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찜은 명절 음식이다. 매 설과 추석, 일 년에 두 번은 꼭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데 때로는 단점이기도 하다. 언제든지 먹고 싶은 게 갈비찜일진대 '명절 음식'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탓에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은 아니라는 그릇된 편견(?)이 생겨버렸다. 진정 슬픈 일이다. 달콤짭짤한 맛있는 갈비를 왜, 김치찌개나 제육볶음처럼 아무때나 먹을 수 없는 것인가!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원재료 가격도 조리 시간도 다르니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마음 같아선 갈비찜에게 이 노래를 바치고 싶다.
내게로 와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신해철, <일상으로의 초대>
새로운 무언가를 내 삶으로 들여놓은 뒤로 '모든 게 달라졌다'라고 느낀 적이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해 봐도 정말 극적인 변화를 느꼈던 경험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낯선 장소에 다녀오고, 유용한 물건을 들이고, 취미생활을 시작하고, 새로운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모두 당시에는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고 한동안 행복했지만 내 인생의 근본적인 영역을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래도록 남을 소중한 추억이 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근래에는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너무나 많아진 탓에 하나하나에서 느낄 수 있는 감상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말 그대로 도장을 찍듯이 경험을 '수집'하고, 어떤 일을 '했다'는 사실에만 집중하여 각각의 사건에서 내가 무얼 인지하고 발견했으며 생각이 바뀐 점은 있는지 돌아볼 시간이 사라진 듯싶다.
내 경우에는 일기를 쓰면서 그때그때의 내 기억과 감정과 생각을 겨우 떠올려 보곤 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추억으로, 인생의 중요한 지점으로 남을 수도 있었던 순간들을 놓칠 것만 같아서다. 이런 감각을 느끼는 건 감흥을 느끼기 어려울 만큼 마음이 지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도전이 두렵고, 더 나은 사람으로 나를 변화시키고 싶은데 그게 너무 힘겹고 부담스럽다. 계속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하고 할 일도 고민도 쌓여간다. 이거 혹시, 새해 증후군 같은 건가. 새해의 시작과 함께 발현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과 그동안 미뤄왔던 많은 일들에 대한 막막함, 이번에는 꼭 실천하겠다는 다짐이 또 무너지는 것에 대한 좌절감이 한번에 밀려오는 것이다.
갑진년 새해가 밝으면서 또 수많은 다짐을 했다. 반은 쉽게 해 볼 수 있는 것들이고, 반의 반은 꾸준함과 인내와 담대함을 요구하는 일이고, 나머지는 인생 전체를 통틀어도 해내기 어려운 일들이다. 1월 1일에 적어둔목표를 계속 읽고 있자니 부담감만 심해져 덮어버렸다. 일단 잔뜩 적어 둬야 조금이라도 지킨다면서 써 내린 결과였다. 계속 상기해야 실현에 가까워지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할 일의 목록을 자꾸 들여다보는 건 스트레스만 누적시킨다. 머리가 아파와서 생각을 멈춰야 했다. 부엌에서는맛있는 갈비 양념이 끓는 냄새가 살랑살랑 흘러오고 있었다.
그랬지. 설 연휴를 간절히 기다린 것은 갈비찜 때문이었다. 떡국은 신정에 먹었지만 갈비찜은 으레음력 설에 맞추어 먹기 때문에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자책과 후회는 잠시 잊자. 고대하던 설 연휴, 식탁의 주인공은 단연푹 끓여 양념이 깊게 배어든 야들야들한 갈비찜. 뼈를 잡고 들어내면 부드럽게 고기가 분리된다. 걸쭉한 갈비 양념을 한 숟갈 떠서 갈비를 한 번 더 적셔주고 쌀밥과 함께 입에 넣으면 그 자체가 행복이다. 잘 익은 햇밤과 부드러운 감자, 색이 고운 당근도 골라 먹는다.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이토록 맛깔나는 갈비찜을 매년 만들어 주시는 어머니를 향한 감사함 내지는 존경심과, 미각 세포가 반응하는 원초적 즐거움이 교차한다. 우울함은 저 편으로 멀어지고 원기라는 것이 회복되는 기분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것을 의지하진 않는다는 전제하에 음식은 최고의 항우울제다. 왜 나는 발전하지 못하는가? 라는 물음은 언제든 사람을 심연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위험한 것인데, 갈비찜을 먹는 순간 사르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사실 나는 나 자신이 까다롭고 복잡하고 깊이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갈비찜으로 단번에 기분을 회복시킬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렇구나. 어떤 면에서는 나도 단순한 사람일 수 있군. 그런 생각이 드니 더 편안해졌다.
새해의 울적한 생각으로부터 날 건져 올려주는 갈비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야겠다. (갈비찜과 나의 창조주인 어머니에게도) 아쉽지만 일상으로의 초대장은 쓰지 않으려고 한다. 갈비찜을 내 일상으로 초대한다고 해서 모든 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자주 먹기 시작한다면 지금처럼 갈비찜을 맛있게 먹지 못하는 수가 있다. 익숙해지니까.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처음처럼 소중하게 대해 주지 못하는 게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다. 추석에 돌아올 갈비찜은 가을의 쓸쓸함에서 또 나를 구해줄 터다. 그러니까 살짝 모자라다 싶을 만큼 공간을 남겨둔다. 조금씩 아쉬움이 남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