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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립 Jan 13. 2023

01. 나도 해외에 나가보고 싶어

프롤로그


내가 중학생이었던 시절, 나의 인생 로드맵을 한번 그려본 적이 있다. 

'계획 한 대로 살게 된다'라는 어느 책에서 본 구절 때문이었다. 고작 14이었던 내가 그려본 내 대학생, 성인의 삶은 이상하리만치 당연하게도 해외에 살고 있었다. 그것도 뉴욕 하버드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있었고, (하버드에는 애니메이션 학과가 없고, 뉴욕에 있지도 않다) 서른에는 이미 내 이름으로 된 로고가 크게 걸린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회사가 맨해튼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만큼 야망도 컸고 해외로 나가서 살고 싶다는 꿈이 강렬했던 시절이었다.


현실은 어땠을까? 스무 살이 되고 군대에 입대할 때까지 난 그 흔한 해외여행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딱 한번 방일연수 기회를 얻어 학교 대표로 4박 5일, 일본에 갔다 온 게 전부였다. 

어린 시절 야망에 비해 참 초라한 인생이었다. 군대에서 슬슬 짬이 차고 일과가 자유로워지면서, 남는 잉여시간들은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고민들로 채워졌다. 그러다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뉴욕에 유학 가서 멋지게 살고 있는 한 친구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무슨 이유에선지 그날 밤 나는 잠을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 열등감인지 열정인지 모를 무언가가 밤새 온몸에서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나도 해외에 나가보고 싶어.'


해외에 나가고 싶다는 원대한 결심에 비해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모순적일 정도로 꽉 막힌 군부대안이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노력은 우선 다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매일 밤 연등(밤 10시 취침 소등 이후에도 따로 독서실에서 공부시간을 가질 수 있는 제도)을 신청해 휴가 때 사온 토플책을 공부하고, 기회가 되는대로 사지방(사이버 지식 정보방: 부대 내 PC방)에서 미국, 영국 유학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싶어 닥치는 대로 관련 학교를 찾아봤는데 그 와중에 학비가 저렴하다고 소문난 샌프란시스코의 한 학교 등록금이 4천만 원이었다. 우리 집 환경에 감당하기에는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유학을 준비하는데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확고한 목표도, 외로움을 참고 나아갈 수 있는 끈기도 아닌 돈이라는 걸 그 나이에 확실히 알아버렸다. 아무리 열심히 영어를 공부해도, 목표를 갖고 유학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봐도 돈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부대 종교행사 때 예배를 드리면서 기도를 하는데, 가슴속에 쌓였던 답답함이 목까지 차올랐다. 나도 모르게 화를 냈던 것 같다.

"하느님, 당신이 심어준 열망이고 욕심이니 당신이 해결해 주세요!"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대기업 회사의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이제는 지겨워질 만큼 넌더리 나는 파리의 풍경들이지만 가끔 그때의 나를 회상하면 해외에서 일상을 익숙하게 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신기할 때가 있다.

지금에 오기까지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그동안 내가 겪었던 이야기들을 써보려고 한다.  



파리에 사는 브랜드 디자이너, 다양한 Inspiration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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