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바라기 Jun 08. 2024

야나할머니와 목단꽃

개미 개미

작약꽃

올해도 어여쁘게 목단꽃과 작약꽃이 피었다.

내가 어릴 적부터 해마다 피고 지고를 반복했으니 이 꽃들의 나이는 나보다 형님인가?


피는 꽃도 이쁘고,

지는 꽃도 이쁘고,

떨어진 꽃도 이쁘고,

꽃은 언제나 이쁘다. 그렇다.


몇십 년이 넘도록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우는 목단꽃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갔다가 줄기를 타고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엄청나게 크고 반짝이는 까만 개미들을 보았다.


"너희들 어디서 온 거야?"


그 어디에도 개미굴도 개미집도 보이지 않아 고개를 잔뜩 숙이고 빙빙 돌며 주변을 탐색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이젠 개미 하고도 대화하는 거야?"


""


"똥색시가 미쳤나 봅니다."


남편의 말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담 밑에 빤질빤질하게 윤기 나게 돋았던 초록색 잎들 사이로 실로폰채 같은, 아니 막대사탕 같은 꽃망울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꽃망울을 감싸고 있던 파란 꽃받침이 작아지면서 한 겹 두 겹 꽁꽁 싸매고 있던 꽃잎들이 부풀며 활짝 피었고, 그 속에 있던 노란 수술이 보석상자 안에 황금처럼 빛나고 있었다. 나는 꽃이 너무 예뻐 할머니가 나물을 다듬을 때 쓰시는 창칼을 가져다 가장 예쁘고 탐스러운 목단꽃으로다 다섯 송이를 잘라 금복주 소주병에다 꽂아 할머니 방 앉은뱅이책상 위에 얹어 놓고 스스로 엄청나게 흐뭇해하고 있었다.


"누가 이래 이삐게 꼬츨 꼬바놨나?"


산에 다녀오신 할머니가 방에 들어가시며 흐뭇한 목소리로 말씀하셨고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뒷걸음질 쳐 내 방으로 갔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 할머니 방이 소란스러웠다.


"이잉, 이 마한 것 달아난다. 얼른 붙들으라 저리 간대이"


할머니 목소리에 다급함이 담겨 있고 할머니 방에 들어서니 앉은뱅이책상 밑으로 머리를 들이민 언니가 있는 대로 팔을 뻗고 뭔가 꺼내고 있었다.


"왜서 그래?"


"으이그 간나야. 왜긴, 가 꼽아둔 목단에서 개미가 나와 할머이 밤새 한 잠도 못 잤대"


"여 함 보래이? 개미가 이래 물었잖나"


점 많고 시커먼, 쭈굴쭈굴한 할머니 팔뚝에 얼룩덜룩  빨간 자국이 몇 개 있었다.

이 무슨 당황스러운 얘긴가? 개미라니? 분명 소주병에 꽃을 꽂을 땐 개미가 한 마리도 없었는데...
목단꽃이 꽂힌 소주병은 할머니 방에서 쫓겨나 장독대 옆 구석에 얌전히 있었고 그 뒤로 다시는 목단꽃도 작약꽃도 꺾지 않았다.




목단꽃과 개미를 보고 있으니 그 시절로 또 휘잉~ 하고 날아갔다.

그날 할머니 방에서 잡은 개미는 모두 네 마리. 얼마나 새까맣고 컸는지, 그냥 눈으로 보아도 톱과 같이 생긴 이빨이 보이는 왕개미였다. 그리고 그 시절의 그 개미의 후손들이 지금도 목단꽃에서 열심히 황금을 캐고 있고, 나는 이 개미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 한참을 쪼그려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나 멀지 않은 곳에 개미집으로 가는 작은 입구가 있고 반짝반짝 까만 광채 나는 피부를 가진 개미들은 부지런히 들락거리며 먹이를 날랐다.  


나뭇가지와 덤불 사이를 야무지게 드나드는 개미를 보며 그날 목단꽃 속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할머니 방에 감금되어 야무진 언니 손에 잡혔던 개미 네 마리를 떠올리며 또 피식 웃었다. 어쩐지 그날 스스로 지나치게 흐뭇하더니만, 역시 예나 지금이나 사람 일은 끝까지 가봐야 아는 법. 맘처럼 되지만은 않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그래도 해마다 만나는 목단꽃도 작약꽃도 참 이쁘다. 점점 더 이쁘다. 세상엔 예쁜 것들이 참 많다.

작가의 이전글 야나할머니와 박새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