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 같은 그와 35년을 함께 살아온 나.
그는 나에게, '긴장'이라는 것을 한여름 뜨거운 날 마당에서 등목 하듯 퍼부어댔다.
등목은 시원하기는 하다만, 긴장이라는 것은 그저 놀라움에 그칠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이 되어가고 등목처럼 기분이 좋아지면 참 좋으련만.
나는 그렇게 소스라치게 놀라기를 35년간 이어지고 있다.
그는 출근할 때, 나에게 할 일을 일러주었다.
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직장에서 해야 할 업무라 생각하고 군소리 없이 했다.
퇴근 시 지시한 일에 대한 검사를 했다.
"잘했네" 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은 없다.
어느 날 꿈속에서, 나를 다그치는 그를 보았다.
서럽고 서러워서 막힌 가슴이 뻥 뚫리도록 큰 소리로 울어댔다.
옆에서 그가 나를 깨웠다.
"왜 울어?"
나는 잠을 깼고 꿈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안 울었어"라고 말하는데 온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가 2박 3일 출장을 가는 날이면, 나는 두 아이들과 함께 그들이 원하는 음식점에 가서 외식을 했다.
그리고 우리 셋은 함께 거실에서 잤다.
내가 중간에 눕고 오른쪽에는 딸아이가, 왼쪽에는 아들 녀석이 누워서 나의 팔을 서로 잡아당기며 내 품을 파고들었다.
나에게 다람쥐처럼 붙어서 잠이 들곤 했던 두 아이들의 몸짓을 나는 잊을 수 없다.
행복했다.
그런 날은 밤이 참으로 짧았다.
밤 12시쯤 시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어느 날이었다.
그가 술을 마셨기에 내가 운전을 했다.
그는 차를 타자마자 이런저런 말이 아닌 말들을 1시간 내내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입술만 꽉 다물뿐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 뭔가가 나의 입을 통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잊었다.
나는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입술을 피가 나도록 꽉 깨물었다.
그리고 오른발로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
순간 차가 도로에서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커브길이 나왔다.
나는 가속페달을 더 세게 밟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움직임에 따라 내 운명은 결정될 것이므로.
우리 집 지하주차장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없다.
나는 주차장 아무 곳에 차를 버리고 집으로 들어와 서재로 가서 문을 잠갔다.
아마도 밤새 울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그에게 한 반항이었다.
그날의 반항의 의미는,
더 이상 삶에 대한 미련을 버렸고,
우리 둘 다 공중분해 되는 것이었다.
그가 나에게 준 '35년간의 긴장'은
나를 쪼그라들게 만들었고, 너덜너덜 다 해져버린 마음만 남겨놓았다.
이제 보인다.
나의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