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도록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하며 살아왔다.
나는 게으르지 않다는 것,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
그걸 보여주기 위해 더 많이 일했고, 더 밝게 웃었고,
더 오래 버텼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나는 스스로에게 늘 시험을 걸었다.
사람들의 기대를 맞추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무리하고, 조금 더 괜찮은 척하면 됐다.
문제는 그 모든 증명이 끝난 뒤였다. 나는 늘 지쳐 있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순간은 짧았고, 그 뒤에 남는 건
텅 빈 에너지뿐이었다.
정신과에 다니고, 내 상태를 이해하고, 조금씩 나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상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다.
나는 대체 누구에게 이렇게까지 증명하려고 했던 걸까.
그리고 왜 그 증명은 끝이 없었을까. 사실 나는
남들에게보다 나 자신에게 더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 “나는 문제없다.” “나는 버틸 수 있다.”
그 말을 확인받기 위해 나는 계속 나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버틴다는 건 늘 건강한 선택은 아니었다.
어느 날,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가 있었다.
예전 같으면 죄책감으로 가득 찼을 하루. 그런데 그날 나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오늘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나구나. 그 순간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나는 이제 모든 사람에게 이해받고 싶지 않다. 모든 자리에서 잘하고 싶지도 않고, 모든 관계에서 좋은 사람이고 싶지도 않다.
그건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다. 내가 지킬 수 있는 만큼만
나를 보여주기로 한 선택. 예전의 나는 인정받아야 안심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나를 이해하면 조금 덜 불안해진다.
그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내 삶을 크게 바꿨다.
이제는 쉬는 날에도 나를 변명하지 않고, 무너지는 날에도
나를 설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나는 그냥 말한다.
“오늘은 이런 날이야.” 그 말 하나가 나를 훨씬 가볍게 만든다. 증명하지 않기로 하자 이상하게도 더 오래 버틸 수 있었다.
에너지를 보여주기에 쓰지 않고 살아가는 데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기준을 통과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하루를 끝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실수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
증명은 필요하지 않다는 걸.
나는 그냥 살아가면 된다.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