을 손수 청소하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그런 Magda의 마음이 참 예뻤습니다. Magda는 인테리어 구상에도 열을 올렸습니다. Magda는 제게 있어 완벽에 가까운 여인이지만 솔직히 말해 미적 감각은 부족한 편입니다. 이런 Magda에게 인테리어를 맡기며 조금 염려가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제와 저희 집을 둘러보면 구석구석 Magda의 사랑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 사랑 때문인지 이제는 전부 다 아름다워 보입니다.


집안일 중에서 왠지 모르게 남자가 해야 할 것 같은 일들이 있습니다. 형광등을 간다든가, 가구를 조립한다든가, 커튼을 단다든가... 남자로서 이런 일들을 능숙하게 해내는 모습을 Magda에게 보여주고 싶지만 저는 이런 일에 서툽니다. 오히려 Magda가 더 능숙합니다. 가끔 보면 우리 관계의 남녀가 바뀐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Magda는 이런 일을 서툴게라도 해내려는 저의 모습을 마치 어린 아들 보듯이 귀여워해 줍니다. 저는 Magda의 이런 시선을 좋아하고, 이런 시선 앞에서 나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는 것도 좋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함께 했을 때 완전에 가까워집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이삿날이 다가왔고 기존에 살던 집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옮겼습니다. 그동안 혼자서 최대한 단출하게 살아왔기에 옮길 물건이 많지 않았습니다. 새 집은 아주 넓어서 그간의 있던 짐만으로는 무언가 허전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사 후 몇 달간은 계속해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 새 집을 채워갔습니다. Magda의 많은 노력에 저의 자그마한 노력까지 더해져 우리의 보금자리는 점점 구색을 갖춰갔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집다운 집에 살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집이라기보다는 '잠시 머무르는 곳', '잠자기 위한 곳'에 가까운 수준이었고 그곳에 온기란 없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내 집'이라고 부를만한 공간이 생겼고, 이곳은 온기뿐만 아니라 사랑도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이었습니다.


우리 집으로 이사한 날


keyword
이전 12화part 12 – 브라질로 돌아간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