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은 Aug 26. 2022

눈물 젖은 물만두




먹을 것 때문에 울어 본 적 있는가? 있다면 왜 그랬는가? 남들은 다 주고 나만 안 주는 게 서러워서. 아껴 먹느라 남겨 둔 걸 누가 홀랑 먹어 버려서. 너무 맛있거나, 뜨겁거나, 너무 매워서. 이유는 각양각색이겠지만 음식으로 인해 눈물을 흘린 적은 모두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울어 봤기에 쓰는 글이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나의 유년기로 시간을 돌려야 한다. 나는 귀여운 어린 양이 그려진 하늘색 어린이 잠옷 세트를 입고 있었고, 한창 잠에 빠져 있었는데 웬일로 꿈을 꾸었다. 지금보다야 자주 꿨었지만, 어릴 적에도 나는 꿈을 꾸는 일이 흔치 않았다. 기억이 안 나는 걸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날 꿈은 내가 방 안에 누워 있고, 바깥의 소리를 듣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불 꺼진 방 안과 달리, 바깥은 불이 켜져 있어 열린 문틈으로 형광등 빛이 새어 들어왔다. 늦은 밤은 분명 아니었고 해가 솟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침이거나 뉘엿뉘엿 노을이 져 가는 늦은 오후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포크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들이쉬니 맛있는 냄새가 났다. 고기와 채소가 적절히 섞여 군침이 도는 냄새. 나는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이건 물만두구나. 교자만두도 또아리 만두도 군만두도 아닌 작고 앙증맞은 몸집을 자랑하는 물만두로구나!


나는 만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재료가 다양하게 섞여 있는 만큼 그 맛이 오묘하기 때문이다. 왜, 잘못 만들면 잔반을 섞은 맛이 난다고 할 정도로 만두는 먹을 것과 먹을 것이 아닌 것의 경계선을 넘기 쉬운 음식이다. 자칫하면 맛있게 먹으려고 기대하고 있다가 불쾌감만 얻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도 모 브랜드에서 출시한 ‘새우와 홍게살을 다져 뭉친 만두’ 외에 다른 만두는 찾아 먹지 않는다. 그러나 물만두만큼은, 유구한 세월 동안 너무나 맛있게 먹어온 음식이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에 얇고 미끌미끌한 만두피는 상상만 해도 침이 감돈다. 새콤달콤하게 만든 간장 소스에 살짝 찍어 한입에 먹으면 촉촉하게 배어 나오는 육즙과 만두피에 묻은 물이 충만한 수분감을 선사한다. 만두에서 부득불 날 수밖에 없는 그 잡내조차도 물만두에서는 최소화되어,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피가 얇은 것도 당연히 가점 요인이다. 밀가루 덩어리 씹는 느낌, 두꺼운 반죽을 싫어하는 나에게 있는 듯 없는 듯 사라지는 물만두의 피는 매력적일 수밖에.


언젠가 먹었던 물만두


그래서 왜 눈물을 흘렸느냐면, 내가 사랑하는 그 물만두가 나는 먹어보기도 전에 싹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맛있는 냄새와 도란도란 모여 먹는 소리가 들리는데, 내 몸은 웬일인지 일어날 생각을 않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굳어서 안 움직이는 게 아니라 머리로는 나가야지, 나가야지 하는데 막상 행동으로 실천하지는 않는 상황이었다. 진심으로 너무 답답했다. 몸이 말을 안 듣는 것도 아니고, 먹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면서 왜 안 움직이느냐고? 누워서 일어나고 싶지 않은 나와 일어나서 물만두를 먹고 싶은 내가 둘로 분리되어 상충하고 있었다. 내 ‘의식’은 일어나고 싶은 나의 편에 치중되어 있었지만, 육체를 관장하지 못하는 모양인지 나는 계속 누워 있어야 했다.

여기까지는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는 아니었다. 좋아하는 물만두를 맛도 보지 못해 슬펐고, 나를 위해서 단 하나도 남기지 않은 점에 대해 화는 났지만 말이다. 나를 울린 건 방 안에 덩그러니 있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 채로 자기들끼리 신나게 물만두를 먹는 엄마와 언니들이었다. 나도 물만두를 좋아한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내가 있든 없든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즐거운 간식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게 나는 더 서글펐다. 결국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갈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접시가 깨끗이 비워진 뒤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말았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냐면, 꿈에서 깼다.


잠에서 깬 내 눈 양옆엔 눈물이 축축하게 고여 있었다. 황당한 심정으로 꽤 오래 가만히 누워 있었다. 거실로 나가 봤더니 물만두가 없었다. 다 먹었다는 게 아니라, 그냥 물만두 같은 음식이 일절 놓여 있지 않은 상태였다. 바깥에서 물만두 냄새라도 났으면 이런 꿈을 꾸는 게 이해가 갈 텐데. 그것도 아니라니.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나는 생각보다 물만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무의식적으로 맡은 냄새가 반영되어 연상 작용으로서 꿈에 나타나는 건 충분히 그럴듯한 상황이다. 그러나 현실엔 물만두의 ‘물’자도 없고 나는 오로지 꿈속에서 맡은 물만두 냄새로 괴로워하고 눈물을 흘린 것이다.


내게 좋아하는 음식 말해 봐, 라고 했을 때 만두는 열 개, 스무 개를 나열할 때까지도 등장하지 않는 음식이다. 막상 먹으면 맛있기는 하다. 그러나 평소에 생각날 만큼 좋아하지는 않는 음식이고 말 그대로 ‘있으면 먹는다’ 영역에 머문다. 하지만 물만두는 조금 각별하게 느껴진다. 나를 울린 건 네가 처음이거든.

이전 10화 생크림 토스트와 오레오 빙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