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업과 노동 그리고 우리는 운동
이번장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잇는 우리들이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를 노동이라는 힘겨운 용어와 결합하여 고찰해보고자 한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과 기본을 아주 잘 알려주는 경제학의 바이블(기본 중 기본)이다. 경제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발을 담근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거쳐야 할 톨게이트와 같은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무교육을 마쳤다면 한 번쯤 교과서에서 본 기억은 있을 것이다. 국부론이라는 엄청난 책은 21세기 현존하는 경제 상황의 모든 민낯을 이미 다 보여주고 있다. 아주 족집게처럼 말이다. 1776년대 이미 미래 경제를 예측했던 애덤 스미스는 경제의 기본원리를 국부론에 담아 보여주고 있다. 국부론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으로 나라의 부(富)를 증대한다는 이론에 근거하여 자유방임 경제를 주장하였다.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한 최초의 자본주의 기본서(=성경)인 것이다. 신기하고 놀랍게도 18세기 책 속의 이야기가 지금 현실과 딱딱 맞아떨어지는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용하다는 서울 미아리 점쟁이 집처럼 말이다. 마치 타임캡슐을 타고 미래를 보고 온 것 같은 예측력이다. 18세기에 이미 지금의 경제를 예측한 것을 보면 신의 영역을 넘나드는 그의 멋진 능력과 존경심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각설하고 국부론에 담긴 자본주의의 핵심적 경제 요소 중 하나를 집자면 바로 '분업'이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분업이라는 매혹적이고 훌륭한 협력을 구사하게 된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책에서는 이 능력으로 인해 인간이 모든 피조물에 왕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면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상투적이 말이 있지 않은가? 사실 이 말에는 인간의 공동체성을 기반한 분업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런데 갑툭튀 촌스럽게 웬 분업?? IT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말이다. 분업 이야기가 나왔으니 분업에 대해 간단히 정의하면 그냥 일정 부분의 과업을 서로 나눠서 일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와 같이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출신인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지나치듯 스쳐 지나간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잠시 들어 본 적은 있을 것이다. 가내수공업과 세트로 말이다.
오늘날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분업이라는 단어! 자율주행 기반 전기차가 도로 위를 달리고 소셜미디어와 넷플릭스를 넘나 드는 세상에 어쩌면 진부하고 촌스러워 보이는 단어로 보이지만, 촌스러운 이 단어에는 인간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게 만드는 엄청난 괴력이 담겨 있다. 국부론에서 인간의 분업은 지금의 산업사회의 근간을 만들 수 있게 해 준다. 이것은 지금도 유효하고 인간 사회의 핵심이다. 그럼 도대체 분업과 달리기는 무슨 상관인데? 조금만 기다려 보시라~ 지금부터 그 이유를 소소히 전하려고 한다. 인간이 분업을 하면서 우리는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밀을 재배해 주는 농부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밀이 있다고 해도 밀가루를 만들 필요도 없다. 밀가루를 빻아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밀가루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빵을 만들 필요가 없다. 빵을 맛있게 만들어 주는 제빵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의 가장 인기 많은 돈(화폐)이라는 것만 지불해 주면 이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빵이라는 것을 내 입속에 쏙 넣어 생명에 필요한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빵을 먹기 위한 돈이라는 거래 수단을 게임 머니처럼 열심히 캐내기만 하면 된다. 직장이라는 수단이든 투자를 통한 재산 증식 등을 통해서 말이다. 각자 분업이라는 것을 통해 인간은 효율성이라는 획기적인 생산력을 갖게 되었고 이로 인해 대량생산된 잉여 생산품이 많아지면서 특별한 생존의 움직임과 노동이 없어도 우리는 맛있는 빵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직장에서 빵을 구입하기 위한 게임머니만 마구마구 캐내면 되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돼지를 키워 돼지고기를 팔아 빵이나 생필품을 교환하거나 사 오면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농사를 짓고 음식을 만들기 위한 노동에서 해방되면서 점차 우리가 해야 할 노동량이 줄게 된 것이다. 생산성이 좋아져 음식은 많아지고 대신 음식을 만들기 위한 노동력은 줄게 되었다. 칼로리가 넘쳐흐르는 세상에 점차 살게 되었다. 또, 칼로리 섭취를 위한 노동력이 필요 없게 되면서 잉여 칼로리를 소모하기 위한 운동이라는 장르가 나타나게 되었다. 운동이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 바로 인간의 분업의 효율성이 극대화되는 시점부터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수렵과 채집을 죽는 그 순간까지 하였고 농사를 지으며 한 곳에 정착을 할 수 있었지만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농사라는 노동을 하며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다. 지금 수백 년 전부터 인간이 만들어 낸 분업으로 인하여 생산성과 효율성의 증대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이를 포기할 수 없기에 노동의 부재를 운동으로 풀어야 하는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운동은 다이어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균형을 만들기 위해 평생 우리가 해야 할 가치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살기 위해 맛집을 찾아다니듯 운동도 일생 죽을 때까지 해야 할 필수조건임을 인지해야 한다.
우리는 노동 대신 인도어(indoor)에서 필라테스, 요가, 헬스장, 홈트 등으로 훌륭한 강사님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아웃도어(outdoor)에서는 스마트기기에 보이는 숫자와 싸우며 러너, 사이클러, 스위머, 클라이머 등 나만의 모습으로 자신이 감당해야 할 노동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과 움직임의 대체제가 바로 운동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자본주의 세상을 떠나서 살 수 없다면 지금이라도 평생 운동 하나는 꼭 붙잡고 살아야 조금이라도 내 생명의 연장선을 더 그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신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인간의 노력으로 그나마 연장의 끝을 잡아당길 수는 있지 않은가? 그나마 운동이라는 것으로 말이다.
어느 날 신문을 펼쳤는데 이름만 들어도 아는 회사의 광고 카피가 보였다. 이를 조금 변형해 보았다.
"(운동)하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에서 출발해 더 나은 운동에 도전하고, 더 많은 사람과 같이 운동하고 더 나은 내일의 길을 찾는 끊임없는 실행 그것이 나의 큰 힘입니다. 이제 집 밖을 뛰쳐나가야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평생 함께 할 운동을 난 갖고 있는가? 잉여 칼로리를 불태울 운동을 한 가지는 갖고 있는가? 우리가 달려야 할 이유에 대해 알고 있는가? 스스로 자문해 보자."
어떤 운동이든 가장 힘든 순간은 신발끈을 질끈 묶고 집 밖으로 나오기까지이다. 그리고 새벽 운동의 가장 힘든 것은 기상령을 넘는 것이다. 이것만 넘으면 그다음부터는 술술 어렵지 않게 풀리게 된다. 우리는 그렇다 집 밖을 나가는 순간이 어렵지 그 이후에는 우리가 바라는 본능에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 이후의 성취감과 기쁨은 여러분 스스로 마음껏 입맛에 맞게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달리고 내가 운동하는 이유인 것이다. 성취감이라는 도파민에 취해서 말이다. 아니면 도파민에 중독되어 내가 지금도 뛰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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