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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노 쌤 Jun 10. 2023

톺아보기

찾지 않으면 볼 수 없다.

아티초크라는 채소가 있다. 우리에게는 생경하지만 유럽에서는 꽤나 인기 있는 식재료다. JTBC에서 방영하는 '톡파원 25시'에서 얼마 전 이탈리아의 아티초크 축제를 소개했다. 등장한 MC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되는 아티초크를 보며 궁금증에 빠졌다. 제각각 자신이 아는 맛에 빗대어 아티초크의 맛을 상상하며 군침을 흘렸다. 소 뒷걸음으로 쥐를 잡듯 누군가 비슷한 맛을 말했다고 할지라도, 그 맛을 모두가 비슷하게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로그램 말미에 MC들이 실제 아티초크 요리를 먹어 본 순간, 그 맛을 여전히 모르는 나와 그들은 다른 존재가 되었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대니얼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셔브리의 책 《보이지 않는 고릴라》에는 사람의 인지 능력에 대한 많은 실험과 일화가 등장한다. 그중 하나가 책 제목의 배경인 '투명한 고릴라 실험'이다.


   | 흰 옷과 검은 옷을 입은 학생이 서로 농구공을 주고받고 있다. 피실험자에게는 미션이 하나 주어진다. 영상을 보면서 흰 옷을 입은 학생이 몇 번이나 공을 주고받는지 세는 임무다. 농구공을 주고받는 학생 사이로 고릴라 복장을 입은 한 사람이 슬금슬금 들어와 화면 중앙에서 가슴을 치고는 반대편으로 사라진다. 실험 후 피실험자에게 고릴라를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고릴라를 전혀 보지 못했다고 답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본다'고 실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눈은 정보를 감각할 뿐이다. 자극도 신경 정보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왜곡이 일어난다. 더군다나 눈이 정확한 정보를 뇌로 보냈다고 한들, 그 정보를 기존의 방식대로 처리해 버린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임을 강조하기보다는 실질적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본다 해도 실제를 100% 볼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이니 말이다.

새로운 야자매트가 공원에 곱게 깔렸다.

2023년 6월 7일 수요일

날씨가 오래간만에 참으로 맑았다. 막힌 도로에서도 밉지 않은 아침이었다. 도착한 송해공원에는 햇살이 가득했다. 사계공원의 꽃들은 더욱 화사했다. 공원 입구에 내려놓았던 야자매트는 이제 바닥에 곱게 깔려 있었다. 야자매트 위로 발을 옮겼을 때, 새 신을 신은 것 같은 느낌이 확 올라왔다. 낡은 야자매트에 너무 익숙해 있어서 야자매트를 교체하기 전에는 그 자체를 잘 인식하지 못했다. 새 야자매트는 푹신하지만 왠지 뻑뻑한 새 신발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동안 어색할 것이다.


2023년 6월 8일 목요일

송해공원의 하단에는 이제 막 얼굴을 내민 아침 태양을 향해 해바라기가 차례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심긴 지 한참이 지났다. 꽃이 없는 해바라기를 여러 번 보았지만, 꽃이 피기 전까지는 그 모종이 해바라기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해바라기 꽃이 고개를 내밀었을 때, 나는 심긴 식물의 잎과 줄기가 해바라기 품종의 특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동안 꽃이나 열매가 없는 식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탓이다. 송해공원의 연못에는 가득 핀 노랑어리연꽃들 사이로 꿀벌들이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부지런히 날아다녔다.

송해공원 화단에는 다양한 꽃들이 아침햇살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2023년 6월 9일 금요일

며칠 전부터 산에서는 진한 밤꽃향이 송해공원 곳곳으로 흘러내렸다. 만세교에서 바라본 녹음이 짙은 야산에는 '저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 노르스름한 꽃으로 덮인 밤나무들이 '낭중지추'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산에 있는 밤나무 개체수를 모두 셀 수 있을 듯 보였다. 옥연지의 맑은 물아래에는 이제 어느 정도 자라난 검정말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옥연지 주위 산책로에서는 심심치 않게 거북이도 만날 수 있었다. 오늘은 손바닥보다 작은 어린 개체도 볼 수 있었지만 거북이에게는 아직 숨을 공간이 없다. 내가 지켜본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깊은 물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한 여름이 오면 검정말은 숲을 이루며 수면까지 올라올 것이다. 옥연지의 생물은 여름이 다가올수록 편안한 안식처에서 좀 더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송해공원의 작은 풀 하나, 나무 한 그루가 꽃과 열매를 만들지 않았다고, 그래서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그 존재 자체를 없었던 것인 양 무시할 수 있을까? 세상 그 어느 것도 '존재' 자체로 빛나지 않는 것은 없다. 부귀를 목에 걸치지 않아도, 삶을 살아낸 것만으로도 우리는 빛날 수 있다. 만약 그러하지 못하다면, 늘 함께 하고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내가 톺아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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