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이제는 나를 증명하지 않기로 했다.

by 새벽

나는 오래도록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하며 살아왔다.
나는 게으르지 않다는 것,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


그걸 보여주기 위해 더 많이 일했고, 더 밝게 웃었고,
더 오래 버텼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나는 스스로에게 늘 시험을 걸었다.


사람들의 기대를 맞추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무리하고, 조금 더 괜찮은 척하면 됐다.


문제는 그 모든 증명이 끝난 뒤였다. 나는 늘 지쳐 있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순간은 짧았고, 그 뒤에 남는 건
텅 빈 에너지뿐이었다.


정신과에 다니고, 내 상태를 이해하고, 조금씩 나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상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다.


나는 대체 누구에게 이렇게까지 증명하려고 했던 걸까.
그리고 왜 그 증명은 끝이 없었을까. 사실 나는

남들에게보다 나 자신에게 더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 “나는 문제없다.” “나는 버틸 수 있다.”
그 말을 확인받기 위해 나는 계속 나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버틴다는 건 늘 건강한 선택은 아니었다.
어느 날,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가 있었다.


예전 같으면 죄책감으로 가득 찼을 하루. 그런데 그날 나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오늘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나구나. 그 순간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나는 이제 모든 사람에게 이해받고 싶지 않다. 모든 자리에서 잘하고 싶지도 않고, 모든 관계에서 좋은 사람이고 싶지도 않다.


그건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다. 내가 지킬 수 있는 만큼만
나를 보여주기로 한 선택. 예전의 나는 인정받아야 안심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나를 이해하면 조금 덜 불안해진다.
그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내 삶을 크게 바꿨다.


이제는 쉬는 날에도 나를 변명하지 않고, 무너지는 날에도
나를 설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나는 그냥 말한다.


“오늘은 이런 날이야.” 그 말 하나가 나를 훨씬 가볍게 만든다. 증명하지 않기로 하자 이상하게도 더 오래 버틸 수 있었다.


에너지를 보여주기에 쓰지 않고 살아가는 데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기준을 통과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하루를 끝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실수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
증명은 필요하지 않다는 걸.


나는 그냥 살아가면 된다. 그걸로 충분하다.

이전 13화12화.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