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주쯤 난임병원을 졸업했다.
집 근처 여성병원으로 옮겼다.
마음이 참으로.. 이상했다.
아기를 볼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행복한 기운이 넘치는 그곳이
나에게는 트라우마 가득한 곳이었으니.
근데 다시 이곳에서 배 나온 산모들 사이에
내가 끼어있어도 되나!
"이. 거. 실. 화. 냐."
난임병원은 임신을 준비하러 온 사람들이기에 배 나온 사람들이 없다.
공기도 좀 무겁고
아이를 기다리는 불안한 심리상태가
느껴지는 곳이기에
혹여나 임신이 확인되어도 기쁨을 드러내기도 어렵고, 초음파사진을 받게 되어도 펄럭펄럭 휘날리며 다니는 것은 예의가 아닌 그런 곳.
나 역시 초음파 사진을 받고 급하게
가방 속에 구겨 넣고 나오기 일쑤였다.
아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들에
조바심을 얹고 싶지 않다.
남들이 말하는 안정기인 12주에
두 번째 아이를 잃어서인지
주수가 다가올수록 불안과 초조함이 심해졌다.
'이번에는 잘 유지될 거야.
얼렁 뚱땅이 잘 버텨줄 거라 믿어.'
긍정적인 마인드컨트롤을 해도
내심 또 나를 떠나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쯤 남긴 기록이다.
(12주~13주 사이쯤 어느 날)
•••
새벽 4시에 잠이 깼다.
아직 졸린 상태인데도 손의 촉감을
잊지 못해 기록한다.
엄마 걱정하지 말라고 꿈에 나타난
나의 아가들_
주먹보다도 한참 작은 녀석들이
나의 두 손바닥에서
부비부비, 요리조리 움직이며 노는데
꿈인데도 그 촉감이
얼마나 따뜻하고 깊은 위로가 되던지..
뜨거운 눈물이 났다.
잠이 완전히 깼는데도
그 따뜻한 온기가 손에 남아
다시 잠들기 아쉬울 정도..
내 뱃속에 정말
나의 아가, 아니 우리 아가가 있구나.
엄마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너희들에게 전해진 거 같아 미안해 아가.
그래서 꿈에서나마 찾아와 줬구나.
'고마워 우리 아가들.
이제 엄마 걱정하지 않고
아가들 믿고 기다릴게.'
•••
이 날 이후 난 우리 아가들을
잘 지켜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
11주 5일쯤의 얼렁뚱땅_
A가 일렁이, B가 뚱땅이.
젤리곰에서 이제 정말 사람형태를
갖추었구나. 기특해 아가들.
내 뱃속에 두 명이 있다니
되새기고 되새겨도 잘 믿기지 않지만
하나 확실한 건
"둘이라 눈물 나게 감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