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베이징
"프랑스나 독일은 어떠냐?"
내 고민을 옆에서 계속 지켜보시던 아빠의 지인분이 던져주신 말이었다.
그 당시 중국에서 일을 도와드리던 아빠의 파트너분들 중에는 교수님이 한분 계셨는데, 베이징대에서 강연을 하러 온 문화콘텐츠 학과 교수님이셨다. 나이는 조금 있으셨지만 스타일도 젊으시고, 하시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배우는 게 많아 자주 옆을 따라다녔는데, 며칠 사이 유학 고민에 울적해져 있는 나를 보고 쓱 던지신 말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당연히 영어권 나라를 가서 공부하는 게 유일한 선택지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나라에 있어 서양문화를 향한 가장 큰 창구는 미국, 다음이 영국 아닌가.
예전 같으면 선택지에 올려보지도 않았을 외딴(?) 비영어권 나라였지만 중국에 있는 동안 다양한 외국인들을 만나며 내 시야는 전보다 더 넓어져있었고, 한창 중국어를 배우며 어학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던 중이었다.
무엇보다 학비가 거의 무료에 가깝다는 말이 내 마음을 뒤흔들어놨다. 느려터진 중국의 인터넷 속도를 참아가며 열심히 서칭 해보니 정말 대학교 등록금이 한해에 고작 몇십만 원에 가까웠다. 심지어 프랑스는 애니메이션 수준이 전 세계 3,4위에 이르는 나라였고 예술가에 대한 지원도 빵빵하다는 얘기도 있었다.
만약 새 언어를 배워야 한다면 독일어보다는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안 가본)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프랑스에 대한 환상이 가득 차 있던 시절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해답이 나오자, 가슴이 두근거렸고, 방향이 잡히자 행동은 빨라졌다. 세상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던져주는 기회 같았다. 그 즉시 10월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끊고, 출국날짜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독학으로 불어를 조금 맛보기로 마음먹었다. 남는 시간을 한순간이라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오디오로 들려주는 원어민의 발음을 들으면서 문장을 따라 읽는데, 세상에, 이게 익숙한 알파벳인데도 불구하고 한 단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어학과는 완전히 다른 레벨이었다. 읽는 법도, 듣는 법도 몰랐지만 그래도 단어들이라도 미리 알아놓자 해서 네이버 프랑스어 사전을 뒤져 단어집을 만들어갔다. 중국에서 언어를 배우며 어떠어떠한 종류의 단어들이 일상에서 주로 쓰이는지 충분히 겪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선순위 단어들이 적혀나갔다. 만일 프랑스에서 입시를 준비하게 된다면 앞으로 정확히 얼마큼의 시간이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효율적인 방법들을 찾아나가야 했다.
짧은 시간 내에 짐을 정리하고 정든 모두와 작별인사를 했다. 알바로 일했던 삼겹살집의 모든 중국원 직원이 나와 배웅을 해주고 선물을 건네주었다. 중국에 있는 3개월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깊은 추억을 쌓은 터라 아쉬움도 많았지만, 나에게는 더 큰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10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중국에서 미리 예약해 두었던 유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포트폴리오와 어학을 같이 준비해 주는 입시 유학원이었는데, 최대한 내년에 프랑스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동안 어느 정도 혼자 작업해 둔 포트폴리오도 있고, 불어는 못하지만 어학에 자신이 있다고 어필했다. 하지만 어두운 낯빛으로 돌아온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내년 입학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파리에 사는 브랜드 디자이너, 다양한 Inspiration에 대해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