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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Dec 20. 2024

#102 무기력함

2024년 12월 20일 금요일 갑진년 병자월 무오일 음력 11월 20일

요즘 들어 무기력함이 느껴질 때가 많다. 특히 아침에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 집을 나서는 순간 괜찮아지는데 그전까지의 시간대에 살아 있는 게 쉽지 않다. 어쩌면 계절의 영향인 걸까. 하지만 이전까지의 겨울 아침이 어땠는지에 대한 명시적인 자료가 없다. 보통 저녁이나 밤에 흔적을 남기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아침에 남겨 놓은 흔적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아니면 시간대를 알 수 없는 기록들뿐이다.


어쩌면 지난주에 시작한 방 정리의 흔적이 아침에 일어난 나에게 '너 이거 해야 돼'를 조장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한쪽에서 물건을 끄집어내고 어느 정도 정리하고, 끄집어낸 물건이 줄어들면 다른 쪽에서 또 끄집어내고, 그러다 보니 계속 나의 물건들에 잠자리를 침범당하고 있다. 바닥에 깔려 있는 이불의 반 정도는 그렇게 끄집어낸 물건들이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그 녀석들 때문에 잠을 편하게 못 자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그래도 이제 서랍 위에 쌓여 있는 것을 정리하고 바닥에 끄집어낸 녀석들만 잘 넣어두든 처분하든 정리하면 끝나니까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몇 날 며칠을 이러고 있으니 아마 며칠 정도는 더 걸리겠지만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때로는 '아침을 여는 중얼거림'이랍시고 글을 올려놓고 다시 아침을 닫고 드러눕는다. '의무감처럼 할 거면 하지 마라' 하며 나 자신을 그냥 자게 두는 경우도 있고, '조금만 더 쉬다가 해야지' 하다가 후다닥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급박한 느낌을 받는 것을 꺼려하면서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해 그런 급박함 속에서 외출 준비를 하는 건 썩 유쾌한 감각은 아니다. 요즘은 종종 겪고 있지만. 다음 일정에 지장이 없는 경우에는 나의 개인적인 오전 일정을 한 시간쯤 뒤로 미루기도 한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무기력하게 시작되는 하루라도 아무튼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그런 상태로 집에 오래 있으면 점점 더 가라앉을 게 분명하기에. 집에서 심리적으로 가라앉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어디론가 나돌아야지. 집에 너무 오래 있었다가는 또다시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해 버릴 것만 같다. 그러고 싶지는 않다. 정말 그러고 싶지는 않다.


지원사업 3년 차, 아직도 방심하면 떨어질 것 같은 저 밑바닥이 보인다. 고요한 정적 속에 시계 소리만 들리는 이 집구석에 그렇게 혼자 남아버리는 것만 같다. 그럴 땐 나의 친구들이 의지가 되곤 한다. 소소한 연락을 주고받을 만한 사람이 서너 명쯤 있다는 사실은 큰 힘이 된다. 물론 무기력함이 커지면 나의 친구들은 무의식의 저편으로 사라지곤 하지만 말이다. 그런 순간에 나의 친구가 시답잖은 농담 섞인 DM을 보내면 괜히 피식하며 널 떠올리게 된다. 주로 라마나 나래가 그런 걸 보내곤 하는 것 같다. 어떤 의미로든 내 삶에 필요한 녀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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