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텍스트에 더 익숙한 사람이다. 친구들과 통화를 자주 하지는 않지만 카톡으로 대화는 자주 나눈다. 평소에 수다 쟁이는 아니지만 채팅방에서는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이것 저것 쓸데 없는 것을 잘도 떠든다. 회사에서 업무상 전화를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잘하고는 하지만, 사람 목소리보다는 텍스트를 더 좋아했다. 그래서 일할 때 웬만하면 전화할 일을 만들지 않고 메일을 쓰고는 했다.
작년 여름, 오래 만난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마음을 다 쏟아버렸다. 쏟아진 마음을 주울 힘도 없어 그 자리에서 멍하니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렸다. 친구들의 대화창에도 무어라 쓸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어서 대답을 미루고 미뤘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남에게 털어놓는다 해서 달라질 것 없는 일이기에 내 마음이 모두 온전해지면 말할 예정이었다. 늘 그랬듯이. 나 그때 힘들었다? 물론 지금은 괜찮아.
물론, 지금은 괜찮다. 다시 온전한 나로 돌아왔고, 삶은 평온해졌다. 그 이별 덕분에 많은 변화들이 있었고 나는 조금 더 성장했다. 하지만 그 여름을 어떻게 견뎠었지, 하고 생각해보면 목소리였다. 그때 걸려왔던 전화들이 날 일으켜 세웠다. 직접적으로 안부를 묻는 목소리에 차마 괜찮다 대답을 할 수 없어 괜찮지 않다고 전했을 때 당신이 해주던 진심 어린 걱정. 오늘 하늘이 예뻐, 그러니 나가서 걸어, 하던 목소리. 퇴근길에 같이 산책할래,라고 말하던 목소리. 괜찮아 질거야, 하던 목소리. 나 이제 어떡하지, 라는 말에 뭘 어떡해, 우리랑 재밌게 사는거지, 라고 대답하던 목소리. 또는 나의 안부 따위 묻지 않고 자신의 할말만 잔뜩 하다 끊는 그 목소리조차.
텍스트에 애정을 가득 담는 편이다. 이모티콘이라는 좋은 수단도 있으니 나름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는데, 사람의 목소리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의 목소리들은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덮었고, 나를 먹게 했고, 다시 살피게 했다.
그 뒤로 나도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전화를 건다. 전화를 잘하지 않던 사람이 전화를 하니 대부분 상대방은 무슨 일 있어?라고 대답하지만, 그래도 전화를 건다. 그냥. 그냥 걸어봤어, 하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