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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짱ㅣ원시인 Jun 10. 2023

왕트럴파크와 왕숙언니-달리기편

그렇게 내면의 고요만 들으며 나는 달리고 달린다.

달리기의 첫 번째 시작은 우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 놀이터에서와 학교 체육시간 외에는 달려 본 적이 그리 많지 않다. 어른이 되어선 출발하려는 버스와 지하철을 애타게  잡을 때 빼고는 그다지 달릴 이유가 없다. 아니면 급한 신호가 올 때 정도?


그래서 우리는 생각 외로 달리기가 꽤 익숙하지가 않다. 달리기에 빠진 러너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만약 달리기를 시작하려고 한다면,  우선 짧게 걷고 걸음의 속도와 거리를 늘리며 차차 달리기를 하는 것이 좋다. 거리는 조금씩 늘리 돼 거리를 늘리기보다 같은 거리를 꾸준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거리 늘리기는 아기가 두 발로 걷 듯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된다. 


달리기를 시작하면 스마트기기 등을 이용한 기록이 매우 중요하다. 디스플레이에 보이는 숫자들이 나의 내적 모티브를 마구 끌어올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야 내 머릿속 해마에 기록이 저장되며 나도 어느덧 러너의 모습으로 갖추게 된다.  그리고 거리는 점점 늘어나게 된다. 조금씩 달리고 걷기를 반복하는 인터벌을 하다가 걷기 비율을 줄이고 달리기 중심으로 거리를 늘리며 숫자의 노예가 되는 순간 점차 러닝 중독자의 삶에 빠지게 된다. 이때가 가장 중요하다. 운동이든, 취미든, 직장이든 뭐든 초반이 중요하지 않은가? 초반에 나가떨어지면 그다음부터는 내 것이 아니다. 단군 신화에 곰은 100일을 버티며 쑥과 마늘을 먹어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직장에서 100일 기념파티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연애 때처럼 100일만 버텨보자.


나의 달리기 시작은 트레드밀에서부터였다. 자전거 동호회 벙개 시간 맞추기도 어렵고 나름 장비 착용도 귀찮다 보니 아파트 내 헬스장 트레드밀이 나의 선택지였다. 실내라 거리 개념이 없이 시간 단위로 뛰었다. 처음에 20분 달리다 괜찮으면 30분 뛰고, 트레드밀이 40분으로 제한되어 있어 최고 40분까지 시간을 늘리고 내려왔다. 그런데 실내에서 엄청난 소음을 내며 30-40분을 뛰는 것은 꽤 민폐였다.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빠르게 걷는 사람은 많아도 속도 10km로 40분 동안 뛰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눈에 안 보이는 먼지와 소음이 꽤 났다. 그래서 라이딩 코스였던 왕숙천**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자전거 바퀴가 아닌 발바닥으로 왕숙천을 누볐다.


거리를 늘리다 보면 속도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그런다고 무작정 거리를 늘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평시 달리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에 맞는 기준을 정하고 뛰는 것이 좋다. 나는 12km를 나만의 러닝 기준으로 뛴다. 집에서 왕숙천을 따라 한강을 반환점으로 삼아 집 앞에 도착하면 딱 12km 이기 때문이다. 매번 같은 거리를 달리다 보면 속도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정확히 말해 기록에 대한 욕심! 그 기록을 유지하거나 갱신(PR 또는 PB)하려고 또다시 우당탕탕 뛰쳐나가게 된다.  러너의 환경과 능력에 따라 자신만의 러닝 거리를 만들어 꾸준히 뛰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러너들을 보면 3km, 5km 정도만 매일 달리는 분도 있다. 거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지속성에 문제다. 강직한 신체는 덤으로 따라온다.


혹자는 어떤 것이 달리기에 좋은 자세인지 묻는 경우가 있다. 달리기에 특별한 자세? 모르겠다. 달리기의 자세가 뭐 그리 특별한 것이 있을까?


미드풋, 힐풋, 포어풋, 스트라이크, 그런데 사람마다 다 자기의 체형에 맞게 각양각색의 달리기 자세가 있다. 사람마다 특유의 걸음걸이가 있듯이 말이다. 나는 전형적인 못난이 팔자걸음이다. 나는 똑바로 걷고 있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걸을 뿐인데 사람들은 팔자걸음이라고 놀린다. 오랫동안 굳혀진 습관이나 자세는 고치기가 참 쉽지 않다. 그래서 처음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팔자걸음이야 선천적 유전자 게놈 지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내가 편하면 그만이다.


달리기도 그렇다 몸을 상하게 하는 자세가 아니라면 내 스타일대로 나만의 주법으로 달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전문가의 코칭이나 좋은 자세에 대한 조언도 듣고 필요하다면 유연하고 후레쉬한 마음으로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것도 좋다. 환골탈태의 마음으로 필요하고 바꿔야 한다면 조금씩 바꿔 보는 것도 좋다.



**나는 왕트럴파크라 불리는 왕숙천을 나는 왕숙언니라고도 부른다.  다른 이유 없이 친숙한 표현으로 왕숙언니라고도 부른다. 오늘도 "나 왕숙언니 만나고 올게"라고 말하며 스마트폰의 러닝 애플리캐이션의 시작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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