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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곰 Jun 21. 2022

서른두 살, 연봉 3500

서른두 살, 난 작은 중소기업에 재직 중이다. '중소기업'이라 하면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기업'이라는 뜻을 이미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이라는 형용사를 앞에 붙였다. 지금 내 상황을 대변하는 표현이겠지. 다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좆소기업이라는 표현은 쓰고 싶지 않다. 어찌 됐건 나를 인정해준 고마운 회사니까.

위 표현에서 대충 감이 오겠지만 현재 내 불만은 '회사'가 아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인지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인생을 갈아 넣고 있는 나의 모습에 종종 회의를 느낄 뿐이다.

당신은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원하는 일이었는가?

우리는 일주일에 5일, 하루 평균 8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 출∙퇴근 시간, 회식, 야근 등을 포함하면 인생을 회사에 갈아 넣으며 살고 있다는 표현은 절대 과하지 않다.



 나는 어려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었다. 자녀의 선택을 존중하고 사랑해주는 부모님이 계셨고, 원할 때마다 치킨을 시켜먹을 수 있는(어쩌면 많은 이들의 행복의 기준) 지극히 중산층인 집안에서 자랐다. 덕분에 우리 형은 어려서부터 주야장천 하고 싶은 음악을 놓지 않아도 됐고, 나 또한 영상을 만드는 일에 흥미를 느껴 지금껏 해왔다. 금수저라고 오해할까 봐 한 자 더 붙이자면, 대학교 학비는 장학금으로 메우고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직접 해결했다. 졸업 후에는 꿈에 그리던 KBS에 영상 제작자로 입사했다. 물론, 비정규직이긴 했지만.

그렇게 처음 사회에 나와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을 느꼈다. TV에서만 보던 연예인들을 거의 매일 마주하고, 내가 선택한 기술과 재능으로 돈을 번다는 게 뿌듯했다. KBS 로비에는 여러 팬들이 그들만의 스타를 보기 위해 늘 가득했다. 내가 출근할 때 출입증을 찍으며 게이트를 지나가면 어딘가에서 부러운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하루 중 가장 크게 묘한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계약 종료가 몇 달 남지 않았을 무렵, 우연히도 KBS 공채 시즌이 다가왔다. 나는 선배들의 제안에 힘입어 기대 반 장난 반으로 서류를 넣었다. 예상치도 못한 서류 합격. 부랴부랴 필기시험을 준비하고 그마저도 합격하기에 이른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면접장에 와 있었고 내 모습은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같이 일하던 선배들도 너는 분명 붙을 거 같다며 옆에서 기대감을 올려 주었다. 

 그렇게 한 달을 더 기다려 최종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불합격. "그저 내 부족한 학벌과 영어 점수 등이 발목을 잡은 거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은 척 넘겼지만 속으로는 많이 아쉬웠다. 정든 회사와 좋은 사람들을 떠나 다시 취업의 불확실성이 가득한 망망대해로 뛰어드는 도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도 않았고..

그래도 며칠 만에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안에서 참 많은 것들을 배웠고, 공채를 준비하면서도 내 안의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괜찮았다. 동경하는 연예인을 잠깐이라도 마주하기 위해 하루 종일 방송국 근처를 맴도는 팬들의 마음이 이런 걸까. 2년의 시간이 대단한 경험을 안겨준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든든했다.

그렇게 다시 사회에 나와 여러 중소기업을 전전하며 지금껏 영상일을 해왔다. 많이 압축하긴 했지만 여기까지가 내가 걸어온 길이다. 지금의 나는 서른두 살, 연봉 3500에 중소기업을 다니는 직장인이 되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큰 조직에서 나와 작은 기업을 선택할 때에도 나는 행복할 자신이 있었기에 미련은 없었다. 여러 번 이직을 하면서 다양한 기업문화 속에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평온한 조직생활을 해왔다. 물론 싸우기 싫어하고 남의 일에 크게 관심 없는 내 성격이 한몫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겪어온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자면 이 책이 끝날 때까지도 다 말하지 못하리라.)


 처음엔 적은 연봉을 받으며 중소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사람이 뭐 어떤 대단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싶었다. 어떤 이야기를 써도 성공한 사람의 한 문장보다 파워가 없을 것 같았고, 겉만 화려하고 내용은 없는 미사여구가 되지 않을까 고민이 됐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점은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대단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만으로 자극을 받고 생각을 넓혀줄 수 있지만 와닿지 않을 때가 많았다. 

나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 같은 세계의 이야기 같지 않았달까. 그래서 대단한 성공을 아직 이루지 못한 내가 지극히 와닿을 수 있는 자극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지루한 나의 커리어를 들어줘서 감사하고, 이제는 성공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도록 당신과 내가 놓치고 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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