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짱ㅣ원시인 Jun 11. 2023

왕트럴파크와 왕숙언니-자연편

자연은 그냥 자연 그대로다.


십여년전 학생들과 몽골 캠프를 간적이 있다.

몽골의 드넓은 초원과 끝없이 펼쳐진 자연을 보며 자연 그대로의 극한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곳에는 높게 칠해 놓은 하늘과 부끄럽게 솟아 오른 산등성이와 매끄럽게 펼쳐진 능선이 눈 앞에 그려졌다. 또, 구릉을 따라 펼쳐진 녹색 카펫의 끝없는 향연은 자연이 이끄는 아름다움을 가슴속까지 느끼게 해줬다. 와이파이(wi-fi)는 상상도 못한다. 인간의 편리함을 누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전봇대와 전선들이 녹색 카펫을 흐트러트렸다. 깨끗한 벽에 낙서하듯 거칠게 보였다. 우리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물에 감탄을 해왔지만 천혜의 자연이 주는 비경은 인간이 만든 어떤 최고의 작품과도 비교가 되지 못함을 느꼈다. 몽골의 쏟아지는 별빛과 작은 풀 냄새를 머금은 공기는 그 어떤 조형물보다도 자연의 위대함을 알려줬다. 자연은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사람의 손이 타지 않는 그냥 있는 그대로 말이다.


내가 왕트럴파크라고 부르는 왕숙천은 자연은 마음껏 품고 있는 서울 인접 하천 중 하나다. 언젠가는 왕숙천을 따라 북쪽으로 도시가 개발 되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그냥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두었으면 좋겠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촌스럽고 정돈되지 않다고 느낄때가 있다. 잘 정돈된 신도시의 풍경처럼 말이다. 가끔은 반듯한 길을 따라 똑바로 가는 것보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모습 그 순수함을 느끼는 것도 필요하다.


왕숙천에는 나 말고도 많은 친구들이 살고 있다. 내가 본 친구들을 소개한다. 크기와 전투력 순으로 나열하면, 각종 벌레류 < 공중 날벌레 < 어패류 < 물고기 < 개구리 < 두꺼비 < 각종 철새들 < 오리 < 해오라기 < 백로 < 뱀 < 고양이 < 너구리 < 고라니 등이 서식하고 있다. 난 자연재해를 피할 수 있는 집이라는 인공구조물이 있기에 앞에 열거한 동물들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도심 근교 하천 치고는 오염이 덜 되고 생태계가 잘 갖추어져 있어서인지 모기 같은 해충이 의외로 없다. 모기 천적이 많기 때문이다.


이집트인이 나일강의 풍만한 젖줄을 따라 삶을 영위하듯, 나는 왕숙천의 젖줄을 따라 내 건강을 영위하고 있다. 왕숙천 물 흐르듯 라이딩과 달기를 하면서 말이다. 수영까지는 차마 못하겠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왕숙천을 달린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시즌을 누린다. 그렇게 계절의 변화를 보다보면 왕숙천처럼 흘러가는 시간의 변화를 불연듯 느낀다.


집앞에서 출발하여 왕숙천과 만나는 지점에서 북쪽으로 달리면 점점 자연이 깊어지고 인적이 드물어진다. 반대로 남쪽으로 내려가면 반려견과 조용히 산책하거나 가볍게 조깅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바람을 달리는 라이더들도 점점 많아질때쯤 커다란 한강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만나는 한강에 흡수되는 지점에서 한강이 이끄는 방향으로 같이 흘러가다보면 서울의 야경과 함께 멋진 다리들이 펼쳐지며 서울 도심을 보며 달릴 수 있다.


나는 자연과 고독을 몸으로 느끼고 싶으면 북쪽으로 달린다. 흩날리는 갈대와 얇게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달리다 보면 자연과 하나가 된듯한 느낌이 든다. 북쪽으로 달릴수록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억새들이 사르르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그들의 흔들리는 춤을 보며 바람의 방향을 느낀다. 오늘은 남서풍이구나 달릴때 살며시 바람이 밀어주는 듯 해 다리가 편하다. 하지만 반환 지점을 돌아 내려올 때는 바람과 맞짱을 뜨며 내달려야 한다. 결국 퉁이다!


비가 오면 금방 범람이 되는 무명 잠수교를 지나 왕숙천 지류가 만들어낸 작음 섬을 따라 달린다. 자연 파라솔이 늘어져 있는 숲길을 달릴 때면 더운 햇살이 잠시 달아난다. 나뭇가지와 늘어진 수많은 잎들 사이로 사람이 오랫동안 살지 않았던 거대한 별장이 나타난다. 가을 무렵 이곳을 달릴 때면 달콤한 향기가 머리를 상콤하게 해준다. 계수나무 향기다. 노랗게 잎파리가 익어가며 사각사삭 소리가 커지는 가을에 그 향은 절정에 달한다. 달콤한 계수나무 향을 맡으며 달리면 거친 심박수는 잦아들고 용솟음 쳤던 온몸의 근육들은 진통제를 맞은 듯 고통이 사라진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커다란 가슴을 안은 듯한 물길을 만나게 되고 그 안을 빙 돌아 다시 내가 있던 그곳으로 돌아가면 북쪽 자연 러닝 코스는 그렇게 마무리 된다. 딱 왕복 12km 코스다.


왕숙천의 봄은 여느 모습과 같다. 아직은 겨울의 손길이 떠나지 않아서인지 아직 모든게 움츠려 있는 모습이다. 사람들의 옷깃도 아직은 겨울 그림이 남아 있다. 하나둘 왕숙천에 강태공들이 늘며 봄이 무르익으면 왕숙천 뚝방길을 따라 벚꽃이 아름답게 핀다. 서로 자랑하듯 하얀 핑크빛 히말라야 왕소금을  뿌린 듯한 길을 달리다 보면 힐링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 벗꽃길을 달리다보면 바람소리와 이름 모를 물풀들이 서로 비비며 부등껴 안는 소리 만이 귓가에 들린다.    


비가 그친 저녁 무렵 왕숙천은 핑크빛 붉은 노을이 왕숙천을 물들인다. 노을 하늘과 왕숙천을 바라 보며 왕숙천을 곁에 두고 달릴때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유난히 아름다웠던 그날은 인스타그램 피드와 스토리에 예쁜 노을 사진 빛깔이 넘친다. 밤빛이 흐르는 야간 달리기 때는 왕숙천 꼭대기 푸르스름한 하늘에서 빛나고 있는 별들을 바라볼 수 있다. 그냥 달리며 내 거친 숨소리에 맞춰 별빛을 그냥 그윽히 쳐다 본다. 그 순간 무엇에 취한듯 차오르는 심장의 고통을 잊고 만다. 그렇게 달리는 동안 내 머리도 하늘의 돔처럼 반짝이는 별들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이렇게 별들의 길을 살피며 나는 그렇게 달린다. 문득 '밤하늘의 별을' 이라는 노래가 듣고 싶어 진다.


봄을 지나 여름이 시작되는 무렵 왕숙천에  습격자들이 있다. 이들은 매년 나타나 왕숙천 산책로를 걷고, 달리고, 라이딩하는 사람들을 귀찮게 한다. 머리위에 날파리 습격 사건으로 달릴때 숨을 들이마시다 목구멍 걸려 계속 토악질을 하게 만든다. 나쁜 날파리들.. 또 이놈들이 눈에 들어가고 코로도 들어가며 달리기 페이스를 방해한다. 어찌어찌 날파리들의 공습에 벗어나 집으로 들어오는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온통 날파리 떼와 사투를 버린 흔적이 땀과 범벅 되어 있다.


에잇! 싫다 진짜 싫어!


매년 늦은 봄, 사람 키 높이에서 뭉탱이로 날아다니는 날파리 떼들.. 이놈들의 진짜 이름은 깔따구다. 매년 늦은 봄부터 기승을 부리는데 오랫동안 라이딩과 러닝을 한 경험상 느끼는 체감은 오염된 하천일수록 날파리 떼들이 극성을 부리는 것 같다. 날파리 유충이나 알을 잡아 먹는 물고기나 곤충들이 많을 수록 날파리들이 적어짐을 느꼇다. 왕숙천을 예를 들면 공원으로 잘 조성되고 하천의 범람을 막기위해 인간의 손이 많이 간 곳일 수록 날파리 떼가 극성을 부리고 왕숙천 중상류처럼 인간의 손이 덜 탄 곳일수록 날파리들이 적고 금방 없어진다. 나는 잘 정비된 남쪽 왕숙천과 비교적 손이 덜 탄 북쪽으로 번갈아 달리며 느꼈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자연은 그냥 그대로 나두는 것이 자연 생태계의 균형을 잡아 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냥 자연스로운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자. 그렇게 자연과 함께 내가 공존하면 되는 것이다.


봄을 지나 여름이 되면 왕숙천 뚝방에 야생풀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한것 자란 들품들을 보며 달리기의 지루함을 달리며 우리가 느끼는 오감 중 촉감으로 마음껏 왕숙천의 자연을 느낀다. 길게 뻗은 야생풀들을 쉼없이 뻗는 다리에 스치우며 자연의 촉감을 느낀다. 가끔은 이놈들에게 실시간으로 로우킥, 니킥을 날리며 달려 미안하기도 하지만, 야생풀들과 하이파이브 하며 자연을 느끼는 스킨쉽도 내 달리기 일상 중 하나다.


가끔 무아지경으로 달리다 보면 팔뚝보다 더 큰 물고기들이 물밖으로 튀어 나와 퍼덕거리는 것을 보게 된다. 어디선가 묵직하게 튀어나왔다 사라지며 첨벙 소리와 함께 물결만 남기고 사라진다. 아니 팔뚝 보다 더큰 허벅지 만한 놈들도 있는 것 같다. 바로 이것이 왕숙천에서만 볼 수 있는 묘미다.  


요즘 우리나라 날씨가 열대성 기후로 바뀌었는지 이상 기후로 인해 폭우가 내리거나 스콜성 비가 자주 내린다. 긴 장마로 하늘에서 물이 쏟아지는 날에는 왕숙천은 거대한 믹스커피가 물살을 드러내고 온간 스티로폼과 쓰레기를 안고 센과치히로의 괴물처럼 거침없이 왕숙천을 집어 삼키 듯 지나간다. 마치 중국 차마고도의 *호도협 같은 물살이 굽이쳐 흐른다. 그럴때는 왕숙언니가 얌점해 질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조용히 잦아 들때까지 말이다. 거칠게 흐르는 물살이 조금 잦아들면 성난 물살의 두려움도 잠시 자연의 웅장함에 심장이 마구 뛰며 나도 그렇게 물살과 함께 달린다.


열기에 타죽을 것 같던 여름이 지나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니 뛰기 좋은 날이 되어간다. 날이 좋으니 이전 페이스로 다시 올라오기 시작한다. 가을에 왕숙천은 참 아름답다. 벚나무 잎파리가 붉으스름하고 주황빛이 넘나들며 노랗게 물들어 가며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러닝하는 것, 이 또한 대단한 매력이다. 가을 아침과 밤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달리면 왕숙천의 철새들도 분주하게 겨울을 준비한다. 왕숙천을 달리다 보면 이름 모를 새들이 참 많다. 서울 근교 하천 중 다채로운 새들을 볼 수 있는 곳은 흔하지 않다. 그런데 왕숙천은 아직 자연미가 살아 남아서 인지 여러 새들을 볼 수 있다.  


어느덧 가을을 넘어 왕숙천은 더욱 을씨년스러워진다. 쌀쌀한 날씨 속에 함께 반겨주는 것은 왕숙천 위를 노니는 겨울 철새들만 보일 뿐이다. 이마저도 없으면 참 외로운 모습이다. 차가운 왕숙천을 달리다 보면 잊을만 하면 보이는 사람들 뿐 그 외는 보이지 않는다. 가끔 함께 뛰는 러너들은 없을까 보지만 운 좋으면 1명 정도 마주칠 정도이다. 주로 퇴근해서 야간에 러닝을 하다 보니 어둠 속 왕숙천의 외로움을 더욱더 차갑다.


눈이 온다음에 달리는 것도 나름 매력적이다. 하지만 부상의 위험이 있으니 늘 조심히 해야 한다. 눈과 함께 달릴 때 나는 기록은 포기한다. 눈이 쌓여있는 주로를 달릴때도 마찬가지다. 완주만 하자라는 마음으로 달린다. 겨울이라고 운동을 게을리 할수는 없지 않은가? 안전이 우선이다. 그리고 달리기는 꾸준함이 우선이다. 그래서 나는 늘 달린다.



*중국 호도협(虎跳峡): 웅장한 물길에 산세가 아름다운 차마고도이자 BBC가 선정한 세계 3대 트래킹 코스 중 하나이며 호랑이가 물쌀을 넘어 건넜다고 해서 호도협이라고 부른다.


이전 12화 왕트럴파크와 왕숙언니-달리기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