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다림의 시간•1

난임병원을 찾아가기 까지

by 한승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약 5년여간의 시간.



•••


더 오랜시간 아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들이


곳곳에 수도없이 많이 있다는걸 알기에..


누구보다 그 마음이 어떤지 알기에..


이 글이


그들에게 조바심을 주거나 상처가 되지않길_


작은 희망과 위로가 되길_


•••



우린 2012년에 결혼을 했고


2014년 아이를 계획했다.


한방에 "뙇" 생긴 첫아기_


제주도에서 생긴 아이라서


"제인" 이라는 태명도 지어주고


두줄 확인하자마자 동네방네


"우리 임신했어요~!"


"계획하자마자 한방에 생겼지모에요~!"


................................


아기가 떠날 줄 모르고


철없이 떠들고 다녔던 그때..



이때부터인가?


삼신할매의 시샘이 시작된 것이.





아기집이 생기고,


링모양의 태낭을 확인하고,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아기를 보았고,


그 작은 생명체가 심장의 반짝반짝함으로


또 두구두구 심장의 울림으로


"나 여기 있어요."


신비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매주 소소하고 잔잔한 행복을 느끼며


병원을 찾은 어느날,


예뻤던 반짝반짝함도


작은 심장의 울림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첫아기가 떠났다.





수술을 했고


생애 첫수술이 유산수술이라


상처가 생각보다 컸으며


그때부터 조바심이 생겼다.




유산이 많다지만


도대체 왜 나였어야 했는지


도대체 왜.


왜.


자책과 상대없는 원망으로 나를 괴롭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긴 시간을 기다리게 될줄 몰랐다.





이 시기의 남편이 기억하는 대부분의 나는


상실감으로 침대에 누워


울고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우습지만


아픔의 깊이를 1~10까지 수치화한다면


정작 나는 4~5정도로 힘들었던 것 같다.


즉, 버티고 이겨낼 수 있을만큼의


시련이었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지금 드는 생각은


세상에 못이겨낼 시련은 없다는 것...


그냥 주어진 지금을 살아내면 된다는 것)



처음 겪은 유산이었지만


계획하자마자 쉽게 찾아온 아이였기에


훌훌털어내면 곧 아기가 찾아올거란


작은 희망이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설마 나에게 같은 일이 반복될거란


생각을 하지 못한채.




한약으로 몸조리를 하고 운동도 시작했다.


유산이 후 소위말하는 임신을 위한


"몸만들기"를 했던 것 같다.


임신확률을 높이기 위해


배테기(배란테스트기)도 사용했고


배란일을 크로스체크 할 수 있는


혀온도계도 구입했다.


산부인과를 다니면서 날짜를 받는 것은 기본.


혈류흐름이 좋아진다고


베이비아스피린도 먹었다.


내 마음을 들여다 볼 생각은 하지않고


쉼없이 많은 것을



"하려고만 했다"



무엇이든 안하면 못베길 것 같아서.




하지만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찾아 올 줄 알았던 아이는


몇개월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테스트기 두줄을 봤지만


아기집을 보지못했거나


착상을 하지못한채 피로 흐른다거나 하는


일들이 왕왕 생겼다.



병원에 가면 의사는


"엄격히 말하면


그런 것은 유산에 속하지 않아요."



맞는 말이지만 어찌나 매정한지.


심장이 콕콕 쑤셔댔다.



'난 두줄을 분명 확인했다구요.. 의사양반...'




이쯤되니


점점 내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반복되는 증상들로


'산부인과'가 아닌 '난임병원'을 찾게되었다.


이곳에서는 명쾌한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거란


희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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