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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그래픽 브랜드의 인디게임 제작기

2018년 11월, 파리

by 다립


그래픽 브랜드의 고군분투 인디게임 제작기 그 마지막 장.

돌이켜보면 시작은 석사 과정 논문에서부터였다. 벨기에에서 석사 마지막 과정을 보내며 나는 '도시의 시스템'을 주제로 한 그래픽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고, 브랜드의 세계관을 소개하는 동시에 이 작업을 석사 졸업 논문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다만 유학생으로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남들처럼 긴 분량의 걸친 논문을 불어로 쓰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고, 짧은 텍스트 논문과 '작업 논문'을 같이 병행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도시의 시스템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간단한 인터렉션 게임을 만들어보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시작된 논문 프로젝트가 어느새 텀블벅에서 펀딩을 받고, 개발자 팀이 꾸려지는 등 점점 본격적인 모양이 갖춰지고 있었다.


게임의 스토리라인을 구축하고, 개발자를 모집하고,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벨기에에서 파리로 넘어오게 되었고, 계획에도 없던 패션 브랜드의 인턴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꼬박꼬박 회사에 출퇴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과연 이게 정말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들었지만, 매일 회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자마자 일러스트레이터와 유니티를 오가며 밤늦게 까지 에셋 작업을 하고, 스토리를 써가고, 엑셀 시트에 퀘스트와 이벤트 등을 구상하며 채워가고,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매일 팀원들과 온라인 미팅을 하며 그렇게 조금씩 게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체력적으로도 많이 무리가 가는 일정이었지만 함께 작업하는 팀원과, 우리를 믿고 펀딩 해준 후원자들을 생각하면 작업을 멈출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한 약속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 게임이 절반도 구현되지 않았을 무렵, 재영이에게 전화가 왔다. 흥분된 목소리였다.


"우리 게임,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벌 (BIC)에 선정됐대."


대체 이게 뭔 소린가 싶었다. 게임이 완성도 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어떻게?

얘기를 들어보니, 우연히 한 네트워킹 파티에서 게임 관계자들을 통해 BIC행사를 알게 되었고, 게임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기획과 아이디어 위주로 우선 제안서를 넣어봤는데, 이게 업체 쪽에서 선정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미완성이었지만 게임의 콘셉트와 기획의도가 흥미롭다며 꼭 소개해보고 싶다는 연락이 온 것이었다.


온갖 잔뼈가 굵은 게이머들이 모인다는 행사에 우리는 당장 선보여야 할 데모 플레이 버전이 필요했다. 밤을 새워 작업을 했고, 개발자분들도 합심해서 개발에 힘써주셨다. 그렇게 어느 정도 최소 플레이 진행이 가능한 데모버전이 완성되었고, 재영이는 이 파일을 들고 부산으로 향했다. 파리에 남아 있어야 하는 나는 당연히 함께 할 수 없었지만 재영이는 난생처음으로 게임 행사에서 유저들에게 우리 게임을 선보이고, 반응을 듣고, 여러 관계자들과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었다. 재영이가 보내준 행사장의 현장 사진을 보며 비로소 우리가 만들고 있는 무언가가 누군가에게 닿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우리는 BIC에 소개되었던 게임 116 개작 중 엄선된 40여 개 게임에 선정되어 지스타 (G-star: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게임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 교토 게임 페스티벌, 대만 타이베이 게임 페스티벌 등 다양한 국가에서의 행사에 초대되면서 우리는 전 세계의 유저들을 만나 게임을 소개하고 얘기 나눌 수 있었다. 특히 타이베이 게임 페스티벌은 나도 한국에 들어온 타이밍이 맞아 같이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때 겪은 대만 사람들의 순수함과 친절함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2018년 여름, 오랜 개발 작업 끝에 드디어 게임이 구글플레이에 첫 공개되었고, 11월 애플 앱스토어에도 정식 출시되었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구상만 했던 상상 속 게임이 실제로 구현되고 내 손 안에서 조작되는 것을 보니 너무 신기하고 놀라웠다. 단순히 독특한 인디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작은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치열했던 시간들을 지나 세상에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출시 직후,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매체 중 하나인 '디스이즈게임'에서 소개되었고, 인디 인벤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으며, 그 주 앱스토어 게임 다운로드 부문 2위에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인디게임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줄만 알았다. 유튜브에서만 봐왔던 온갖 대형 게임 유튜버들이 내 게임을 리뷰해 볼 줄 알았고, (몇몇 유튜버들이 리뷰 영상을 올리기는 했다) 엄청난 다운로드/ 플레이 수를 기록하며 떼돈을 벌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게임을 론칭하고 난 뒤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미친 듯이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오랜 시간 동안 개발기간이 연장되다 보니, 작업에 지친 개발자들이 게임 론칭을 기점으로 팀을 떠나게 되면서 게임의 사후 관리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예상치 못한 해상도 이슈가 터졌다. 새로 출시된 아이폰의 해상도가 바뀌게 되면서 달라진 화면 비율에 게임 화면을 새롭게 연동을 해야 했는데, 개발자가 없던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패드와 최신 아이폰 모두 해상도 적용이 불가능하게 되자, 애플 스토어에서 게임이 내려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애플 앱스토어는 출시 어플에 대한 기준과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아무 대처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우리를 보며 감사하게도 재영이가 페스티벌동안 알게 된 개발자 한분이 무상으로 대처를 해주시기는 했지만, 게임 출시 후 물살을 타야 할 초반 타이밍에 게임이 홀딩되어 버린 일은 우리에게는 굉장히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게임에 '술' 오브젝트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게임위원회에서 성인물 등급 판정을 받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게임도 아니고.. 오로지 독특한 그래픽과 참신한 콘셉트로 깊은 메시지가 담긴 인디게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단지 술이 한번 나온다는 이유로 성인물이 돼버렸다는 것이 허무하고 어처구니없었다. 이 부분은 추후 등급 재판정을 신청해 다행히 전체공개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역시 초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건 어쩔 수 없었다.


론칭 초기에 받았던 여러 마케팅 제안들도 이러한 해상도 이슈와 등급 문제로 모두 보류되었고,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우리 게임의 순위와 인지도는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되돌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만약 해상도 오류를 더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면, 성인물 판정을 받지 않았더라면, 개발과 관리를 조금 더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국내에서 보기 드문 참신한 인디게임으로 소개되고 우리는 더 날개를 달 수 있었을까? 아니면 잠깐 반짝하고 게임 트렌드에 맞지 않는 애매한 콘셉트로 다시 또 잊혀 갔을까.


어찌 됐건 이 프로젝트는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잃은 것도, 배운 것도 많았던 뼈아픈 시간이었고, 내가 직접 통제할 수 없는 범위의 작업을 관리하고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게임 하나만을 위해 열심히 힘써주고 노력해 주신 개발자분들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대표자로서 결과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노력한 만큼 제대로 보상을 해드리지 못한 부분도 지금까지 죄송한 마음으로 남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게임을 만들었다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경이로운 과정이었지만 또 동시에 많이 무모하기도 했던 프로젝트였다. 낮에는 패션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밤에는 게임을 만들었던 이 이중생활은 나를 내 인생에서 정말 마지막으로 미련하게 갈아 넣었던 시기였다.

그리고 낮밤으로 나를 한계까지 밀어붙였던 이 무모했던 작업 끝에, 나는 결국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눈에 이상이 느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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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사는 브랜드 디자이너, 다양한 Inspiration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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