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짊어진 적이 있는가
김후시딘은 오늘 운이 좋게 벌써 두 건의 대리운전을 수행했다 시간은 10시 30분
위치는 무산신도시이다 그가 20대 시절 여기는 허허벌판이었다 상전벽해란 말이 이런 말인가
이 근처를 지날 때면 매연과 쓰레기 냄새 악취 흩날리는 먼지들 당장이라도 터질듯한 쇳소리를 내며
육중하게 주변을 위협하는 대형트럭들 엿가락처럼 휘고 패인 검은 아스팔트 가운데로 춤추는
희미한 두 갈래의 노란선들 검은 채찍으로 도시를 목 조르고 있는 전신주들 열기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들
그런 것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맑고 조용한 하천과
늘씬하고 반듯한 고급 아파트들과 가로세로 격자무늬의 반듯한 도로들로 변해 있었다
김후시딘은 언제나 그렇듯 식은땀이 나고 이미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황량한 도시를 감싸안는 은은한 달빛은 부조리하게 그의 귀소본능을 재촉한다
당연히 근처 지하철 역으로 가겠지 하고는 아무 생각 없이 탄 버스가
무산신도시의 끝에서 도심을 다 외면하고 고속도로를 타더니 무산 신도시의 반대편 끝으로 가서 정차한다
30분간을 고속도로를 달리는 시내버스가 있다니 이건 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그 양극단의 지역은 최근에 신거주지역으로 각광받는 지역인 것이다 그래도 그의 생각에는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광역버스도 시내를 관통해서 다니는 마당에 고속도를 타고 양극단의 곳에만 정차하는 버스라 김후시딘은 생각한다 이건 분명 이 지역이 부촌이고 최근에 생긴 신도시니까 일반인이 모르는 특수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특수한 사람들은 버스를 탈 일이 없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드니 그의 머릿속은 진퇴양난이다 그는 돈 버는데 관심을 크게 가져본 적이 없다 돈을 벌어야 안정이 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편해지는 건 알지만 그는 그래도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노력과 행동은 해본 적이 없다
그는 고등학교 때 이미 엘빈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빌렸지만 한 줄도 읽지 않고 정보가 중요하단 이야기로
끝내고 만 것이다 정보가 중요한 건 알지만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은 없는 것이다
그는 시내를 고속도로로 관통하는 버스를 타고 광역시의 반대편으로 가서 또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고 있다 밤을 여행하기 위해 나온 것이거나 지키기 위해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자신이 이 도시가 임명한 한 명의 문지기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 난 문지기야 밤을 지켜야지 어둠을 지키는 문지기"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응시하며 덜컹이는 기차와 리듬을 타보지만 이내 끼익 끼익 나는 거대한
금속성 쇳소리에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고개를 드니 어떤 꼬마아가씨가 자기 몸집만 한 기타를 뒤로 메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저 꼬마 아가씨는 큰 꿈을 짊어지고 있구나
그는 생각했다 난 꿈을 짊어진 적이 있던가.
그의 어릴 적 꿈은 시골슈퍼주인 구두수선가게사장님 화가 이렇게 3가지였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3가지
모두 그는 할 수 없고 그는 꿈을 가져본 희미한 기억 외엔 꿈을 짊어지고 가본 적이 없다는 걸
그 꼬마 아가씨가 설명해 주고 가버린 것이다. 그 아가씨는 신이 던진 하나의 물음표인 것이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내려서 가는데 다리를 심하게 저는 야윈 아저씨가 허름한 가방을 땅에 내려놓더니
쓰레기통에 머리를 거의 넣을듯한 자세로 무얼 찾는다 저속에서 무얼 찾는 것인가?
그가 밤마다 찾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라는 의문부호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오늘 밤은 부호들과 기호들이 그에게 다정하게 시그널을 보낸다
그는 생각한다 난 세상에 무슨 기호일까
김후시딘의 꿈에 대해 알아보자
시골슈퍼주인이 꿈인 이유는 손님이 하루 종일 거의 없다 보니
그 안에서 책을 읽던가 약간의 농사일 같은 것을 하면서 막걸리나 마셨으면 좋겠다는 이유였고
구두수선가게는 그 통속에 혼자 갇혀서 무언가를 혼자 한다는 게 아늑하다는 생각이 들었었고
(김 후시딘은 고양이 성향이 있음)
화가는 잠깐 꿈이 있었지만 이젤만 사놓고 세상의 천재들을 구경하는 걸로 대신하기로 했다
김후시딘은 결국 자신의 꿈이란 것은 호숫가의 이른 아침 안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잠깐 보았지만 인생의 해가 중천에 뜬 이후론 사라져 버린 것이다
김후시딘은 집에 와 tv옆에 있는 이젤에 걸려있는 외투를 본다
꿈은 옷걸이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생각한다 그 외투도 기호라는 것을 화살표
꿈을 알려주는 화살표 김후시딘은 입속이 달아오른다 꿈 소멸 금속성 쇳소리 조르바
여러 가지 들이 뒤엉켜 입안을 뜨겁게 한다 갈증이 난다 물을 마셔야 하나 술을 마셔야 하나
그의 머릿속은 황량한 사막한가운데 표류하는 기분이다
그 사막의 한가운데 커다란 기타 가방을 멘 어린 소녀가 머릿속으로 오버랩된다
물음표소녀라고 기억해 두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