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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노 쌤 Jun 17. 2023

변화 속도

생물은 변화 속에서 자기만의 속도로 세상을 살아간다.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한 이래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변화는 자연의 속성이자 법칙이다. 이 변화의 법칙에는 공간과 시간에 따른 방향성이라는 특성이 내재되어 있다. 우주는 시작의 순간부터 엔트로피(Entropy) 즉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 결과, 우주라는 공간에 속박되어 있는 생명체에게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되었다. 생명체에게 '불변'이란 죽음을 의미하기에 그 유구한 변화의 역사 속에서 생명체는 역경을 온몸으로 버티며 생명을 이어왔다. 


변화의 핵심은 속도에 있다. 과학에서 속도란, '어떠한 물체의 위치 변화를 뜻하는 변위를 변화가 일어난 시간 간격으로 나눈 값 '으로 정의한다. 속도 변화는 만남에서 기인한다. 하나의 개체가 또 다른 개체를 만나면 속도가 변한다. 달도 지구와 만나 속도가 변하며 공전 궤도를 만든다. 문제는 변화가 상존하는 지구에서 우리가 달과의 관계를 체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인류는 천체의 변화를 17세기 영국 과학자 뉴턴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생물은 우주 역사에서 승자다.

변화에 쓸려가는 수동적 삶은 허무하다. 자아 상실이라는 탑승료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생명은 변화에 맞서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바다에서부터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는 새 생명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건 험난한 여정을 선택한다. 물속에 뿌리와 줄기까지 잠겨 조금씩 썩어가는 나무도 삶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올해도 옥연지의 잠긴 나무들은 썩어가는 줄기 사이로 새파란 잎을 틔웠다. 생명체는 변화에 대항하는 강인한 역동성을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지구의 다양한 생명체를 보라! 그것이 생명 역사의 산 증거다.


2023년 6월 12일 월요일

꽉 막힌 도로를 뚫고 송해공원에 도착했다. 고속도로로 우회했기에 시간은 넉넉했다. 산책로의 산비탈은 산사태의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다. 요즘같이 비가 자주 오면 더 위험하다. 송해공원은 장마를 앞두고 다시 안전 보강 공사를 시작했다. 지난주 송해공원 관리 담당자가 현장을 답사했었다. 노련한 인부는 모래주머니에 모래를 담는 방법을 작업자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모래는 가득 담아야 해", "이거 보이지? 씨앗이야!" 나도 인부의 손가락을 따라 씨앗에 초점을 맞췄다. 부직포 모래주머니 아래 많은 씨앗이 흩뿌려져 붙어 있었다. 어린 작업자는 지게에 모래주머니 2개를 지고는 힘겹게 산책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공원의 금굴 앞으로 만들어 놓은 계곡을 따라 수국 꽃이 가득 피고 있었다.

어미새와 몸크기가 비슷한 새끼 참새가 계속해서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고 졸라댔다.

2023년 6월 13일 화요일

엊저녁 내린 비로 호수는 촉촉하게 젖었다. 송해공원에는 아침 일찍 서두른 탓에 잠을 설친 듯 보이는 앳된 얼굴의 작업자가 잠을 보충하려는 듯 벤치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있었다. 산책로에는 참새들이 뭐가 그리 궁금한지 잽싸게 수풀 사이를 헤집고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중 화단의 경계석에 앉은 참새 한 마리는 깃털을 잔뜩 부풀린 채로 '짹짹'하고 계속 시끄럽게 울어댔다. 그 옆의 또 다른 참새 한 마리는 분주하게 벌레를 사냥하고 있었다. 사냥한 벌레를 입에 문 참새는 곧장 울고 있는 참새로 다가가 벌레를 먹였다. 어미 참새였다! 이제 둥지를 떠나 이소를 시작한 어린 새끼를 여전히 돌보고 있는 것이다. 아직 어미 곁을 떠나지 않는 어린 참새는 큰 덩치에도 어미의 모성에 기대어 살고 있었다. 호숫가 산책로에서도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린 수달이었다. 오래간만에 만났다. 물고기를 사냥하던 녀석을 사진에 담기 위해 욕심을 내 조금 더 다가섰다. 이때 뭔가의 낌새를 알아챈 녀석은 물속으로 빠르게 잠수해 자취를 감춰버렸다.  


2023년 6월 14일 수요일

주차장으로 우회전하면서 봉고 한 대를 만났다. 작업자는 봉고에 잔뜩 실린 참외 박스를 내려놓고 있었고, 여성 작업자는 커피와 뜨거운 물이 든 보온병을 챙겨 나오고 있었다. 봉고를 지나쳐 평소처럼 다리 근처에 주차를 하고 산책을 시작했다. 산책로의 바닥에는 선이 여러 개 그려져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매듭을 만들어 놓은 실처럼 보였다. 주인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달팽이였다. 느리게 움직이는 달팽이가 바닥에 이렇게 긴 선을 그리려면 엄청 부지런히 움직였을 것이다. 산책로에는 밤꽃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산책로 중간에는 어제 작업한 모래주머니가 비탈면을 차곡히 채워져 있었다. 지난달에 작업한 모래주머니에서는 파릇한 풀줄기가 길게 자라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연못 주변에 보식 작업을 하는 작업자들을 만났다. 작년에 심었던 꼬리풀이 소실되어 연못 둑 주변으로 보식 작업을 한다고 했다. 여성 작업자 세 명은 쉴 새 없이 호미를 놀리고 있었다.

작고 여린 달팽이 한 마리가 자기만의 속도로 세상에 삶의 궤적을 남겼다.

2023년 6월 15일 목요일

오늘은 꼭 해오라기를 찍어보리라는 의욕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송해공원에 도착해 카메라를 켜고 해오라기가 늘 앉아 있는 장소로 몸을 돌렸다. 그때 녀석이 나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휙 날아가 버렸다. 며칠을 실패해서 얻은 교훈을 또 망각한 것이다. 해오라기는 주변 변화에 민감했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 할 때마다 항상 미리 눈치채고 날아가 버렸다. 녀석을 찍으려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이번엔 좀 더 조심해야 했었다. 산책로를 돌아 만세교를 따라 풍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만세교 끝에 다다랐을 때, 해오라기 한 마리가 또 휙 하고 날아가 버렸다. 녀석을 제대로 만나려면 갓난아기가 자고 있는 집에 들어가 듯 조심해야 하는 것인가? 해오라기가 날아간 장소에는 연잎이 수면 위로 많이 올라와 있었다. 비가 온 탓에 연잎에는 물방울이 탐스럽게 고여있었다. 


2023년 6월 16일 금요일

송해공원에 도착해 카메라를 챙기고 해오라기가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그 녀석이 보 계단에 앉아 사냥을 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히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카메라 렌즈로 당겨 본 녀석은 나의 관심을 끌만큼 충분한 매력이 있었다. 연신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찍는 동안 다행히 녀석은 날아가지 않았다. 산책로를 따라 금굴로 올랐다. 새소리가 요란했다. 아침임에도 날은 더웠다. 산책을 마치고 차로 돌아왔을 때에는 목덜미에 땀이 가득 찼다. 송해공원의 연못 한편에는 꼬리풀 묘목을 담았던 참외 상자가 접혀 키 높이로 쌓여 있었다.

해오라기는 주변 변화에 민감하다. 

일류 대학, 번듯한 직장 그리고 높은 자리! 성공에 대한 속세의 규칙이 있다. 우리 사회는 불행히도 승자독식의 세계다. 경쟁에서 이긴 소수에게만 허락된 성공에 너무 많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이 경쟁 체제는 승자가 아닌 수많은 패배자를 양산한다. 승자독식의 환경에서는 경쟁에서 이긴 이들이 쓴 왕관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패배자들의 시기와 질투의 감정이 투여되기 쉽다.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결과에서 찾으면 안 된다. 사실 찾을 수도 없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받은 월계관은 마라톤이라는 경기에서 경쟁자를 이기고 얻은 승자의 왕관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그를 영웅으로 인정하는 것은 금메달이 아닌 끊임없는 자기와의 경쟁에서 자신을 이기고 거둔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우리는 선수를 넘어 독립운동가로 부른다.


우리는 변화의 중심에 휩쓸려 들어가면 변화 속도를 알아차릴 수 없다. 세상은 나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시류에 몸을 맡기며 우리는 그냥 흘러간다. 한참을 흘러간 이후에야 무언가 변했음을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자기 길을 개척하고 도전한 사람에게 '가(家)'를 붙인다. 혁명가, 예술가, 건축가 등이 그 예이다. 삶에서 모든 사람이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실패는 아니다. 묵묵히 자기 길을 선택하고, 자신의 빠르기로 그 길을 걸었기에 그 삶에 우리는 충분히 찬사를 보낼 수 있다.


우리는 자기 속도로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자연은 늘 그것을 소리 없이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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