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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봉 May 13. 2022

육아하며 박사과정

나와 아이들을 지켜줄 내공 기르기

나는 20살, 17살, 9살. 딸 셋의 엄마다. 

45세 나이에 지금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이다.      


나는 세 아이와 함께 꿈꾸고 싶다. 

엄마라면 누구나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늘 아이를 1순위에 두는 엄마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엄마 자신을 잃어버리고, 단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정말 아이들이 원하는 엄마의 모습일까?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꿈을 꾸며 끊임없이 공부하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우리에게는 시험 80점만 맞으라 하면서 엄마는 왜 100점 맞고 싶어 해요?”     

둘째의 질문에 깜짝 놀라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때가 기말고사 기간이었던 것 같다. 어린 막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와 졸린 눈을 치켜뜨고 일어나서 커피 물을 끓였다. 향긋한 커피만으로 잠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해 낮에 사 두었던 과자를 꺼내 먹으면서 책을 봤다.      

그때 둘째가 자다 깨서 눈을 비비며 방문을 살며시 열고 나오며

“엄마, 몇 시예요? 아직 공부해요?”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

“정원이 재우고 12시에 공부를 시작해서 2시간밖에 공부 안 했어. 이제 엄마도 잘 거야. "     

     

나는 아이들에게 헬리콥터 맘이 아니라 조력자가 되고 싶다. 

첫째가 배영을 배울 때 벽에 붙어서 수영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왜 일자로 똑바로 못 갈까? 생각했었다. 시간이 흐른 후 내가 수영을 배우면서 초보자는 배영을 배울 때 벽에 붙어 간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책으로 배운 이론이 아니라 내 경험치로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어릴 때 우리 엄마의 자랑은 언제나 자식들이었다. 

나는 늘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고 싶었다. 나는 중학교 때 제법 공부를 잘했었다. 나와 다른 학생 1명, 이렇게 2명이 특목고에 가기 위한 시험을 학교에서 모의고사를 쳤었는데, 나는 풀 수 있는 문제가 거의 없었다. 주변을 슬쩍 살펴보니 다른 친구는 문제를 술술 풀고 있었다. 시험이 끝나고 그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알게 된 사실은 그 친구는 이미 집에서, 학원에서 들어서 그 고등학교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그 당시에, 과학고등학교가 존재하는 것 자체를 알지 못했다. 물론 내가 알았다고 해서 그 학교에 합격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가끔 생각을 하곤 한다.      


자신이 싫어서 하지 않는 것과 몰라서 안 하는 것의 차이를 내가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렇게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아이들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지만, 원하는 것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조력해주고 싶다. 내가 가끔은 공부가 힘들고, 일이 힘들 때, ‘아이들을 조력해줘야지’ 이 생각을 하면 다시 힘이 솟는다.      


나는 우리 딸들이 자랐을 때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여자가 살기 편한 세상이 오길 바란다. 공부해서 어렵게 취직했는데, 결혼 후 육아 때문에 당사자는 하고 싶은데 일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없어지길 바란다.  

    

내가 넘어온 임신, 출산, 육아의 3대 산맥을 조금은 더 수월하게 넘을 수 있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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