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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노 쌤 Jul 16. 2023

두 얼굴

자연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변한다.

인간은 영원불멸의 존재가 아니다. 한 개체의 죽음뿐만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멸종까지 자연의 질서에 따르겠다는 언약이 있었기에 존재를 허락받았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시간이라는 큰 강줄기를 따라 흐르면서 존재했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비의 계절이다. 장마 기간은 '기간'이라는 시간의 한계를 무시하려는 듯 바람과 함께 활개를 치고 있다. 전국적으로 침수와 산사태 등이 발생하며 인명 피해까지 뛰따랐다. 많은 사람이 하늘을 원망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문제의 근원은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 100년 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이 천년만년 살 것처럼 지구에서 활개를 친 결과다. 이제 지구 온난화는 세계 인류가 직면한 심각한 환경 문제가 되었다. 


송해공원은 계속해서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고 있다. 기분 좋게 만드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달성군은 관람객을 맞이하기 위해 철 따라 화단에 꽃을 심고, 시원하게 분수를 운행하고, 알록달록 불빛으로 저녁밤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하지만 공원의 건물, 다리, 조형물 등은 영원할 수 없다. 인간이 만든 형상은 빠르게 사라질 운명을 가지고 있다. 공원의 시설이 늘어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인간의 손을 요구할 것이다.  


2023년 7월 10일 월요일

송해공원 산책로 어디에서든 매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매미의 유충은 땅속 어두운 곳에서 3~17년을 나무 수액을 빨아먹으며 살았다. 그 긴 인고의 시간을 끝내고 여름 한 철 짝을 찾도록 허락된 기간만 나무에 기어 올라 우화 한다. 선명한 초록빛 혈액이 흐르는 날개를 펼치며 우화에 성공하면, 날아올라 나무에서 목청껏 울어댄다. 나무에 앉은 매미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여러 마리가 동시에 울어대면 더 찾기 힘들다. 그 높고 우렁찬 울음소리에 방향감까지 잃는다. 

호숫가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꾀꼬리 소리에 이끌려 다시 길을 돌아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섰다. 계속 내린 비로 인해 절개지에 드러난 바위 위로는 빗물이 축축이 흐르고 있었다. 고온 다습한 탓에 머리 꼭대기에서 금세 땀이 흘러내려 얼굴로 흘렀다. 옷도 몸에 껌처럼 달라붙기 시작했다. 

자연은 일정한 형태를 허락하지 않는다.

2023년 7월 11일 화요일

여름의 입성을 알리던 해바라기가 화단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부지런한 작업자들이 시든 해바라기를 모두 캐내고는 그 자리에 다른 품종을 심었다. 궂은 하늘은 오늘도 비를 뿌릴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하천이 흘러오는 옥연지 초입에는 바닥의 모래가 물길에 따라 깊게 파여 있었다. 옥연지는 많은 물을 계속해서 배출하고 있었다. 장마로 새소리는 잦아들었지만 잠자리는 떼를 지어 호수 위를 날아다녔다.  

산책로 비탈에는 지난달 작업자들이 열심히 쌓아 두었던 모래주머니 방벽이 조금 무너져 내렸다. 산비탈의 유실을 막기에는 유입되는 빗물의 양이 너무 많았다. 부지런한 빗방울이 모래 방벽 아랫부분의 작은 모래알부터 끊임없이 산 아래로 끌어내렸다.

혹시 우리 언제 만난적이 있나요?

2023년 7월 12일 수요일

공원은 유난히 조용했다. 그래서인지 공원에 놓아둔 인형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팔레트 모양의 조형물과 함께 꽃을 들고 있는 인형, 식물에 물을 주고 있는 인형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혼돈이 일었다. 언제부터 이것들이 여기에 있었을까? 언제부터 보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그동안 관심이 온통 새와 나비에 쏠려 있었던 탓일 것이다.

탐소 전망대로 이어지는 나무 데크는 비에 젖어 미끄러웠고, 잔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어제 내린 강한 비바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전망대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금굴로 이어지는 길은 쓰러진 나무로 가로막혀 있었다. 산책로 양 옆으로 서 있던 나무 여러 그루가 쓰러졌다. 어떤 녀석은 뿌리를 드러낸 채 넘어졌다.  

비바람에 나무는 찢기고, 부러지고, 뿌리 채 뽑혔다.

2023년 7월 13일 목요일

계속된 비로 수위는 높아졌다. 참새는 공원을 떼를 지어 날아다녔다. 구름이 낮게 내려앉은 공원의 아침은 당장 비가 쏟아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산책을 시작한 지 5분도 안 돼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던 길을 재빨리 돌아와 차에서 우산을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산책길을 따라 나를 반기든 작은 텃새들이 모두 자취를 감췄다. 다만 까치는 깡패처럼 우르르 몰려다녔다. 오늘은 비 내리는 만세교 위를 조용히 그냥 걸었다.


2024년 7월 14일 금요일

비가 쏟아졌다. 집을 나서는 나에게 아내는 "오늘은 송해공원 가지 말고 차에서 풍경이나 감상하고 출근하세요."라고 당부했다. 출근길은 금요일임에도 막혔다. 송해공원에도 도착했을 때,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호기 좋게 우산을 챙기고 산책을 나섰다. 바람이 강했다. 바람은 우산이라는 방패를 허락하지 않았다. 빗물은 수평으로 날아와 사정없이 나를 때렸다. 바지가 금세 젖었다. 2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차로 돌아왔다. 차를 타고 공원을 순시하듯 물로 잠긴 주차장을 돌아 출근해야 했다. 

해바라기에게 허락된 송해공원에서의 시간은 이제 끝이 났다.

 송해공원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은 산 정상으로 돌을 반복해서 굴려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운명과 같다. 송해공원에 유입되는 하천과 옥연지 하천 유입 부근은 지난겨울 굴착기를 동원해 평탄화 작업을 해 두었다. 하지만 이번 장마로 하천 바닥은 다시 변형되었다. 장마가 끝나면 모래주머니 방벽도 다시 쌓아야 하고, 쓰러진 나무도 다시 제거하고 산책로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산책로 산기슭을 따라 붕괴나 산사태 위험은 없는지도 점검해야 할 것이다.


변화는 세상을 움직이는 진리다. 세상의 모든 것은 고정된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화를 겪게 된다. 부서지고 생성되며, 죽고 다시 태어난다. 내린 비로 산사태가 일어나 흙이 생기고, 바람이 불어 나무가 죽으면 새로운 생물을 위한 양분이 된다. 무자비하면서도 창조적인 이런 자연의 모습에서 조상들은 신을 떠올렸을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파괴하고 치유하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자연의 변화를 막는 것보다 치유 과정을 기다리는 여유가 더 필요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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