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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무명작가
02화
아빠는 무명작가: "나 잘래요"
by
미꾸라지
Nov 14. 2022
잘 시간이 되었다. 아빠가 직접 썼다는 이야기 노트를 들고 방으로 왔다.
"자 오늘은 2017년 7월 17일 버스 안에서 쓴 얘기를 들려줄게."
"2017년 7월 17일 버스 안에서요? 어떻게 알아요?"
"응 다 기록해 두었거든."
아빠가 노트
에
적힌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오늘은 토요일. 어린이집이 쉬는 날이에요.
그래서 오늘 보람이는 아빠, 엄마와 신나게 하루를 보냈어요.
신나게 놀던 보람이가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어요.
“시러 자
기 싫다니까요!”
언제나 그렇듯
잘 시간이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는 화를 내기 시작하였어요.
“일찍 자야 내일도 신나게 놀지”
엄마가 다시 말했어요.
“시러요. 자기 시러요!!
엉엉.”
이번에는 보람이가 막무가내로
서럽게 서럽게
울기 시작하였어요.
“침대에서 재미난 옛날 얘기해줄게. 어때?”
엄마는 보람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보람이를 설득해보았어요.
“시러요. 안 잘 거예요!”
눈에 잠이 가득하였지만 안 자겠다고 계속 떼를 썼어요.
“그럼 침대에서 역할놀이 할까?”
엄마가 보람이가 좋아하는 역할놀이를 제안하였어요.
“시러요, 시러요. 더 놀 거예요!”
보람이는 막무가내였어요.
“보람!”
옆에서 보고 있던 아빠가 보람이를 불렀어요.
“잉잉”
울먹이는 목소리로 눈물을 흘리며 아빠를 바라보았어요.
“그럼 아빠랑 놀자. 아빠랑 얘기
하며 놀자.”
아빠가 얘기하자니 보람이는 갑자기 무서워졌어요. 아빠의 이야기는 어렵고, 재미없고 길거든요. 그래도 자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떡였어요.
아빠의 이야기는 항상 질문으로 시작해요.
“오늘 어린이집 갔어요 안 갔어요?”
그리고 보람이는 답하기 시작하였어요.
“안 갔어요”
“그럼 누가 놀아줬어요?”
“엄마, 아빠가요.”
아빠의 질문이 계속됐어요.
“아침부터 잠자는 보람이를 깨워서 뭐 보여줬어요?”
“번개맨요.”
“재밌었어요 재미없었어요?”
“재밌었어요.”
“번개맨 보고 있을 때 아빠가 뭐 가져다줬어요?”
“우유요.”
“우유 마시기 전에 뭐 마셨어요.”
“모르겠어요.”
“물 가져다줬잖아요. 목마를까 봐. 기억나요?”
“네”
아빠 얘기를 들어보니 기억이 났어요.
“번개맨 보고 엄마가 뭐 줬어요?”
“시리얼요”
“시리얼 하고 또?”
“응 과일요. 복숭아하고 블루베리요.”
보람이가 아침을 떠올리며 대답하였어요.
“아침 먹고 뭐해줬어요?”
“응 씻겨줬어요. 세수하고 샤워도 시켜줬어요.”
“그다음은요?”
“연극 보러 갔어요.”
“연극 보러 가기 전에는 뭐 했어요.”
“모르겠어요.”
보람이는 잘 기억이 안 났어요.
“예쁜 옷 입혀주었죠?”
“네 옷도 입혀주고, 로션도 발라주고, 선크림도 발라주고, 머리도 묶어주고, 양말도 신겨주었어요.”
답을 찾았다는 듯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했어요.
“그리고 무슨 연극 봤어요?”
“라푼젤요”
“연극 보기 전에는 뭐 사줬어요?”
“맛있는 빵이랑 딸기주스요.”
“라푼젤은 누구를 위해 봤어요?”
“응 보람이를 위해서요.”
“고마워요 안 고마워요?”
“고마워요.”
“연극 보고는 뭐했어요?”
“점심 먹었어요”
“점심은 뭐 먹었어요?”
“모르겠어요”
“보람이가 좋아하는 고기 먹었죠?”
“네 불고기 먹었어요.”
“점심 먹고는 뭐해줬어요?”
“카페 갔어요.”
“카페 가서 케이크도 사주고 낮잠도 재워줬죠?”
“네”
“그다음은 어디 갔어요?”
“서점에 갔어요”
“서점에 가서 뭐 사줬어요?”
“점토요”
“고마워요 안 고마워요?”
아빠가 다시 물었어요.
“엄마~”
그때 보람이가 방에 있던 엄마를 불렀어요.
“엄마 나 잘래요.”
안 자겠다고 떼를 쓰던 보람이가 갑자가 자겠다고 방으로 들어갔어요.
“왜 아빠랑 더 놀지 그래.”
엄마가 웃으며 말했어요.
“엄마, 아빠 얘기는 너무 길고, 재미도 없고, 어렵기까지 해요. 그냥 잘래요.”
끝.
그렇게 아빠 얘기가 끝났다. 내가 네 살 때 가든파이브에 갔던 날을 기록한 스토리라고 한다. 재미는 없었지만 그때 생각이 날 것 같기도 했다.
한 가지 궁금해졌다.
"아빠 그땐 내가 혼자 옷도 못 입었어?"
"아빠라 부르지 말고 작가님이라 부르라고 했지?"
"네 작가님. 작가님 그땐 내가 혼자 옷도 못 입었어요?"
"지금도 엄마한테 입혀 달라고 하잖아."
"아잇! 가끔 그러지!"
또 잔소리가 시작될 것 같아 이불을 덮어썼다.
"무명 작가님 굿나잇"
그러다 보니 졸음이 밀려왔다.
keyword
아빠
무명작가
이야기
Brunch Book
아빠는 무명작가
01
아빠는 무명작가: "이제 아빠라 부르지마!"
02
아빠는 무명작가: "나 잘래요"
03
아빠는 무명작가: "엄마도 부엉이?"
04
아빠는 무명작가: "아빠를 부탁해"
05
아빠는 무명작가: 엄마와 아기 바다사자
아빠는 무명작가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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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 글은 비록 미약하지만 내일은 심히 창대하리라, 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2023년 목표는 일주일에 한편씩 브런치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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