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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노 쌤 Jun 24. 2023

만남

자연에서는 갑작스러운 만남 조차도 자연스럽다.

어린 시절 하루 대부분을 밖에서 놀았다. 제기차기, 딱지치기, 숨바꼭질, 구슬치기 등 하고 싶은 놀이는 넘쳐났다. 놀고 있어도 시간은 늘 아쉽고 부족했다. 해 질 녘 집집마다 담장을 넘어 골목으로 흐르는 된장국 냄새는 나의 놀이 시간이 끝나감을 알렸다. "아들, 밥 먹자!" 엄마의 목소리가 담장을 타고 넘었다. 그러면 친구들과 다음날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하나둘씩 집으로 흩어져 돌아갔다. 그 즐거웠던 하루는 내일도 그리고 또 내일도 계속될 것 같았다. 


놀이는 혼자 할 수 없다. 같이 놀아줄 상대가 있어야 한다. 인생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출발해 관계로 끝나는 게임과 같다. 놀이 방식은 복잡하다. 모든 관계의 중심을 나로 두면 관계할 타인이 사라지고, 타인에게 두면 내가 없어진다. 2명에서는 하나의 관계가 생기지만, 3명이 되면 3개, 4명이면 6개, 5명이면 10개가 된다. 관계할 수가 많아지면 복잡한 역학 관계로 뇌가 감당할 수 없다. 사회성을 유지하려면 그만큼의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관계할 수 있는 자기만의 크기를 갖고 있다. 관계에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인간 사회의 만남은 그래서 더 힘들다.


자연에서의 만남은 자연스럽다. 새로운 존재는 늘 나를 묵묵히 기다린다. 내가 찾지 못할 뿐, 그들은 늘 내 앞에서 서성인다. 나의 뇌가 그 새로운 생명의 존재를 인식했을 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다른 세계로 들어가듯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이어지는 토끼굴로 들어간다. 신비롭고 놀라운 하나의 생명은 또 다른 친구를 소개하며 나를 안내한다.   

나는 새를, 새는 나를 바라본다.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다.

2023년 6월 19일 월요일

월요일은 늘 아쉽다. 특히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사고로 인해 일부 구간에서 정체가 심했다. 덕분에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했지만, 도착은 늦어졌다. 아쉬운 마음에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섰다. 옥연지 수위가 많이 낮아졌다. 호수를 끼고 산책을 하다 새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우거진 나무 사이로 새는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 새는 숲 속으로 꼭꼭 숨었다. 숲은 그들만의 놀이 공간이었다. 그 순간, 나뭇잎 사이로 짙은 노란색과 검은색이 섞인 새 한 마리가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꾀꼬리인가?"라는 생각이 들 찰나, 머릿속에서 인지할 겨를도 없이 무성한 잎 사이로 새는 모습을 감춰버렸다. 꾀꼬리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또 만날 거야!"라는 희망만 머릿속에 되뇌었다. 아쉬움으로 돌아서는 송해공원 화단에는 수국 화분이 통로를 따라 일렬로 놓여 있었다. 여름 화단이 한층 더 화려해졌다. 차를 돌려 돌아가는 길! 도로변 논이 햇살로 반짝이는 은색의 물결로 눈을 간지럽혔다. 


2023년 6월 20일 화요일

"오늘은 꾀꼬리를 꼭 찾아야지!"라는 의욕으로 아침 출근길이 나의 기대와 욕심으로 가득 채워졌다. 꾀꼬리를 찾기 위해 산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올랐다. 초입에서부터 새소리가 요란했다. 여기저기 새들의 합창이 한창이었다. 꾀꼬리도 그 속에서 가끔 합창 대열에 합류하는 듯했다.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은 수풀과 나뭇가지를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꾀꼬리는 산책이 끝날 때까지 한두 번 소리만 들려줬을 뿐 꼭꼭 숨어 있었다. 산책로 옆 옹벽에는 칡이 줄기를 길게 뻗고 있었다. 


2023년 6월 21일 수요일

송해공원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써야 했다. 한 손을 잃어버린 나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에 불편해졌다. 화단의 꽃은 작은 물방울을 영롱한 구슬 장식으로 달고 있었다. 연잎에도 초롱초롱 물방울이 은구슬처럼 굴러 다녔다. 담긴 물의 양이 많아지면 쪼르르 쏟아내고 다시 작은 물방울을 모으기 시작했다. 어린 참새는 비를 맞으면서도 여전히 어미에게 먹이를 조르고 있었다. 어미는 지난 주와는 다르게 어린 참새의 보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가끔 어린 참새 옆으로 날아들 뿐이었다. 

내린 빗방울은 아름다움을 뽐내는 식물들의 영롱한 장식품이 되었다.

2023년 6월 22일 목요일

날씨가 맑아졌다. 내린 비로 호수는 더욱 깨끗했다. 하지만 비가 왔음에도 수위는 계속 낮아지고 있었다. 장마를 대비하고 있는 듯 보였다. 주말 농장의 작물은 많은 결실을 맺고 있었다. 여름이면 생각나는 옥수수가 영글기 시작했고, 오이도 많이 자랐다. 나는 산책길을 걸으며 계속 고개를 들어 꾀꼬리를 찾았다. 금굴 입구에서 왔던 길로 다시 발길을 옮겼다. 그때 바닥에 떡하니 앉아 있는 주먹만 한 두꺼비와 마주쳤다. 두꺼비는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내가 새를 찾고 있을 때, 바닥에는 다른 생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주차장에 다다랐을 때 아쉬운 마음이 확 차올랐다. "어디 찍을 새가 없나?"라고 생각하던 순간, 바로 옆 다리 난간에서 새 한 마리가 울기 시작했다. 마치 자기를 찍어달라는 듯 어린 알락할미새가 앉아 있었다. 녀석은 한참을 난간에 앉아 모델인 양 자세를 취해 주었다.   

짙은 녹색 잎은 강한 햇살을 옥수수 낱알에 차곡차곡 채우고 있었다. 

2023년 6월 23일 금요일

날씨가 더웠다. 햇볕을 안고 걷기에는 조금 망설여졌다. 그늘을 따라 걸었다. 새들은 오늘도 분주했다. 장마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옥연지 수위는 한층 더 낮아졌다. 호수에 설치해 둔 펌프가 모래 바닥 위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낮아진 수위에 물속에 잠겨 있던 굵은 나무줄기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많은 붉은귀거북이 이런 곳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담소 전망대로 이어지는 산책길 옆 호수 가장자리에는 검정말이 수면까지 올라왔다. 그 수초 사이로 많은 배스와 블루길이 헤엄치고 있었다. 담소 전망대에 도착해서 호수 바닥에 있는 특이한 둥근 문양을 발견할 수 있었다. 블루길이 다른 개체의 침입을 막는 세력권 행동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블루길은 둥지에 알을 낳고 둥글게 헤엄치며 세력권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낮아진 수면은 새로운 생명의 일상을 소개하고 있었다.

 

한 주 내내 만나길 기대했던 꾀꼬리는 마지막 금요일까지 보지 못했다. 숨바꼭질에서 친구를 끝까지 찾지 못했을 때, 우리는 "못 찾겠다. 꾀꼬리"라고 외쳤었는데, 이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닌 듯하다. 분명히 있는데 찾을 수가 없다. 꾀꼬리는 만날 수 없었지만 그 녀석은 나를 행복한 탐사로 이끌어 주었다. 그 녀석을 찾는 동안 다른 생물과 만날 수 있었다. 곤줄박이, 할미새, 방울새, 뱁새 등 숲에는 작은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아직도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 친구들은 도감과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가는 중이다.  

블루길은 남을 밀어내 관계할 수 없는 삶의 범위를 흔적으로 남기고 있었다.


삶은 작은 부품이 모여 하늘을 나는 비행기와 비슷하다. 비행기 부품을 다 떼어내면 부품들만 남는다. 그 부품에는 비행기가 없다. 더 작은 나사나 볼트와 같은 부품으로 분리하면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존재가 된다. 우리 삶도 특별할 것 없는 타인과 어떻게 관계 지을 것인가에 따라 완성된다. 나와 타인의 관계를 유의미하게 만들면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 관계가 모여 하늘을 유유히 나는 비행기가 될 수도 있고, 전혀 날지 못하는 고철 덩어리가 될 수 있다.  


만남과 만남은 새로움으로 이어진다. 만남은 다른 존재가 있기에 가능하다. 나만 존재하면 만날 수 없다. 다른 존재를 긍정하고 공감의 반경을 넓혀가야 한다. 내가 관계할 수 있는 역학 함수 안에서 최적을 값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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