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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경선 Sep 15. 2024

나비처럼 날아서 -11

11.

“일주일에 투수 레슨만 3번을 하겠다고? 그것도 개인레슨으로? 힘들 텐데? 자주 던지면 어깨에 무리도 가고” 의욕이 앞선 준혁에게 홍코치는 걱정이 앞섰다. 

“투수 시작한지 얼마 안 돼 아직 어깨는 싱싱합니다. 제대로 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너무 무리하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 어깨 탈나. 그러지 말고 타격 연습과 번갈아 하는 건 어때? 투수연습 2회, 타격연습 1회 이런 식으로 말이야.”

“그냥 투수만 집중하고 싶습니다. 아직 체력은 자신 있고, 무엇보다 시간될 때 연습 많이 해 놔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기도 하고요. 로스쿨 들어가면 아무래도 여유가 없을 듯합니다.”

준혁은 지난 10월 투수 데뷔전 경기에서 호되게 당한 이후 투수 레슨을 시작했다. 하지만, 로스쿨 준비도 병행했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져 훈련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 이제 로스쿨도 합격했으니 3월 입학 전까지 투수 훈련에 집중하기로 했다. 

로스쿨 스터디 그룹 멤버들이 겨울 때 민법 공부 같이 하자는 것도 거절했다. 민법은 예전부터 자신 있었던 과목이기도 했지만 야구에 전념하고 싶었다. 강력한 공을 꽂아 넣어 삼진 당해 돌아서는 타자의 뒷모습을 빨리 보고 싶었다. 익숙한 것 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준혁의 투지를 일깨웠었다. 아직 그럴 나이였다. 

“맞아, 내년 봄 로스쿨 개학이지. 어쨌든 개인 레슨은 마음 가짐을 달리 가져야 돼. 그룹 레슨과 달리 2시간 내내 혼자 하는 거라 체력적으로 버거울 거야. 별도로 기초 체력 운동 병행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어.”

“오늘 아침부터 집 근처 헬스장 시작했습니다. 매일 1시간 웨이트 할 거고 밤에는 우이천에서 러닝도 할 생각입니다.”

준혁은 사무실을 나와 소파에 앉았다. 레슨장안에는 선수들이 타격연습을 하고 있었다. 핸드폰에 미나로부터 카톡이 여러 개 와 있었다. 오늘 저녁때 뭐 할 거냐, 일찍 끝나는데 만나자, 영화는 어떠냐, 왜 답이 없냐, 쉼 없이 연달아 오는 미나 특유의 카톡이었다. 토라진 미나 얼굴 표정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실패와 좌절 후 아무런 꿈 없이 과외로 연명하던 시절, 야구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야구를 통해 도전 의식과 승부욕이 되살아 나면서 묵혀 두었던 희망이 되살아 났다. 검사의 꿈을 되찾게 해준 미나와 사랑에 빠진 것도 야구 때문이었다. 요즘 하루하루가 더 없이 행복했다. 핸드폰 사진 앨범을 열어 미나와 추억을 하나씩 꺼내려고 하는데 앞 레슨타임이 끝났다. 홍코치와 본격적인 투수 레슨이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힘을 잔뜩 주고 팔이 나오면 안 돼. 타격할 때 힘을 빼고 스윙하다 공이 배트에 닿는 순간 힘을 집중하잖아. 투구할 때도 같은 원리로 던진다고 생각하면 돼. 하체이동으로 힘을 한껏 모은 뒤 공을 놓기 직전 힘을 짜내어 때리듯 던지는 거야. 뺨 때리듯이.”

코치는 천천히 구분 동작으로 투구 자세를 보여주었다. 준혁은 코치의 말을 암기하듯 머리 속에 그리며 힘껏 공을 던졌다. 팔에 힘을 빼고 마지막 순간에 볼을 채듯이 던지는 동작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점 동작이 익숙해지면서 안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팔에 힘을 빼니까 팔꿈치부터 먼저 나오고 공을 쥔 손은 뒤따라 나오는 자세가 만들어졌다. 공을 쥔 손이 팔꿈치에 이어서 나옴에 따라 공을 늦게 놓을 수 있게 되었다. 포수 쪽을 보는 시간이 확보됨으로써 자연스레 제구력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반복적인 투구로 힘을 빼고 던지는 자세가 익숙해지려고 하는데 코치가 캐치볼을 멈췄다.

“공이 이상하게 회전해서 오는데, 공을 어떻게 쥐고 던진 거야?” 

준혁이 손가락으로 공을 쥔 모습을 보여 주자 코치의 말이 쏟아졌다. 

“그렇게 던지면 공이 힘있게 뻗질 못해. 타자 근처에서 힘을 잃고 아래로 떨어져 버려. 왜 그런가 하면,”

코치는 실밥을 어떻게 쥐고 던져야 직구가 되고, 변화구가 되는지 설명을 했다. 일직선으로 가는 직구는 백 스핀, 떨어지는 커브는 톱 스핀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탁구의 커트가 백 스핀을 걸어 공이 떠오르게 하기 때문에 직구와 같다고 했다. 탁구의 드라이브는 공 윗부분을 때려 전진 회전, 즉 톱 스핀을 거는 것이다. 그러면 탁구공이 가다가 훅 가라앉게 되는데 이게 커브와 같은 원리라고 했다. 

“공의 운동 메커니즘을 생각하고 던지면 실력이 빨리 늘어. 옆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슬라이더도 같은 이치야.” 

겨울이었지만 2시간 내내 집중해서 그런지 땀이 흘렀고 숨도 차올랐다. 정수기 물을 몇 컵이나 벌컥벌컥 마시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저녁에는 집 근처에 나가 러닝을 했다. 투수는 하체가 중요하다고 해서 우이천 산책 도로를 매일 10Km 이상 달렸다.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부터 중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완주할 수 있게 되었다. 

러닝과 웨이트가 계속될수록 하체는 단단한 근육이 차곡차곡 자리를 다져갔다. 운동 후 샤워를 할 때 드러나는 허벅지 근육은 울퉁불퉁했다. 말 엉덩이와 뒷다리가 만나는 지점의 근육 같았다. 나선형의 곡선을 이루면서 만지면 돌 같이 단단했다. 샤워기 물줄기가 허벅지 안쪽 근육의 굴곡을 타고 돌아 내려갔다. 준혁은 거친 근육이 만들어내는 곡선의 아름다움에 스스로 만족하며 운동에 더 매진했다.

운동과 병행해서 틈틈이 야구 영상을 분석하며 원리를 이해해 나갔다. 여러가지 서적도 보며 야구 이론을 터득했다. 투수가 던진 공의 궤적은 ‘마그누스의 효과’로 설명이 된다고 했다. 이는 ‘베르누이의 정리’라는 유체역학 이론에 기초해 연구되었다. 준혁은 책의 내용을 토대로 자기만의 해석을 하고 노트에 정리했다.

‘직구는 마그누스의 힘이 공의 위쪽 방향으로 작용하게 한다. 그래서 공을 아래로 떨어지는 걸 막는다. 앞쪽으로 순회전하는 커브는 마그누스의 힘이 아래로 작용한다. 즉 공이 타자 앞쪽에서 뚝 떨어지게 된다.’

강한 직구를 던지려면 마그누스의 힘이 위로 작용하게끔 던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의 실밥을 잡고 위에서 아래로 채면서 역회전을 걸어 던져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야만 공이 중력의 영향을 덜 받고 직선으로 날아간다는 말 인 것 같았다.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의 빠른 공이 타자 앞에서 솟아오르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했다. 강력한 회전이 걸린 공이 가다가 마그누스의 힘을 받아 위로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홍코치가 ‘직구 던질 때는 백 스핀, 커브 던질 때는 톱 스핀’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경험에서 터득한 코치의 지식과 유체역학으로 증명한 물리학자의 학설은 동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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