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TMI를 아는 것은 너무나도 신이 난다. 우리는 친하다고 생각 또는 자부해왔지만 사실 모르는 게 더 많다. 남에게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고, 꺼내더라도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이야기하는 게 맞나 싶고, 안물 안궁 등의 무례한 농담이 돌아올까 무서우니까. 그래서 우리는 소소한 개인 이야기를 꺼낼 때 어느 순간부터 TMI라고 한다. 이건 TMI 긴 한데 말이야, 하면서.
나는 네가 무슨 회사를 다니는지는 알지만 네 두번째 서랍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몇 시에 잠드는지 알지만 잠잘 때 무슨 옷을 입고 자는지 모른다. 식탁에 앉을 때 다리를 어떻게 꼬고 앉는지 모르고, 무슨 반찬을 특히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샤워를 할 때 뜨거운 물로 하는지 차가운 물로 하는지도 모른다. 당근케이크와 레드벨벳 케이크 중에서 무엇을 고를지도 잘 모르고 바다와 산 중에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가깝지만 아주 먼 사이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알아서 기억 어딘가에 저장해두었다 다정한 어투로 너 당근 케이크 좋아하잖아, 라던가 이번 여행은 네가 좋아하는 산으로 가자, 하고 싶다. 너를 알아도 계속해서 더 알고 싶으니 나는 너를 사랑하는 게 맞다.
지난 여행에 친구가 긴팔 파자마를 가져 왔다. 여름에 무슨 긴팔을 챙겨 왔냐는 내 물음에, 너 열나서 힘들어하잖아. 에어컨 최저로 틀고 자라고,라고 대답을 듣자마자 마음이 그냥 녹아서 다 흘러내려 버렸다. 그 순간 내가 너 나중에 아프면 간이고 쓸개고 다 줄게, 속으로 약속도 했다. 내가 원래 다정한 것에 무척이나 약하다. 나도 이 친구의 TMI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남들은 다 호박고구마를 좋아하는데 이 친구만 밤고구마를 좋아하고 단호박은 싫어한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집에서 밥과 파김치를 먹어야 하고, 소울푸드는 육개장 사발면이다. 여행할 때 새로운 장소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고민이 많아질 땐 일기를 쓴다. 아는 것이 이렇게 많은데도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작가의 문체에 매료되기도 하지만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슨 계절을 좋아하는지, 심지어 어떤 남자를 만났는지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세하게 나열되어있는 그 글자에 집중하다 결국에 그 작가를 사랑해 다음 책도 읽게 된다. 유튜브 브이로그를 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한다. 그 사람이 무엇을 먹는지, 무슨 옷을 입고 누굴 만나는지, 무엇을 샀는지, 요즘은 무슨 책을 읽는지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심도 있게 탐구한다. 사람이 사람을 더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닐까.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원래는 봄을 더 좋아했지만 가을의 쓸쓸한 바람을 어느 새부터 더 좋아하게 되었다. 시작의 계절인 봄 대신 곧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 과일을 밥보다 더 좋아하는데 씨 있는 포도는 먹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커피 마시기. 아메리카노보다 라떼를 좋아하고, 생각보다 정리 정돈을 잘 못하는 편이고, 1년 전부터 잘 때 꼭 귀마개를 하고 잔다. 또, 손톱을 짧게 깎는 것을 좋아한다. 당신에게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정보인 나의 TMI다.
이제 당신의 차례다. 나한테도 사소한 것을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늘 당신을 궁금해하니 아무렇지 않게 난 오늘 무엇을 했어, 하고 말하거나 사실 나는 이걸 좋아해,라고 이야기해줬으면. 그럼 기억했다가 순간순간 내가 다정을 펼쳐 보일 테니.
이 글을 올리면 몇몇 친분 있는 독자에게 TMI 메시지가 올 것이다. 나는 벌써부터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