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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립 Jan 16. 2023

05. 죽음의 6시간

2011년 12월, 리옹


15시간이라는 긴 비행시간 끝에 창 밖으로 프랑스의 땅이 내려다 보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리옹의 생떽쥐베리 공항에 내려 짐을 찾은 뒤, 어쩌다 공항에서 친해지게 된 일본 사업가와 같이 리옹 시내까지 동행했다. 도심 역에서 그와 헤어진 후, 유학원에서 예약해 준 기숙사를 찾아 나섰다. 문제는 내가 프랑스에 도착한 날이 시간을 하루 거슬러, 12월 31일이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 산지 10년이 넘어가는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연말인 12월 31일 프랑스는 정말 모든 것이 닫는다. 그나마 오늘날, 그것도 수도인 파리는 조금 나아진 편이지만 그 당시 2011년 12월 31의 리옹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버스도, 지하철도 운행이 대폭 단축되거나 취소되었다.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것에 대해 유학원은 내게 단 한 번의 귀띔도 주지 않았고, 도착하자마자 아빠의 지인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줬던 중국과는 달리 이곳에는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도 가지고 있지 않던 시절이었다. 아직 4G도 들어오지 않았던 프랑스에서 와이파이, 데이터는 사치였고 내게는 유학원에서 건네준 2번 정도의 긴급 국제통화가 가능한 공중전화카드와 친구에게 빌린 아이팟이 전부였다. 


1시간 정도 버스를 기다리다 결국 나는 걷기로 결정했다. 내 양손에는 두 개의 커다란 이민가방이 들려있었고, 노트북이 든 무거운 배낭과 카메라 가방까지 두르고 있었다. 남대문 시장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싸구려 이민 가방은 중심이 잡히지 않아 계속해서 넘어지려는 걸 힘으로 잡아당기며 끌어야 했다. 손이 부르텄고 팔은 저려왔다.

지금이라면 구글맵으로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을 테지만, 스마트폰이 없던 그때의 나는 걸어가다 버스 정류장에 붙어있는 지도를 보며 방향을 확인하고, 또 다음 버스정류장이 나오면 그다음 방향을 확인하고 하는 식으로 길을 찾아갔다. 아, 지금이면 구글맵이고 뭐고 우버를 불러 바로 기숙사로 갔겠구나.


그렇게 장장 3시간을 걸었다. 간혹 문을 연 술집에서 사람들이 뭐라 뭐라 자기들끼리 소리치는 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다. 그게 'Bonne année!'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새해를 맞이하는 그들의 행복한 모습은 이민 가방을 끌며 길 한복판을 낑낑대며 걸어가는 내 모습과는 너무 대조되었다.

걷다 쉬고, 걷다 쉬고를 반복하며 기숙사가 위치한 높은 언덕 초입에 있는 Perrache라는 역에 도착하였다. 온몸은 땀범벅이 되고 물 한 모금도 못 마신 터라 녹초가 되어 길바닥에 주저앉아있는데 어느 할머니가 다가오시더니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봤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Taxi, taxi'를 외쳤다. 할머니는 역 위로 올라가면 택시가 모여있는 곳이 있다고 설명했다. 역 구조는 생각보다 복잡했고, 이상한 길을 몇 번이나 헤맨 끝에 겨우 택시가 있는 곳을 발견했다. 시내에서 4개의 가방을 들고 걷기 시작한 뒤 4시간 만이었다. 택시기사에게 기숙사 주소가 써져 있는 종이를 건네주고 트렁크에 짐을 실었다. 시원하게 언덕길을 달리는 택시 안에서 '돈 쓰는 게 이렇게 좋구나'라고 처음 느꼈다.


언덕 위에 성처럼 자리 잡고 있는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된 이후였다. 다행히 관리자가 상주해 있었고, 입실수속을 마쳤다. 넓은 기숙사 단지를 한참을 더 걷고, 마지막 힘을 짜내 계단을 올라 드디어 건물 3층에 있는 내 기숙사 방에 도착했다. 짐을 풀 새도 없이 나는 서둘러 물부터 마셔야 했다. 거의 5시간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라도 나가면 물을 구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에 지갑을 챙겨 내려갔고, 계단에서 마주친 외국인 한 명이 여기서 가장 가깝다는 마트 위치를 알려주었다. 약 20분을 걸어 겨우 마트에 도착했는데, 당연하게도 그 시간에, 그 날짜에 마트가 열려있을 리가 없었다. 다시 20분을 걸어 기숙사에 돌아왔고, 나는 더 이상 선택지가 없었다.

프랑스의 수돗물은 석회질이 많아 되도록 마시지 말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그때 나는 석회질보다는 생존의 문제였다. 그렇게 프랑스에 온 지 6시간 만에 환희의 찬 프랑스의 석회맛 수돗물을 감격스럽게 들이켰다. 


그 이후로 리옹에 오는 유학생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면, 공항에 도착해서 픽업 서비스를 받았다든지, 택시를 타고 바로 기숙사까지 편하게 왔다든지 등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왜 그렇게까지 고생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쨌든 나의 유학생활은 최대한의 예산을 아끼는 쪽을 중심으로 돌아갔고, 앞으로 계속 묘사하겠지만 이제부터 펼쳐질 온갖 고생과, 뭐 하나 쉽게 얻은 적 없는 과정들은 다 여기서 비롯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파리에 사는 브랜드 디자이너, 다양한 Inspiration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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