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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 Oct 14. 2022

나의 첫 단짝 친구




내게 ‘단짝’이란 것이 처음 생긴 것은 아홉 살 무렵이었다. 그전, 미취학 아동 시절에는 어린이집의 서너 명 되는 동갑끼리 두루 어울려 놀았었다. 그러니까 ‘이 친구는 나랑 가장 친하다!’라는 인식이 서로에게 분명히 녹아들어 있고, 저 애는 언제든 나와 함께할 거란 확고한 믿음이 있는 관계가 아직 형성되기 전이었다. 작았던 규모의 어린이집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과 그에 상응하는 자극이 있는 초등학교에서 나는 적응을 어려워했다.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이 있었고, 소속되어 있다는 감각으로부터 멀어진 채 지냈더랬다.

      

그러다 사귄 첫 단짝은 새 학년의 시작과 함께 전학 온 친구였다. 첫날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인연으로 가까워진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다. 함께 줄을 서서 나란히 음식을 받았고, 마주앉아 점심을 먹었다. 일 학년 때는 급식실 공사로 인해 주로 반에서 정해진 자리에 앉아 먹어야 했는데 말도 거의 안 섞어 본 짝 옆에서 먹는 밥은 말 그대로 밥일 뿐이었다. 딱 허기지지 않을 만큼만, 생존을 위해 먹는 밥.


그러나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 사이에서 친밀하고 내가 믿을 수 있는 누군가와 요새 좋아하는 만화영화, 오후 수업에 대한 푸념, 방과 후에 할 일, 직접 겪은 재미있었던 일을 나누면서 먹는 밥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아홉 살에겐 가혹한 8시 반 등교와 오전 시간 4교시의 수업(나는 비교적 수업을 잘 견디는 아이이긴 했다)으로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어 주는 푸근함이 있었고, 그 품 안에서 나는 입 안 가득 뽀드득거리는 소시지를 베어 물었다.


어느 날 나는 내 단짝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오늘은 급식을 조금만 먹기로. 예상했겠지만 그 이유는 하굣길에 간식을 사 먹기 위해서였다.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좋아서 하는 약속이었고, ‘마음이 맞는 단짝 친구와 함께 먹는 방과 후의 간식’이라는 건 내게 로망이기도 했으므로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으레 초등학교 앞은 유혹이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는 간식의 성지다. 당시 우리 학교 근처에도 행상 아주머니의 솜사탕과 문방구 불량식품, 빵, 과자, 분식 등 마음만 먹으면 초등학생 용돈쯤은 단숨에 거덜낼 수 있는 훌륭한 간식들이 많았다.


그중 가장 좋아했던 건 하나에 500원 하는 떡꼬치였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는 얇고 길쭉한 쌀떡이 정확히 일곱 개 꽂혀 있는 양념 떡꼬치를 팔았는데 이는 먹는 양이 적었던 초등학생(나)에게 아주 적당했다. 내 단짝 역시 이 떡꼬치를 좋아해서 우리는 기회가 될 때마다 함께 먹으며 즐거운 오후를 보냈다. 떡이 하나씩 사라져 갈 때, 달짝지근한 양념의 맛이 희미해져 갈 때 남던 진한 아쉬움은 주인 아저씨께 ‘하나 더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또렷했지만 그렇게 남는 아쉬움 덕에 다음을 또 기약할 수 있었으므로 우리는 늘 한 개씩만 사 먹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 떡꼬치는 우리의 약속이기도 했지만, 우정을 확인하는 지표이기도 했다. 돈이 없다거나 집에 빨리 가야 할 일이 생기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우리는 줄기차게 떡꼬치를 먹었다. 떡꼬치는 다른 애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는데, 우리는 주인 아저씨 왈 단골손님으로 등극했으니 말 다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떡꼬치를 안 먹고 갈 때는 서로 감정이 상해서 도란도란 간식이나 먹을 상황이 아닐 때였다.


불편한 기류에 떡꼬치는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 그게 더 이상할 테지만, 떡꼬치 의식 없이 집에 돌아갈 때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 우정에 금이 갔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다음 날 교실에 들어서기 전까지 그런 무거움을 간직해야만 했다. 다행인 건 하루아침에 서로를 모른 척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어제야 어찌 됐든 만나면 어색한 얼굴로 인사하고 그럭저럭 지내다가 떡꼬치를 먹으면서 화해를 했다. 미처 못한 말은 교환일기에 썼다. 그게 우리가 우정을 지켜나가는 방식이었다.     


소중했던 첫 단짝은 전학 온 지 일 년이 조금 넘었을 즈음 다시 전학을 갔다. 아버지 직장을 따라 이사를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밝고 활달해 누구와도 잘 어울리던 그 친구는 전학을 가서도 잘 지냈을 것이다. 나와 함께할 때 그랬던 것처럼. 그 친구와 늘 같이 먹던 방과 후 떡꼬치는 내게 교감의 행복과 기쁨을, 절친한 친구가 주는 든든한 충족감을, 다투고 나서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또 다른 단짝을 사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 내가 한 뼘 자라서, 스스로 만들어 본 첫 음식이 떡꼬치였던 건 우연일까. ‘소떡소떡’을 그렇게 좋아하고, 그저께도 엄마 표 ‘소떡소떡’을 양껏 먹은 건 우연일까.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이 된 우리, 이번 생에는 절교하기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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