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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노 쌤 Jul 24. 2023

출입금지

삶에는 침범받고 싶지 않은 혹은 들어가지 말아야 할 경우가 존재한다.

공연장에서는 중요한 에티켓이 있다. 휴대전화는 끄고, 공연 장면도 촬영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함께 가장 중요한 에티켓은 공연 중 이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급한 볼일이 생길 경우 이석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공연장을 나와 화장실을 자유롭게 갈 수는 있다. 문제는 재입장이다. 공연 중간에 문을 열면 공연하는 배우와 관람객에게 큰 실례가 된다. 다수가 공연에 집중하는 데 방해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공연 중 재입장은 막과 막 사이 일정 시간만 가능하다. 재입장으로 관람이 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해 극장에서는 공연장 입구에 큰 텔레비전으로 공연 장면을 중계한다. 모두를 위한 잠깐의 출입금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2년 차 여교사였다. 교사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의 삶 일부를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구김 없는 성격에 늘 규칙을 잘 지키며 자라온 모범생이었을 것이다. 이는 아이를 사랑하며 가르치는 교사의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숙명과 같은 품성이다. 금쪽이가 넘치는 학교에서 교사 본인의 세계를 너무나 쉽게 침범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큰 재앙일 수밖에 없다. 교사는 학부모의 생각과 달리 강력한 존재가 아니다. 쉽게 상처받고 그 상처가 아무는 과정 또한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2023년 7월 17일 월요일

비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든 오전이었다. 옥연지 3 주차장 건너로 보이는 수문에는 폭포처럼 물이 흘러내리며 장관을 이뤘다. 옥연지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깔때기처럼 생긴 지형으로 주변에서 내린 비는 모두 옥연지로 흘러든다. 옥연지는 그만큼의 물을 또 계속해서 흘려보내야만 했다. 

내일은 더 큰 비가 예상된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이번 장마는 유난히 소란스럽다. 국지적 폭우로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산사태 발생의 우려로 산간지방과 위험한 축대 근처의 출입통제가 실시되었다. 그 여파로 송해공원의 일부 산책로에도 출입통제 구간이 생겼다. 나무 데크 입구에 출입금지라는 안내판이 걸렸다.


2023년 7월 18일 화요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원으로 유입되는 수량이 엄청나게 불었다. 우산을 쓰고 사계공원으로 들어갔다. 내리는 비로 시들어가는 꽃잎이 서로 달라붙어 있었다. 오늘은 산책로 입구부터 통제되고 있었다. 통제선이 앞으로 당겨진 것이다. 통제선 너머 바닥은 물로 가득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일찍 출근해야 했다.

 

들어가면 안되는 출입금지 구역이 생겼다.

2023년 7월 19일 수요일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송해공원 입구 주차장으로 진입하기 위해 차를 돌렸다. 아뿔싸! 주차장이 출입통제에 들어갔다. 오뚝이 표지판 여러 개를 세우고 출입통제 테이프를 쳐 놓았다. 오도 가도 못하고 우회전을 독려하는 경적소리만 들으며 서 있었다. 다리 근처에 차를 세운 후 우산을 쓰고 주위를 살폈다. 마을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제외하고 공원과 관련된 모든 구역이 출입통제에 들어간 상태였다. 물이 고이지 않은 사계정원조차도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통제선 아래로 고개를 숙이며 들어가고 싶었지만 통제선을 지켰다.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일찍 출근했다.


2023년 7월 20일 목요일

얼마나 기다렸던 맑은 하늘인가! 비는 그쳤고, 모든 것이 쾌청했다. 주차장과 산책로 입구에 쳐져 있던 출입통제 선은 사라졌다. 하지만 나무 데크로 들어가는 입구는 여전히 출입통제 선이 두 개나 쳐져 있었다. 

옥연지 생물들은 모두 바빴다. 나비와 벌은 꿀을 찾아 꽃 속을 드나들었고, 잠자리는 짝을 찾아 비행하고 있었다. 산에서는 뻐꾸기, 직박구리, 참새, 박새, 멧비둘기, 꾀꼬리 등도 바쁜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다. 호수에는 백로, 왜가리, 가마우지가 물고기 사냥에 여념이 없었다. 만세교 다리에서 산을 바라보았다. 녹음이 짙은 산은 묵은 때를 벗은 듯했다. 이때 샛노란 꾀꼬리 두 마리가 산 중턱을 날아 이동하고 있었다. 찾았다 꾀꼬리! 언젠가는 저 녀석을 카메라에 꼭 담을 것이다.

사계공원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처음 보는 녀석이다. 이 녀석은 겁도 없이 다가와서는 벌러덩 배를 드러내며 누웠다. 나를 집사로 승진시켜 주겠다는 의사의 표명이리라. "야옹아! 내 마음은 출입금지 구역이야!"

내 마음속으로 침범하려는 녀석이 등장했다.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학이 시작되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방학이 있는 교사라는 직업을 부러워하면서 부당한 배려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학생으로서만 방학을 보냈을 그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공무원인 교사에게 방학 기간은 정말 자유로운 시간이 아니다. 학생만큼이나 교사에게 방학은 중요한 시간이다. 상처받았던 많은 것을 치유하고 삶을 복원하는 시간이며, 더 좋은 교사로 거듭나는 배움의 시간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쉽게 침범하거나 방해받지 않을 출입금지 상태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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