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와 꺼병이

by 별바라기



"야야 누가 있나? 이리 와본나"


방바닥에 배를 깔고 숙제를 하고 있던 내 귀에 할머니의 목소리가 여러 차례 들려왔다. 듣고도 안 들은 척하자니 맘이 불편하고 또 막상 따뜻한 방바닥에서 배를 떼자니 그것도 귀찮아서 갈등하고 있는 사이 동생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언니야 빨리 와봐 깜짝 놀랄만한 일이 있어."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고 어슬렁어슬렁 마당으로 나갔다.


"니 집에 있었나? 그라문서 우째 그래 대답을 안하노 마한년"


나는 동생이 목이 빠져라 쳐다보고 있는 할머니의 다래끼 안을 들여다보니 새끼 새 두 마리가 보였다.


"이게 뭐야? 병아리도 아니고 까치 새끼도 아니고?"


내가 할머니를 쳐다보며 묻자


"니 이게 문지 아나?"


하고 신나는 표정으로 되물으셨다.


"언니야 이거 꿩 새끼래. 엄청 귀엽지?"


"꿩 새끼? 생각보단 몬생겼네. 근데 이거 뭐 먹고살아? 금방 죽는 거 아녀?"


듬성듬성 털이 난 새끼 새들을 바라보며 할머니가 산에서 데려온 새끼 새들이 오래 살지 못할 거 같은 걱정이 앞섰다.


"마한년, 죽긴 왜 죽어 니덜이 잘 키우믄 되지"


할머니는 광에 들어가 빈 라면상자를 하나 가져오시더니 새들을 집어넣고 간장 종지에다 물 하고 좁쌀을 넣어주시곤 나무판자로 덮으셨다.


저녁에 마당에 경운기가 들어서자마자 동생이 쪼르르 달려 나가 할머니가 꿩 새끼를 잡아 온 걸 보고했고 상자 안을 슬쩍 들여다보신 아빠는


"거 산에 살게 냅두지 뭐하러 잡아왔대요?"


"야야 내가 이걸 우째 잡았는지 아노? 내가 신데이 재를 막 넘어가는데 어서 자꾸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는 기라. 그래서 가만히 앉아서 소리 나는 데를 봤더니 야들이 글쎄 풀숲에 돌아다니대. 근처에 애미가 있어서 델꾸러 오겠지 하고 암만 기다려도 안 와 그래서 내가 잡아 왔지. 근데 야들이 을매나 빠른지 내가 잡는데 엄청 애묵읐다."


할머니는 아빠한테 당신의 활약을 자랑하듯 말씀하셨지만, 부양가족이 느는 부담이 있으셨을까? 아니면 털도 다 나지 않은,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새들이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거로 예측하셨는지 아빠는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동생과 나는 틈만 나면 할머니 방에 들어가 새들을 들여다보는데 정신이 빠졌고, 좁쌀 먹고 물 먹고 좁쌀 먹고 물 먹고 그러면서 물 마실 때는 꼭 한 번씩 하늘을 쳐다보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동생이 알약을 먹을 때 억지로 넘기려고 목을 뒤로 젖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름도 없는 새끼 새들은 솜사탕같이 연약한 털들이 힘을 얻어가며 할머니 방에서 잘 자라났다.


그리고 얼마 뒤 하교한 나는 으레 할머니 방으로 갔고, 라면 상자가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근처 어디에 있겠거니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는데 라면상자와 새 모이통 하고 물통이 쇠죽 때는 가마솥 앞에 불쏘시개로 버려져 있었다. 새가 아무리 컸어도 훨훨 날아갔을 리는 없을 테고, 빈집에 얼른 누군가가 와서 이유를 설명해 주길 바라던 그때 놀러 갔던 동생이 들어오며 하는 말이 낮에 할머니 방에 고양이가 들어가 새들을 먹었다는 얘기였다. 아까부터 마당 담벼락 위에 앉아서 잠을 자고 있던 저놈이 범인이라니 나는 돌멩이를 하나 주워서 고양이를 향해 던졌고 벽을 친 돌멩이 소리에 놀랐는지 고양이는 벌떡 일어나 도망을 갔다.


그 일을 계기로 할머니는 장에 가셔서 나물 판 돈을 병아리 10마리로 바꿔 오셨고, 우리 집엔 고양이가 침범할 수 없는 튼튼한 닭장도 생겼다. 삐악 거리는 병아리는 정말 귀엽기도 하지만 문제는 똥냄새였다. 감히 누가 이렇게 이쁜 병아리한테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걸 상상이나 할까….


현재 우리 집엔 앵무새 6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는데 이 아이들도 다 사연 있게 우리 집에 오게 된 아이들이라 본의 아니게 나를 대모님이라 부르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알이 부화하고 이유식을 먹이며 새들을 키우는 과정에 할머니가 데리고 왔던 꺼병이가 이 정도쯤 자랐던 아이였구나 하는 짐작이 되면서, 지금 내가 하는 모든 활동에 선행학습을 할머니가 시켜 주셨음을 떠올리곤 웃음이 난다. 암만 생각해도 할머니는 정말 훌륭한 약초꾼이자 식물재배가 이시며 사육의 달인이셨던 것을 왜 그때는 몰랐을까? 나는 할머니랑 그 긴 세월을 한집에서 살았는데도 할머니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았다는 것을 요즘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더욱더 크게 느끼고 있다. 그리움만큼 비례하게 죄송한 맘만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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