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와 동전파스

by 별바라기

할머니는 오랜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셨는데 그 가느다란 무릎에 무릎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퉁퉁 붓고 물이 차 병원에 가셔서 진통제도 맞고, 주사기를 꽂아 고인물도 뽑아내곤 하셨다. 퇴행성 관절염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인데 그 시절 산후조리는 언감생심이었고 지금처럼 고무장갑도 없고 뜨거운 물도 쓰기 어렵던 시절. 산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쪼그려 앉아 아가의 기저귀를 빨고, 집안일에, 또 잠시 잠든 아이를 밭 가에 눕혀두고 아이가 깰세라 헐레벌떡 김을 매고, 늘 같은 자세로 이어진 노동의 결과는 뼈 마디마디와 관절에 너무도 잔혹하게 흔적을 남겼다.


영글지 못한 몸. 조혼을 하셨던 할머니는 결혼하시고서도 한 참 동안 아이가 없으셨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터울이 지는 사촌 형님들이 많으시다. 그리고 몇 해 후, 할머니에게 기적 같이 찾아왔던 기쁨의 첫 아이는 엄마품에서 그리 오래 머물지 못했고, 할머니도 모르는 먼산 돌무더기 아래에 할아버지가 비밀리에 묻어주고 오셨다 한다. 그리고 그다음 기적적으로 태어난, 아주 작게 태어난 아이가 우리 아버지셨다. 지금도 아버지의 초등학교 사진을 보면 반 여학생들 보다도 작은 키로 서 있는데, 그 사진을 본 우리 가족들은 아버지가 뒷줄에 서 있는 학생들을 배려해 무릎을 꿇고 있을 거라고 추측했지만 그 사진을 들여다 보신 아버지는 당신은 다 서계신 거였다고 하셔서 우리는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슬픈 이야기라고 했다.


결혼하기 전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나는 가끔 할머니의 선택적 비서 역할을 하곤 했는데, 그중 하나가 약국에 들러 파스류를 사서 오는 것이었다. 장시간 파스에 붙여진 할머니의 탄력 잃은 피부는 거칠다 못해 푸석푸석 쭈굴쭈굴해졌고, 나는 그러다 피부 썩는다고 잔소리하며 한 날 맨소래담을 사다 드렸는데 그게 퍽 맘에 드셨던지 할머니는 바디로션을 바르듯이 맨소래담을 온몸에 펴 바르셨다. 작은 통을 사다 드렸을 땐 소진이 빨라 나는 백 원이라도 싼 약국을 찾느라 시내에 있는 약국 투어를 했고, 나중에 대용량이 나오면서 나의 심부름 횟수는 줄어들었다.


어느 날 무심코 본 할머니가 맨소래담을 얼굴에 바르고 계신 걸 보곤 내가 기겁을 하고 달려가 눈에 들어가면 큰일 난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할머니는 그간 얼마나 단련이 되신 건지, 방에만 들어서도 눈이 시린 나를 두고 당신은 말짱하니 걱정 말라시며 나를 안심시키셨다. 그 덕분에 할머니방, 할머니가 지나간 자리는 늘 파스 냄새가 진동을 했는데 할머니가 그렇게 하셨던 건 당신에게 모기가 잘 안 붙는다며, 당신 스스로가 터득하신 '산에서 살아남기'의 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나의 생각은 모기 주댕이가 탄력을 잃고 쭈글쭈글한 할머니 살갗과 파스로 방패 쳐진 피부를 절대 뚫을 순 없을 것 같았다.


한날 일본 여행을 다녀오신 사무실 과장님께서 특별하게 살 만한 게 없으셨다며, 일본 파스가 유명하고 좋다는 말씀과 함께 나에게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네셨다. 나는 그게 뭔지 자세히 몰랐지만 옆에 앉은 언니 말로는 일본 여행 가면 꼭 사 오는, 성능 하나는 알아주는 동전 파스라고 했다. 나는 일본산에 검증도 안된 파스라는 점에서 그다지 끌리진 않았지만 그날 저녁 퇴근을 해서 엄청 좋은 거라는 홍보를 곁들여 반은 할머니에게 반은 아빠한테 쓰시라 나눠 드렸다.


"야야 이게 왜놈 꺼라 그랬나? 이상하지 요게 쪼맨한데 아주 시원타"


할머니는 나의 홍보 덕인지 누가 만들었든 간에 시원하고 좋은 물건이라며 흡족해하셨고 나는 그 말을 그냥 흘려들었다.


한날 할머니 무릎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뭔가를 보게 됐다. 내가 드린 동전파스는 아닌 듯하여 들여다보며

"할머이 그 무릎에 붙이고 있는 게 뭐대?"


"이거 니가 준 파스 자네"


"이거 파스 아닌 거 같은데?"


하며 한 개를 뚝 떼어보니 할머니가 기겁을 하시며


"마한년 이거 아침에 일어나 붙인 거여"


"아니 할머이 이거 파스 아니라고오"


맙소사. 밥상 다리 하나가 덜컹거려 붙이려고 문구점에서 사다 둔 고정용 패드를 할머니는 동전파스로 알고 붙이신 거다. 근데 슬마 붙이시곤 시원하셨을까? 그리고 다시 계절이 바뀌어 휴가철이 돌아왔고, 일본 여행을 간다 소문이 난 동료에게 조용히 찾아갔다.


"선배님 혹시 일본 가세요? 저 뭐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는 그 선배에게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을 사용해 동전파스를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선배도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이미 받은 터라 많이 사 올진 모르겠지만, 효손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일순위로 챙겨주겠다고 말했고 정말 약속을 지키셨다.


"할머이 이거 덕지덕지 막 붙이면 피부가 숨 못 쉬서 탈 나는 거 알제?"


"내 알았다. 덕지덕지 안 붙일게"


나는 할머니한테 동전파스 박스를 넘기며 아프지 말라는 말 대신 잔소리를 퍼부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좋은 시절을, 또 맘만 먹으면 언제든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해 내가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그런 편한 세상에 살고 있다. 동전파스의 성능은 누구나가 다 알지만 이제는 흔해져서 매력을 잃은 지 오래고, 그 보다 더 좋은 제품들이 나와 자꾸만 자꾸만 새로움을 쫓아가는 욕심꾸러기로 만들고 있다.


어느 날 등산을 다녀와 종아리가 아프다고 하는 종아리 위에 붙여진 시원한 패드. '유레카' 정말 이렇게 새로운 세상도 있구나!. 나는 얼굴에 붙이는 마스크 팩만 있는 줄 알았는데 종아리에도 발바닥에 붙일 수 있는 시원한 패드가 있었다니. 그런데 나는 몸에 뭔가를 붙이면 할머니의 패드 부착 사건도 생각이 나고 열 손가락 끝, 무릎, 어깨에 뭔가를 항상 덕지덕지 붙이고 계셨던 할머니 생각이 나서 한편으론 또 울컥해진다. 그렇게라도 덜 아프고 싶으셨을 간절한 그 마음. 그렇게까지 몸이 망가지도록 사셔야 했던 그녀의 일생.

나는 엎드려서 시원해지는 종아리를 느끼며 아이에게 신세계를 알려주어 고맙다는 말과 다음에 집에 갈 땐 부모님께도 사다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딸네미의 서비스 덕분에 스르르 졸음이 밀려온다. 꿈에서라도 안 아픈 할머니를 만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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