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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짱ㅣ원시인 Sep 24. 2022

단벌신사 뚜벅이 러너

그렇게 하나쯤 걸치고 달린다.

#단벌신사뚜벅이러너


달리기가 좋은 이유는 '특별한 가니시(똥폼, 개폼)가 없다'라는 것이다. 러너에게는 옷빨, 장비빨은 달리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면 안 되겠지만 최소한 나는 그렇다. 우선 땀범벅에 땀내 풀풀 풍기며 헝클어진 머리. 후끈 달아올라 빨개진 양볼 속 선크림이 범벅되어 반죽된 얼굴을 보면 굳이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려는 의지가 사치였음을 깨닫게 된다. 애초에 똥폼이라는 것은 땀범벅 처절한 러너에게 크게 기대하면 안 된다. 그냥 달리기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리고 보정 없는 일카(일반 카메라)의 모습처럼 자연스럽게 분출하자.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나 다운 모습이니까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에서 자신이 달리는 첫 번째 이유를 동료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극히 공감한다. 배드민턴, 테니스는 상대가 있어야 하고, 또 실력이 어느 정도 맞아야 한다. 한쪽으로 기울면 스포츠의 즐거움이 사라진다. 또, 수영은 장소에 대한 제한점이, 자전거는 장비와 스피드를 즐길 수 있는 용기와 숙련된 장비 조작 능력과 라이딩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달리기는 특별한 스킬과 테크닉이 필요 없다. 장비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그냥 입고 신고 내 달리면 되는 것이다(준비운동은 반드시 하기). 이것이 달리기의 매력이 아닌 주술사의 마력(魔力)인 것이다.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사이클 오래 탔었다. 물론 지금도 종종 타고 있다. 예전만큼 미친 듯이 서울-부산을 자전거로 타고 다니지는 않지만 말이다. 몇 년 전, 장시간 엉덩이를 붙여서 일하는 업무와 장거리 출퇴근 운전으로 허리 디스크가 터져 사람 구실을 못할 정도로 고생했었다. 병원 퇴원 후 재활 목적으로 수영을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하고 있다. 나는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하는 지랄 같은 성격이 있다. 사실 나의 이런 성격은 본래 모습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이든, 학원이든, 책을 보든, 무엇이든 금방 싫증내고 끝까지 하지 못하는 진득하지 못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예외가 있긴 했다. 바로 게임이다. 게임은 왜 싫증 나지 않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뻔하고 당연한 미스터리다. 이런 성향 때문에 늘 어머니한테 들었던 고정 멘트는 "하나라도 좀 제대로 하면 안 되겠니? "였다. 어느 날 이런 내 성격을 바꾸고 싶은 의지가 태양의 코로나처럼 불타 올랐다. 나의 새로운 페르소나(가면)를 보여주고 말겠어!라는 강한 의지는 중도에 포기할 것이라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으리 라는 엉뚱발뚱, 쌈박한 철학을 갖게 만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 중 하나가 자전거! 자전거를 타려면 장비빨이 어마 무시하다. 거기에 사이클링에 필요한 옷빨은 또 어떤가? 싸구려 바람막이와 대충 티셔츠 입고 쫄바지 1만 원짜리로 무한 페달질을 해도 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상대적인 것 아닌가? 이러한 상대성 이론에 폐단은 동호회에서 발생한다. 동호회라는 곳에 입장하는 순간 번쩍번쩍한 장비와 잉글랜드 왕실 자태가 흐르는 라파(Rapha) 져지와 빕숏을 보면 상대적 꿀림에 아니 살 수가 없게 만든다. 그리고 품어져 나오는 라이더 패션의 화룡점정 라파 갬성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인간 역사의 핵심은 견물생심이다. 자꾸 보면 사고 싶고 갖고 싶다. 견물생심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배송 출발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며 잠시 현타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언박싱의 기대를 품으며 말이다.

 

반면 달리기는 여름에 싸구려(제 경우) 반바지와 티셔츠, 겨울에는 쫄쫄이와 얼렁뚱땅 바람막이 한 장 이면 마음껏 달릴 수 있다. 거기에 포시즌 모두 커버할 수 있는 튼튼한 운동화 한 켤레면 만사 OK다. 자 이제 남은 것은 나의 강력한 의지만 장착하면 된다. 그렇게 달리기의 필수 조건(?)만 갖추고 나면 낮이고 밤이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마음껏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다. 나는 운동 후 땀 흘린 상태에서의 샤워를 좋아한다. 다시 말하면 운동하고 땀을 내지 않으면 안 씻는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씻지 않아 꽤꽤 하고, 킁킁한 향이 풍긴다면 분명 운동을 안 해서 샤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추럴한 상태에서 그대로 씻기가 너무 아쉽다. 어차피 운동 후 샤워해야 하므로 나는 씻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다. 마치 맛있는 맥주를 먹기 위해 땀 흘리며 운동하듯 말이다. 운동 후 차가운 얼음 맥주로 갈증을 달래는 짜릿함은 먹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특권이다. 이처럼 달리기가 좋은 이유는 러닝 후 바로 씻을 수 있다는 것! 어차피 집에 오면 씻을 것 운동하고 씻자 라는 되지도 않은 철~학! 달리고 씻으면 두 가지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다. 전문용어(사자성어)로 일석이조, 일타쌍피다. 그런데 이게 주객이 자기 멋대로 바뀌어 씻기 위해 달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가끔 아니라 사고 다발 구역처럼 발생하고 있다. 어쨌든 달리면 땀이 줄줄 온몸을 타고 흐른다. 거기에 뜨거운 날씨의 달리기는 우리 몸속에 수분을 다 뽑아가는 듯하다. 겨울에도 10분 정도 달리면 땀이 나기 시작한다. 땀에 옷이 젖고 내 몸과 한 몸이 되어 옷이 한 몸이 되는 순간 이놈은 세탁기에 직행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난 내가 갖고 있는 옷 중 가장 허름한 옷, 집순이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뛴다. 잘 안 입어 기억 저편에 버려진 촌스러운 티셔츠도 좋다. 달리기에서 만큼은 옷빨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나 혼자 뛰고 집으로 직행하는데  옷빨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냥 나와의 싸움과 소셜미디어(나이키 런 클럽, 스트라바, 가민, 런데이 등)에 공유하는 기록에만 집중한다.(물론 땀 배출에 용이한 통기성 좋은 트레이닝 옷과 나시티가 달릴 때 좀 더 불편함을 덜어준다.)


칵테일 잔에 가니시(garnish)와 잔에 비친 아름다운 빛깔보다 칵테일 잔에 담긴 솔티독의 맛과 향이 더 큰 의미가 있듯이 나는 가니시보다 달리는 것 그 자체에 집중한다. 그렇게 그렇게 단벌신사처럼 한벌의 옷만 고집한다. 물론 매일 달린다면 몇 가지 옷으로 갈아입으며 달려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수많은 트레이닝 복은 필요 없다. 잠자고 있는 티셔츠를 흔들어 깨워 지구를 아끼는 마음으로 리싸이클링 환경운동가 인척 달리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대충 세탁기 속에 여럿 빨랫감과 함께 밀어 넣고 자동으로 세탁된 운동복을 다시 꺼내 입고 다시 뛰쳐나간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다 보니 미스터리한 일이 생긴다. 점점 땀 배출이 좋은 고기능 티셔츠와 운동복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애플 워치만 차고 나가는 나에게 아이폰을 담을 수 있는 허리쌕이 생기고  마스크 하나로 얼굴과 턱을 감쌌는데 목과 얼굴을 가려줄 버프가 생기게 되었고, 장거리를 달릴 때 필요한 가방이 배송되었다. 사내 직장인 동아리 추천으로  참가하게 된 각종 달리기 대회에서 하나둘 받은 사은품이 쌓이게 되면서 점점 전문 로드 러너의 모습을 시나브로 갖추어 가고 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어쩌면 나도 전문 러너가 될 수 있다는 허영심 가득 찬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땀 배출이 훌륭한 티셔츠 한 장이 내 페이스 1초를 단축시켜 줄 것이고, 초코바 하나 정도 담을 허리쌕은 달리기 거리를 늘려줄 것이다. 또 스마트폰이 들어있는 암 밴드는 달리고 있는 나의 몸 상태를 폰에 실시간으로 전송해 줄 것이다. 점점 달리기에서도 옷빨과 가니시(garnish)빨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프로페셔널한 생각이 든다.


오늘도 옷을 대충 꺼내 입고 몇 km 뛰고 올 것인가? 만 머릿속에 가득 맴돈다. 그래 봐야 늘 뛰던 거리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오늘도 매번 입던 옷만 꺼내어 걸치고 어제 달린 길을 또 달린다. 그렇게 그렇게~



*사계절에 따라 달리기 복장 컬랙션! (필자 스타일)

무더운 여름은 최대한 얇게, 인적이 없거나 태닝이 필요하면 상탈(상의 탈의)러닝,

매서운 겨울에는 의외로 옷이 얇아지지 않는다. 10분 정도 달리면 열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추위는 처음 10분만 참자.

-봄, 여름, 가을: 무조건 반팔 반바지, 여름은 나시티를 입으며 가끔 상탈 러닝

-겨울: 영상(0~10도) 반팔에 팔토시, 긴바지, 영하(0도 이하)로 내려가면 얇은 바람막이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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