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하루가 끝난 날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 일도 한 것 같지 않은 날.
아침에 눈을 떴고 밥을 먹었고 하루를 버티긴 했는데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느낌.
그런 날이면 괜히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오늘
무얼 한 걸까. 해야 할 일은 그대로 남아 있고
이룬 건 없는 것 같고 시간만 흘러가 버린 것 같은 날.
살아냈다는 감각이 유난히 옅어진다. 나는 이런 날이
제일 설명하기 어렵다.
힘들었다고 말하기엔 분명 큰일은 없었고, 괜찮았다고 말하기엔 마음이 너무 텅 비어 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이 사실은 아무 일도 느끼지 못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날은
유난히 나를 작게 만든다.
뭘 했냐는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히고, 오늘 하루를 요약하라는 말 앞에서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건 아니다.
눈을 뜨는 걸 포기하지 않았고, 하루를 중간에 내려놓지 않았고, 끝까지 자리에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그걸 아무것도 안 한 하루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나는 이제 조금 다르게 부르려고 한다.
겉으로 보이는 성과는 없었지만 무너지지 않았던 하루.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뒤로 돌아가지도 않았던 하루.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날에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는 쪽을 선택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이 하루를 실패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가 아니라 아무 일 없이도
끝까지 버텨낸 하루라고. 그렇게 또 하루가 끝났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분명히 지나온 하루.
이런 날들이 쌓여서 우리는 어느 날 문득
여기까지 와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