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짱ㅣ원시인 Jul 20. 2022

지금 질끈 달리러 갑니다

달리기 예찬

#지금질끈달리러갑니다

#달리기예찬


90년대 댄스가요를 섭렵하며 노래방에서 열창했던 나의 학창 시절에는 체력장이라는 체력 테스트가 있었다. 체력장의 여러 종목 중 단연 하이라이트는 100m 달리기다. 당시 운동장을 체육선생님이 억지로 만들어 100m를 겨우겨우 못 미쳐 달렸던 기억이 난다. 수십 년의 오래된 이력을 자랑하는 학교 외에는 운동장 100m는 꿈도 못 꾼다. 지금은 웅장한 실내체육관이 아이들 체육활동을 대신하고 있다. 또 체력장이라는 용어로 우리의 심장을 긴장하게 만들어 숨이 턱까지 막힐 것 같은 말은 **팝스(PAPS:학생건강체력평가제도)라는 영어로 무엇인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아름다운 말로  바뀌어 있다.  100m 달리기에 이어 가장 하이라이트로 듣기만 해도 폐에 긴장감을 주는 종목은 오래 달리기였다. 남자 기준 1.6km는 마의 구간 스타크래프트의 저그 종족처럼 뛰어 1등까지는 못해도 상위권으로 들어오는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약 70% 힘으로 최대한 상위그룹에서 뛰어야 한다. 그다음에 나머지 30%로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올듯함을 참으며 버티고 버텨야 한다.  처음부터 힘을 비축한다고 중하위권에서 뛰는 나름 치밀하고 자신의 상태를  오판한 멍청한 전략을 짰다가는 그대로 중하위권으로 결승선에 나타나게 된다. 다년간의 경험에 의해서 내린 결론이다. 이 경험으로 비춰 볼 때 무조건 상위권으로 초반 질주를 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상위권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 이유는 멀까 달리다 보면 상위권이나 중위권이나 하위권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똑같이 지치기 때문이다. 입에서는 거칠게 쏟아지는 심장소리와 헐떡거리는 숨을 참으며 다리가 점점 무거워지면서 나의 의지와 몸은 따로 놀게 된다. 출발시간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느 순간 심장이 폐 밖으로 나올 것 같은 극도의 비극 상황이 도래하고 만다. 어차피 뜀박질이 느려지고 지칠 것이 불 보듯 뻔하기에 초반 에너지가 생기발랄 넘칠 때 먼저 사뿐사뿐 더 멀리 날아가 줘야 한다. 그래야 그래야 상위권에 겨우 붙어가며 결승선에 조금씩 다가설 수 있게 된다.


그럼 가장 원초적인 운동! 달리기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음 아무리 살펴봐도 그리 재미가 있거나 흥미를 끄는 요소를 찾아볼 틈이 없다. 사람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고 걷기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뭐가 그리 급한지 우리는 마구 뛰쳐나가려고 한다. 무엇인가를 보고 달리고 싶은 충동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인지, 그렇게 부딪히고 넘어지며 또다시 일어서고 달리는 과정을 반복하며 우리는 그렇게 성장해 왔다. 아마도 인간이 원시시대부터 생존을 위해 늘 필요했던 것이고, 재미보다는 고통이 더 커서인지 우리는 달리기에 참맛을 그냥 모른 척 지나쳤는지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골목길을 뛰어다니고 친구들과 달리기 시합하며 우리는 달리는 몸을 만들어 왔었다.  또, 학교에서는 체육 선생님의 자상한? 안내를 받아 우리는 또다시 뜀박질을 하기 시작했다. 재미와 흥미라는 요소를 그다지 찾아보기 힘든 달리기 매력에 빠져드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 매력에 빠진 사람만이 알겠지만, 그 마력의 참 맛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은 뜀박질 어디에서 즐거움이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것이다.


달리기의 매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우선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가 보면,

첫 번째로 레슨이 필요 없다. 물론 코치나 전문가의 프로페셔널한 지도가 가미되면 금상첨화 땡큐 베리머치겠지만, 골프나 배드민턴, 수영 등과 같이 전문적인 레슨과 지도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큰 매력 중 하나이다. 베리어프리(barrier free) 개념처럼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운동화와 간편한 옷만 걸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벗고 맨발로 뛸 수는 없지 않은가? 인간이 걷기 시작한 후부터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했던 운동이며, 모든 운동의 기본서 같은 베이직 필수 코스가 아닌가? 전문가의 코칭이 없어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바로 달리기 인 것이다. 이게 바로 달리기의 참매력이다. 코칭비 절약으로 경제성은 덤이다.

여기에 덧붙여 두 번째 매력은 누구나 갖고 있는 티셔츠 한 벌, 옷장 속 어딘가 처박혀 있는 너덜 바지(또는 반바지) 하나면 끝! 화룡점정으로 신발장 속 그윽한 향을 품고 있는 운동화 한 켤레만 들고 나오면 오늘 달리기 장착 완료다. 여러 가지 운동 종목 중 특별한 장비빨이 없어도 충분히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아주 큰 매력 중에 하나다. 물론 티셔츠는 땀을 흠뻑 과식하여 몸과 하나 되어 떨어지지 않은 거머리와 같은 모습을 연출하고 어설픈 운동화는 내 발목을 위험에 빠드리기도 하지만, 이것이 달리기를 하지 못하는 필수조건은 아님은 확실하다. 당신이 달리기 뽕에 맞았다면 말이다.

물론 전문적 러너 및 인스타 수만 팔로우의 연반인급(연예인+일반인)은 화려한 트레이닝복과 러닝화를 장착하고 멋지게 운동하는 모습을 보이며 광채를 뿜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달리는 본질만 본다면 내가 편안한 옷빨과 운동화 빨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질주하면 되는 것이다. 3km 던, 5km 던 아님 그 이상이 되던 말이다. 그냥 내가 할 만큼만 뛰면 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본질에 충실하면 외적인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물론 둘 다 있으면 가장 베스트지만, 달리기의 또 하나의 좋은 점은 바로 가니시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니시(garnish)는 영어로 '장식'이라는 뜻이다. 칵테일바에 가보면 칵테일의 흥미로운 맛과 향을 더하기 위해 가니시. 즉, 장식으로 마무리를 한다. 고운 자태의 올리브 한알, 예쁘게 슬라이스 된 라임이나 레몬 등 칵테일 색을 보완해 주는 가니시가 그 자태를 더해준다. 하지만 진짜 칵테일 맛과 향에 진심인 것들은 장식 따위는 없다. 그냥 그 맛과 향에만 충실하기에 칵테일 맛과 본질에만 집중하라는 자존심인 것이다. 장비 빨, 옷빨이 크게 필요 없다는 것은 우리가 달리는 것 그 자체 본질에만 충실해 보자라는 것이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맛있는 칵테일을 만드는 법]에서 자신이 즐겨 마시고 좋아했던 칵테일인 '블러디메리'를 마시며, "역시! 마셔 볼 가치가 있다."라는 찬사를 한다. 이처럼 우리는 달리기를 위한 겸허한 자세로 "역시! 뛰어 볼 가치가 있다."라고 외치며 러너들은 지금도 달린다. 그리고 우리가 달리기 위해 질끈 운동화 끈을 매야 하는 진짜 매력적인 이유는 달리기 그 자체의 본질과 그것에 대한 충성심인 것이다. 그럼 우리 이제 지금 질끈 달리러 갑시다~!


* ① 100m 달리기, ② 제자리멀리뛰기, ③ 1200m(1600m) 달리기,  ④ 앉아 윗몸 앞으로 굽히기, ⑤ 윗몸일으키기,  ⑥ 오래 매달리기(팔 굽혀 펴기)  

** PAPS(Physical Activity Promotion System)

이전 02화 자본주의 인간들이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