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의 “실용”

실사구시와는 같은 듯 다른, 다른듯 유사한

by 강하단

무엇을 쓸 때 제대로 사용해야 하고 사용하는게 옳은지 따져야 한다. 말 그대로 적어보면 한자로 실사구시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배경이 있는데 사용할 사물이 이미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돈, 농산물, 에너지 예를 들어봐도 그렇다. 돈, 농산물, 에너지 모두 이미 제공되어 있으니 제대로 사용하고 또 사용하는게 옳은지 따져 본다. 그런데 이와 다르게 사용하는 길도 있다. 쓰임새를 다른 개념으로 새롭게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실용이라고 부른다. 돈을 쓰기는 쓰되 현금이 아니라 지역화폐, 암호화폐로, 쌀을 소비하되 마트가 아니라 가을에 수확할 쌀을 봄에 구입하는 식으로, 에너지의 경우에는 멀리서 송전탑으로 운송해오는 대신 가까운 발전소에서 생산한 유기능 전기만 사용하는 식으로 쓴다. 이런 연유로 실용주의 실용은 창의적이고 개념있는 씀이다.


‘사용’과 ‘실용’은 다르다. 실용의 의미를 살펴보면, 실용적이란 말은 있지만 사용적이란 말은 없는 이유도 이해된다.


시계가 발명되기 이전에도 시간은 있었다. 어제, 해가 뜨기 전, 조금 전 등으로 시간을 표현했을 것이다. 시계가 발명되면서 시간은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시각을 따지면서 다르게 쓰여지니 시간은 시계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DNA가 발견되기 이전에도 유전이란 말과 개념은 있었다. 자식은 부모와 닮았고 유전병도 있었고 과학실험 연구가 있었다. 그런데 DNA존재와 구조가 밝혀지면서 유전의 개념은 더 확실해 지고 완성되었다. 이렇듯 이전 개념이 새로운 개념으로 완성될 때 실용주의라고 부른다.


새로운 개념을 가진 쓰임은 모두 실용주의 실용인가? 그렇지 않다. 새로운 개념이 실용이 되려면 아이디어가 명확해야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계를 벗어나는 잘못된 쓰임인지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 제대로 그리고 옳음을 따지는 실사구시와 일맥상통하다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소독제로서의 염소는 이미 발명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염소가 나치에 의해 대량 살상무기로 사용되었다. 이를 두고 어느 누구도 실용이라고 하지 않는다. 나치 살인마들은 새로운 개념으로 염소를 이해했지만 옳음과 쓰임의 한계를 한참 벗어났다. 윤리의 범주 이전에 도덕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다. 이와는 다른 예도 있다. 유전자변형 기술이다. 유전자가 변형된 씨앗을 만들어 식량위기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했다면 노력 자체를 탓하기 힘들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 극복을 위해 유전자 mRNA백신을 만들어 인류를 구했다면 이 또한 대단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종자와 백신의 개념이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유전자 변형이란 새로운 개념이 합쳐져 농업와 의학분야에 완성된 개념이 만들어 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논쟁이 있다. 앞의 나치가 사용한 염소와는 다르게 윤리적으로 옳다 또는 문제가 있다는 전혀 다른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즉, 누군가는 실용주의 실용이라고 하고 다른 이는 아니라고 한다. 윤리적 합의가 이루어 지지 않은 것이다.


큰 기술과 개념에만 실용주의 실용이 있는건 아니다. 일상 속 작은 일들 속에서 실용은 쉼없이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된장과 술을 담으며 쓰레기와 폐기물을 처리하며 경제활동의 화폐 사용 등에서 오랜 개념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시각각 합쳐져서 실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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