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김후시딘의 이야기 7

김후시딘 이력서를 만들어보다

by 톰슨가젤

어제도 빈손으로 돌아오고 무력하게 잠이든 김후시딘은 아침에 일어나

아픈 눈에 안약을 넣고 통증이 사라지기를 기다려본다.

토요일 누군가에게는 휴일이고 누군가에게는 주말여행을 가는 즐거운 시간이지만

김후시딘은 할 게 없는 것이다 이력서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에 근처의 도서관에 가본다.

창백한 도시의 밤이 그를 이렇게 조각한 것이다


김후시딘이 도서관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해주고 싶다

도서관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은 톰슨가젤인 것이다

사자나 호랑이들은 도서관에 오지 않는다.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상대에게 안전을 보장한다.

그러한 이유도 있고 타고난 호기심이 많은 김후시딘은 그래서 어릴 때부터 지적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도서관에 들락날락한 것이다 물론 김후시딘은 책을 잘 읽지는 못한다

지적허영심만 가득하다.


대출한 도서는 수백 권도 넘겠지만 읽은 건 몇 권이 없다

김후시딘씨는 사실 일의 완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독서도 시작과 끝이 있건만 읽었다는 행위에 집착해 버려서 무엇을

읽었는지도 모르는 게 태반이다 도서관에는 수많은 톰슨가젤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도 하고 책도 읽고 있다.


김후시딘은 이력서 제작을 위해 디지털실로 향한다.

좌석 예약 컴퓨터 앞에 서서 좌석을 예약하고 그쪽으로 간다

26번이었는데 모니터가 응답이 없다 다시 좌석예약석으로

와서 27번을 예약하고 자리에 앉는다

모니터를 보니 아래한글과 엑셀프로그램이 있다.

김후시딘은 인터넷을 뒤져 적당한 이력서 양식을 찾는다

여러 양식 중 경력란이 3칸으로 구성된 콤펙트 한 이력서로 눈길이 간다.

"이거다 어차피 쓸 것도 없는데 아주 딱이야"

양식을 다운로드하고는 이력서를 작성해 본다.

순간 머릿속에는 개농장의 철망 속에 갇혀있는

선택받길 간절히 원하는 개들의 울부짖음이 떠올랐다.

이름 생년월일 성별 주소 경력란에서는 약간 멈칫했지만

3칸을 어떻게든 채운 것이다 자기소개서도 간략히 한 장 만들었다

"저는 오랜 기간 프리터족으로 살아왔습니다' 첫 구절은 이랬던 것이다

역시 부끄러운 흑역사를 적당히 지우고 자기소개서에 미래의 귀사에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인쇄해 보았다

온 김에 김후시딘은 운전경력 증명서도 몇 장 뽑았다

혹시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미친것이다.


김후시딘은 어제 보았던 구인광고 중 법률사무원 공고를 보고는 지원을 해본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담당자에게 메일로 보낸다 물론 회신은 기대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소개서 말미에 최저임금가능이라는 간절하고

비굴한 굴종의 문자를 첨부한다.


디지털실의 온도가 높아서 더위를 느끼고는 나갈 준비를 하던 참

책을 빌려볼까도 했지만 전자책이 편하고 빌리는 책은 거의 안 읽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하고는 도서대출은 하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집 앞 주차장에서 차에 내리지 못하고 오래 앉아 있었던 건 아마도

이렇게 날씨도 좋은데 집에 들어가 또 무력감으로 둘러 쌓여 있기가

두려운 것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이었을 것이다


완전한 고독에 다다른 김후시딘은 기결수가 된 기분이었다

젊음과 무지가 뒤섞인 구치소에 있다가 이제는

고독이란 완전한 형별을 선고받고는 기결수들로 가득 찬

교도소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고독과 자유는 동전의 양면인 것인가

앞에서 보면 자유이고 뒤집어 보면 고독인 것인가

따듯한 햇살이 차 안을 안락하게 만든다

노곤하게 기분이 좋아진 김후시딘은 차에 조금 더 있기로 한다

keyword
이전 06화김후시딘의 이야기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