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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하 Dec 22. 2022

우리 회사 복지는 예쁜 아가씨

이게 진정한 야생의 맛인가...

우리 회사 복지 뭐가 있지? 아 예쁜 아가씨! 가만, 상하씨보다 어린 아가씨는 없고 다 누나네? 아! 다음 달에 젊은 아가씨 새로 들어온다!



백수가 된 이후, 여러 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녔다. 지원한 회사들의 규모와 직무가 비슷하다 보니 면접 스타일도 거의 비슷했다. 그중 유독 한 회사에서 봤던 면접은 특별했다. 조건이나 환경 때문에 우선순위가 크게 높진 않았지만 직무 fit이 잘 맞아 지원한 회사였다. 면접 프로세스는 1차 기술 면접, 2차 CEO 면접으로 같은 날 2시간 동안 진행됐다.


회사에 도착하니 담당자가 나를 회의실로 안내해 줬고, 여기까지는 무난했다. 1차 기술 면접은 40분가량 진행됐다. 1차 면접이 끝나고 나서 2차는 안 봐도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2차 면접을 안 보고 곧장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내용과 무관.




면접 때 이상하게 느낀 포인트는 다섯 가지다.



1. 여자친구 있어요?


결혼했는지 물어봐서 미혼이라고 답했더니 여자친구가 있는지 물어봤다. 면접 때 기혼/미혼 여부를 물어보는 것도 실례라고 생각하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여자친구 있냐고 또 물어보는 건 선을 넘은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1차, 2차 두 면접관 다 여자친구 유무를 물어봐서 불쾌했다.



2. 갑작스러운 영어 면접


2차 대표 인터뷰 때 다른 외국인 개발자가 함께 들어왔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못 해서 갑작스럽게 영어 면접이 진행됐다. 말하다가 막히는 부분은 대표가 통역을 해주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영어 면접에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면접 내내 외국인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력서에 써져 있는 내 경력이나 경험에 대해 이상하다, 의아하다는 표현을 많이 했다. 혼나러 온 자리인 줄 알았다.



3. 이전 회사에 대한 공격


2차 면접이 시작하자마자 대표가 던진 첫 질문은 이거였다. "이전 회사에서 이런 거 하셨다고 했는데, 이게 가능한 건가요? 참... 글로벌 유수 인재들도 이런 건 이 기간에 못하는데ㅎㅎ 우리도 3년 만에 했는데". 비웃음을 머금고 이 질문을 하는 대표의 표정을 딱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권.위.주.'


권위로 가득 찬 사람 그 자체였다. 면접 자리이기에 나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답변을 했다. 말씀하신 것처럼 완벽한 기능을 구현한 게 아니라 우리 팀이 필요한 핵심 기능들만을 구현했다, 부족한 점은 많았다. 이렇게 계속 답변을 했음에도,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계속 비꼬는 말들을 했다. 중간중간 외국인에게 통역을 해주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다.


아직까지도 그 분위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이렇게 짜증나고 화나는 면접자리가 있다니.



4. 학교와 학군에 집착


"회사는 여기 나오셨네요? 저희 회사에도 이 회사 출신이 있는데~~~ 아 그리고 대학교랑 대학원 여기랑 여기 나오셨네요? 저희 회사에도 많아요. 그리고 고등학교는 어디 나오셨어요? 중학교는 어디 지역? 초등학교는? 아하~"

내가 가진 기술에 대한 신념이나 지원동기는 일절 안 물어보고 주로 이런 걸 물어봤다. 서로 알아가는 자리가 아니라 일방향 소통으로 진행된 면접이었다.



5. 회사의 복지 = 젊고 예쁜 아가씨


대표는 면접 말미에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회사 복지에 대해 말을 꺼냈다.


"우리 회사 복지 뭐가 있지? 과자랑 음료 있어요. 근데 내가 기분 좋으면 공짜고 기분 안 좋으면 없어. 기분 좋으면 다 사줘.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아 예쁜 아가씨! 가만, 상하씨보다 어린 아가씨는 없고 다 누나네? 아! 다음 달에 젊은 아가씨 새로 와요ㅎㅎ"


앞서 말한 네 가지는 그러려니 생각할 수 있다. 조직문화가 딱딱하고 안 좋은 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차별적이고 성희롱과 같은 말은 참을 수 없었다. 이 이후부터는 그냥 묻는 말에 "네, 네" 웃으면서 짧게 대답하고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이틀이 지나고 최종 합격했다고 연락이 왔다. 제안 받은 연봉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지원한 회사가 여러 군데 있어서 생각 중이라고만 대답했다. 그렇게 이 회사와의 연락은 끝이 났다.  




만약 다른 회사는 다 떨어지고 이 회사에만 합격을 한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상상도 하기 싫다. 이 회사 면접이 끝나고 정신이 또다시 번쩍 들었다. 나를 배려해주고 대우해주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실력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실력을 쌓고 선택의 폭을 넓혀서 최악은 피하고 최선의 선택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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