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를 아끼는 것만이 능사일까?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부모님께서 직접 땔감을 준비해 와서 군불로 방구들을 따뜻하게 데워주셨다.
새벽에는 엄마가 밥을 지으면서 군불을 지피고, 저녁에는 아버지께서 군불을 지펴 주셨다.
방은 늘 따뜻했고 난방비용이 무언지 모르고 살았다.
결혼을 했다.
시댁은 그 당시 연탄아궁이로 밥도 짓고 난방도 하고 있었다.
아랫목에는 남편과 시어머니가, 윗목에는 내가 잠을 잤다.
나의 몸이 뉘어져 있는 곳은 냉골이었다.
밤새 덜덜 떨면서 잤고,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중요한 건 방의 전등이 너무 어두웠다.
전기세가 부담이 되어서 그런지 부엌도 어두컴컴하고 방안도 밝지 않았다.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씩 꼭 가야만 했다.
61세인 시어머니의 방청소며 밑반찬을 해야 했으니까.
가게 오픈 준비를 위해 일을 하고 어두워서야 집에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캄캄해서 그가 없는 줄 알았다.
식탁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나는 거실과 주방 이곳저곳에 불을 켰다.
저녁 준비를 하느라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베란다며 창고며 온갖 구석구석에 불을 다 켰다.
그가 하는 말,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고 했다.
서재에 가방을 놓고 나오면서 불을 끄지 않았고, 작은방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불을 끄지 않았다.
볼일만 보고 바로 불을 꺼야 하는데, 잠시 잊었다.
그는 나를 전기 먹는 귀신이라고 늘 말하곤 했다.
나는 추위를 못 견디고 더위를 유난히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겨울과 여름이 참 곤란하다.
나 혼자 사는 집이 아니니 말이다.
어느 겨울, 내가 마흔쯤 되었을 때 크게 몸살이 났던 적이 있었다.
일을 일찍 마치고 들어와서 보일러 온도를 높이 올려서 켰다.
온몸에 열이 나면서 오한이 왔던 모양이다.
약을 사러 가야 하는데 갈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이 아팠다.
그때 그가 퇴근을 했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베란다 창문이며 방마다 문을 다 열어젖혔다.
한겨울에 찬바람이 거실 한복판을 거대한 탱크처럼 뚫고 지나갔다.
그때도 그는 오늘처럼 말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고.
내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목적은, 기본적인 생활을 부담 없이 누리면서 살기 위함이다.
무작정 아껴서 고통스럽긴 싫다는 말이다.
열심히 일해서 삶의 질을 조금이나마 상승시키고 싶은 마음을 가진 나.
일하지 않고 아끼면 되는 것을 뭐 하러 고생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그.
밥 하기 귀찮아서 차라리 굶는 게 더 낫다는 그.
갑자기 저녁 준비가 하기 싫어졌다.
나는 내가 켠 불만 끄고 서재로 들어갔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우리 마을에 처음 전기불이 들어왔다.
호롱불아래 숙제를 하면서 살았던 나는 너무 놀라 그저 이방 저 방과 마당을 돌아다니며 신기해했다.
전기불이 없이도 살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전기가 우리 옆에 있고, 모든 일을 전기를 통해 하고 있다.
물론 아껴서 사용하는 건 옳은 일이다.
그런데 아끼는 차원을 넘어 사용하면 안된다는 느낌이 든 오늘은 너무 슬프다.
서재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어둡고 어두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여기저기 더듬더듬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가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맞춰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 방식대로 부딪히며 깨지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오늘은 그가 아닌 내가 너무 싫다.
왜 이러고 있는지.
왜 이모양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