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네 고추 부각

부각을 따라 소환된 기억

by 별바라기

"야야 누가 있나?"


"할머이 내 여 있다."


"누구 내하고 풋꼬치 따러 안 갈래?"


"꼬추는 왜에?"


"왜긴 스리 오기 전에 따다 찔라그라지"


나는 언제나처럼 어깨에 다래끼를 맨 할머니를 따라 고추밭에 갔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해마다 돌아오는 어린이날이 느므느므느므 싫었다.

더 어렸을 적엔 누가 어린이날을 일부러 만든 것인지 찾아가 따져 묻고 싶은 적도 있었는데, 물론 학교를 가지 않는 것과 하루 종일 텔레비전이 나오는 것은 좋은 이유였지만 해마다 아침부터 비가 오지 않는다면 무조건 고추모를 심는 날이었기 때문에 텔레비전 시청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당시 고추모를 심을 땐 집집마다 돌아가며 품앗이를 했는데 친구네는 먼저 심거나 나중에 심두만 희한하게 우리 집은 꼭 어린이날 못 박아둔 당번처럼 날을 받았고, 동생들 대비 힘이 좋고 발이 빠른 나는 아빠가 경운기 한가득 실어온 고추 모판을 밭가와 이랑 사이사이에 규칙적으로 갖다 나르는 일을 전담으로 했다. 하지만 이랑을 타 넘어 다니다 보면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금세 힘이 빠졌는데 밭가에 앉아 넓디넓은 밭을 바라보고 있으면 미리 씌워둔 비닐 위로 아롱아롱 올라오는 아지랑이 사이로 며칠 전부터 뉴스에서 보여주던 튤립이 가득 핀 용인 자연농원의 모습이 떠올랐고 지금 여기가 자연농원 튤립 정원으로 변신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었다.



그렇게 어린 동생들 손까지 빌려 심긴 고추모는 쑥쑥 자라 작고 하얀 꽃을 퐁퐁 터트렸고 꽃이 떨어지면 작고 파란 고추들이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했는데 삼복더위 무렵엔 고추밭 붉음이 절정에 달했고 나는 그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가 얄미웠다. 여름방학과 기가 막히게 맞물리는 고추 수확 일은 사흘이 멀다 하고 진행되었는데 고추를 따며 불시 검문 하 듯 나는 휙 휙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는데 이유는 마법사가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내가 일하는 그 사이에도 고추가 막 익어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똑 똑 똑' 하고 고추 꼭지가 떨어지는 소만 들리는 고요한 고추밭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들이 많을수록 할머니와 부모님은 일할 맛이 나신다며 싱글벙글하셨지만 붉은 고추를 따는 일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일이었고 그 사실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




내가 국민학교 3학년 여름. 학교 옆으로 흐르는 큰 도랑이 장맛비에 범람하고 운동장에 배수까지 늦어지면서

내 허리까지 물이 차는 대단한 수해가 났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모든 구덩이 구덩이마다 시뻘건 진흙탕 물이 넘쳐났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닥치는 대로 물건들을 훔쳐 달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흙탕물이 점점 맑아지고 물도 줄어들면서 드러난 땅에 지형과 구조물들의 배치는 달라져 있었고 식물들은 뽑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거나 흙에 묻혔거나 죄다 누워 있었는데 우리 밭에 고추모들도 죄다 누워 취침 중이었다. 그리고 간신히 서 있던 몇 포기의 고추모도 숨 막히게 뜨거운 햇빛을 이기지 못하고 비실비실 말라갔고 고추 밭엔 매캐한 매운 냄새와 함께 몹쓸 병이 퍼져 붉은 고추는 하얗게 말라버렸고 그해 겨울. 나는 고추부각을 구경할 수도 맛볼 수도 없었다.




나날이 짧아지는 햇살이 곧 다가 올 계절을 알려주고, 곧 서리가 내릴 것을 미리 아셨던 할머니와 엄마의 손길은 점점 더 바빠지신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뚝 떨어진 산골의 기온에 맥을 추지 못하고 초록색에서 멈춰버린 풋고추는 할머니와 엄마손을 거쳐 바늘에 찔려 간장에 삭힌 초고추로 더 작은 고추들은 고추부각으로 변신했는데 이 고추부각은 겨울철 우리들에겐 반찬이 아닌 간식 같은 존재였다.


"할머이 안 매운 걸로 골라줘"


"기다리 보래이 밀갈글 마이 묻힌 아가 들 매울기여"


열심히 부각 통을 뒤적거린 할머니는 통통하고 바삭하게 생긴 고추부각을 몇 개 골라 동생의 손바닥 위에 올려 주셨다.


"느도 하나 무봐라. 맛나대이"


"난 안 무도 돼"


누가 보면 동생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어서 양보한 줄 알겠지만 그건 결코, 절대 아니었다.

지난번 볶아진 고추부각을 겁 없이 먹었다가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극한 고통을 느꼈던 나는 이번 고추 부각도 매울 거라는 짐작에 시도도 하지 않았고 동생은 안 맵다고 하는데 나는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이 매운 것 같았다.



맛있어져라 부각 부각

엄마는 올해도 고추밭에서 열심히 작은 풋고추를 따다 배를 가르고 밀가루 옷을 입혀 쪄서 가을볕에 바짝 말리신 고추부각을 한봉 다리 보내 주셨는데

지나간 주말 고추부각을 볶았다.


엄마는 언제부턴가 부각을 볶은 뒤 물엿에 버무려 주시는데 나는 어릴 때 할머니와 엄마가 해 드시던 방법대로 기름에 볶다가 약간의 소금, 설탕은 넉넉히 뿌려 먹는 요리 방법을 쓴다. 물엿을 선호하지 않음은 이가 좋지 않으신 시부모님의 영향으로 남편 또한 이에 들러붙는 음식을 별로 즐겨하지 않아서인데 이 남자하고 너무 오래 살았나 보다 나도 어느새 남편의 식성을 닮아 있다.


맛있게 볶아졌나 하나 집어 바사삭 소리를 내는 고추부각을 먹다 보니 할머니 방에서 부각통을 붙들고 연신 물을 들이키며 과자 맛이라고 세뇌를 하며 동생들과 꺼내 먹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고, 꽤 깊숙한 마음 구석에 숨어 있던 마음은 수해가 나서 고추밭이 초토화되었던 그때. 속상해하시며 마지막 한 포기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셨던 어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이상 여름방학 동안 고추를 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좋아했던 철부지 시절이 두고두고 죄스러움으로 남아 있다.


해가 가는 즈음.

고추부각에게 이끌려 나온 오래전 기억의 소환. 부끄러움을 꺼내 본다.

새해엔 좀 더 홀가분한 맘으로 살 수 있을까?

여러모로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도 브런치에 올려주신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함께 웃고, 울고, 감탄하고, 찔리고, 생각하고 배우는 시간들을 가지며

나는 한 살 더 먹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사랑을 달아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과 작가님들

올 한 해 참 감사했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2022년이 저물어 가는 길목에 야나할머니의 손녀 "별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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