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또 다른 집
남의 집을 공짜로 사는 방법
그는 어제와 같은 얼굴이었지만 미세하게 주름의 위치가 변경되었는지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집 안의 공기 또한 분명 어제와 달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공기 사이에 축축한 물방울이 스며들어 있었다면 오늘은 물방울 한 점 없는 한결 가벼운 공기다. 그녀는 어제저녁도 거른 채 가져온 막걸리와 음식들이 만들어 놓은 공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동안 보였던 완고한 태도와 다르게 약간은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
“아주머니께서는 4월 계약이 끝나기 전에 나에게 내용증명을 보냈어야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 이 사람은 이렇게 살아온 것일까? 이 사람은 법적으로 물고 늘어질 수 있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해 그동안 많은 시간을 공짜로 남의 집을 차지하고 살아왔던 것일 수도.
그는 11월 말까지 방안의 물건들은 모두 비워주겠다고 했다. 지금 다른 집을 알아보고 있으니 마당의 물건들은 내년 5월까지 치워주겠다고. 그녀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고소와 합의금을 요구한 것에 비한다면 놀랄만한 진전이라 여겨 수용하기로 했다.
“그럼 아저씨, 내년 5월이 지난 이후에는 내가 치워도 된다고 녹음해도 되겠어요? 아저씨 부탁인데 제발 녹음 좀 하게 해 줘요.”
“알겠어요. 그렇게 하죠.”
다음날에 집에 가보니 방안의 물건은 모두 밖으로 나가 있었다.
“아주머니, 내가 하루 종일 이거 밖으로 꺼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세요?”
그는 칭찬을 받으려는 10살 아이처럼 그녀를 보자 생기 있게 얘기했다.
“어이구, 잘하셨네요! 고생했어요.”
그녀는 오늘도 먹을 것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 옆에서 그가 간식을 다 먹을 때까지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는 예전에 사업이 망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고 사업 실패의 충격으로 집을 나와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라고. 그녀는 그가 그동안 병적으로 쓰레기들에 애착을 보인 것들을 떠올렸다. 그는 심지어 막걸리 병 하나도 버리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뉴스에서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있었으나 자신의 앞에 그런 사람을 만나고 보니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매일같이 퇴근 후에 집에 들렀다. 그는 치우기로 스스로 녹음을 한 날부터 매일 조금씩 물건들을 치웠다. 물론 계속 무엇이 없어졌다, 배상을 해 달라, 하며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말들을 계속해서 불안한 순간들은 지속되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녹음파일이 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이런 억지나 투정 비슷한 것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가 알아보고 있다는 다음 집, 표적이 될 다음 집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