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와 메뚜기

이젠 고만 무도 되겠다.

by 별바라기
너의 뼈대는 남아 있기를...

"휴가 나오면 뭐가 젤 먹고 싶어?"


"김치 등갈비찜이랑 감자탕, 생선구이요"


12월 말 휴가가 예정되어 있는 아들과의 통화에서 사전 접수한 내용이었다.


"여보 아들은 등갈비찜이랑 감자탕이랑 생선구이가 먹고 싶대"


"등갈비찜 감자탕 나도 좋아"


"오케이 콜~"


갑작스레 무인기가 출현해서 난리가 있었지만 아들은 예정대로 두 번째 휴가를 나왔고 나와 남편은 정육점을 세 번이나 들른 노력 끝에 등갈비를 샀다.




조카 휴가 나오면 멕이라 동생이 하사한, 냉동실에 고이고이 모셔져(?) 있던 옥돔을 꺼냈다. 나도 이 생선 하곤 그리 친하지 못하게 살았던 터라 우선 생김새와 마주친 두 눈에 당황했고 집에서 제일 큰 프라이팬임에도 밖으로 한 참 튀어나간 꼬리 덕분에 뚜껑을 닫지도 못하고 멀찌감치 물러나 실눈을 뜬 채 생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근데 이 냄새 어디서 맡아봤던 냄샌데 퍼뜩 기억이 안 나네. 분명 내가 아는 냄샌디'


특히나 후각이 예민해 바람도 비도 계절마다 나는 냄새가 있다고 말하는 나는 냄새로 시절과 사건을 기억하는 버릇이 있는데 야나할머니 글을 쓰면서 그 재주가 좀 더 는 것도 같다.


드디어 차려진 식탁에 둘러앉았다.


"이게 모냥새는 빠지지만 그래도 제주도 옥돔임. 다들 은혜로 드셔주시길"


나는 생선을 구울 때 생선 형태를 없애 버리는 기가 막힌 재주가 있는데 가족들도 이젠 생선 비주얼에 크게 놀라지도 않고 그러려니 기대 않고 먹는다.


"근데 이 옥돔냄새 왠지 익숙하지 않아? 분명 아는 냄샌디"


나의 말에


"우리 집에선 첨 먹지 않나?"


남편이 대답했다.


"분명 내가 아는 냄샌디"


"엄마 또 이상한 말 하려거든 아예 시작도 하지 마"


둘째 아이가 생선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옥돔 담백하니 맛있는 대요"


큰아이 말에 나도 흐뭇해하며 한점 집어 먹었다.


"아하! 나 알았다. 이거 메뚜기 맛이네"


"아 엄마 뜬금없이 무슨 메뚜기 타령이야"


작은아이가 기겁을 하며 말했다.


"진짜네 메뚜기 맛이 나는데"


다행히 남편이 거들어 주어 나는 몹시도 뿌듯한 표정으로 작은아이를 바라봤고


"다들 엄마 저 표정 봐봐. 엄마 그 뿌듯한 표정 금지"




"니 낼 아침에 내하고 메띠기 잡으러 안 갈래?"


"할머이 메뚜기 잡으러 갈라고?"


"이슬 마르기 전에 가야 마이 잡아오지"


"을매나 일찍 갈건대?"


"아침 묵기 전에"


"그라믄 할머이가 깨우러 올 끼여?"


"깨우믄 단박에 일나래이"


다음날 아침 일찍 할머니는 나를 깨우셨고 전날밤부터 메뚜기 잡이에 최적화된 복장을 입고 잠을 청한 나는 벌떡 일어나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어부바 메뚜기

"벼가 고개가 무거워 건딜믄 쓰러지니 논 깊숙힌 드가지 말고 논디렁 따라 가생이 꺼만 잡으래이"


나는 논까지 걸어갔으나 아직 싹 깨지 않은 잠과 싹 걷히지 않은 안개, 밤 새 내린 이슬 이불을 덮고 있는 미끄런 논두렁 위에서 떨어질까 허부적 거리고 있었다.


"니 여 봐보래이. 벼 잎사구에 요래 메띠기가 붙어 있음 이래 휙 하고 잡음 되지"


할머니가 시범을 보이시며 벼 잎사귀에 붙어 졸고 있던 메뚜기를 잽싸게 낚아채 막걸리 병에 담으셨고 나는 어부바를 하고 있는 메뚜기를 잡을 때마다 신이 나서 어깨가 들썩들썩했다. 한 참을 논두렁을 따라 빙빙 돌며 메뚜기를 잡는 사이 산 위로 해가 떠올랐고 그 덕분에 잠에서 깬 메뚜기들이 파다 다닥 소리를 내며 날기 시작하자 점점 더 허탕 치는 횟수도 늘어났고 아침 먹을 시간도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을 드시고 난 할머니는 막걸리 병을 탈탈 털어 내가 우주선이라 부르던 찜기를 깔은 냄비에 메뚜기를 쏟자 잠이 깨 공간이동을 당한 것을 안 메뚜기들은 탈출을 시도하며 사방으로 튀었다. 동생들과 나는 날아가기도 하고 뛰어 달아나는 메뚜기를 끝까지 쫓아가 손에 쥐고 와 담았고 할머니는 가스불을 켜셨다.


"할머이 그냥 이래 쌂아 묵는기여?"


"아니 이래 찌가꼬 다시 따듬으야지"


잠시 후 할머니는 김이 폴폴 나는 냄비 뚜껑을 열어 메뚜기를 꺼낸 뒤 날개와 더듬이, 까끌까끌한 다리 끝을 떼내라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리는 짭조름한 맛이 나는 메뚜기볶음 요리를 먹었는데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생김새도 맛도 식감도 매력은 없었다.


그 뒤로도 나는 몇 번 더 할머니와 메뚜기를 잡으러 다녔는데 그 이듬해 배추가 금추로 변신한 이후로 갑자기 동네에 붐이 일은 배추 농사로 집집마다 사흘이 멀다 하고 농약을 치기에 바빴고 나는 더 이상 메뚜기를 잡으러 논엔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진짜 씹을수록 메뚜기 맛이 나는데"


"메뚜기가 이런 맛이었을까요? 초등학생 때 할머니가 주셔서 먹은 기억은 있는데 맛은 정확히 기억 안 나요"


남편의 말에 큰아이가 대답했다.


"나 클 땐 방아깨비도 구워 먹었어 삼촌이 엄청 먹었지"


"엄마 그 시절엔 방아깨비도 단백질 아니었을까요?"


"아니 어떻게 외갓집 식구들은 동식물도감에 나오는 것들 중에 안 먹은 게 없어. 엄마 또 뭐 먹었는지 말해봐"


작은 아이의 놀림에 나는


"엄만 그래도 아빠처럼 두더지 고기는 안 먹었어"


"에?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그 두더지? 아빤 두더지를 왜 먹은 거야?"


"아빠도 할머니가 주셔서 먹은 기억이 있지. 한 네 살 다섯 살 때? 근데 두더지가 생각보다 맛있던 게 기억이 나."


"맛있으니까 잡아서 아빠를 주셨겠지. 근데 설마 뱀이나 쥐는 안 먹었지?"


"나 아는 사람중에 쥐 먹는 사람 있는데"


"진짜 쥐를 먹는다고?"


"어 엄마 어릴 때 살아있는 쥐꼬리를 잡고 입 안으로 이렇게 넣어서 먹는 사람이 있었어"


"진짜 사람이? 살아있는 쥐를?"


"사람이지. 드라마에 나왔으니까"


나의 장난이 시작된 걸 알아버린 둘째가 단호하게 말했다.


"자 이제 그만!"




어릴 적 뒷동산에 오르거나 길을 걷다 보면 방아깨비가 파드닥 소리를 내며 날았고 나는 끝까지 쫓아가 잡았다. 그리고 늘씬하고 긴 뒷다리 두 번째 마디를 엄지와 검지로 잡고 조금 기다리다보면 방아깨비가 달아나려고 까딱까딱 움직였는데 나는 그 타는 속도 모르고 꼬박꼬박 노래를 불렀다.


아침방아 찧나

점심방아 찧나

저녁방아 찧나


반복해서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가져가면 할머니나 아빠가 쇠죽불이나 연탄불에 구워 까맣게 그을린 껍질을 툭툭 털어 우리들의 입에 넣어 주셨고 허약했던 막냇동생이 젤 많이 먹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동생의 허약체질이 안쓰러워서 먹이셨을 거라 짐작은 하지만 혹시 언젠가 이 글을 읽게 될 올케나 조카들이 알게 되면 두더지를 먹은 남편처럼 두고두고 놀리려나?


사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메뚜기도 방아깨비도 그다지 맛은 없었다. 그리고 윙윙 바람과 싸우며 안테나를 간신히 돌려 지지직 거리던 텔레비전 화면을 진정시키며 보던 "브이"라던 드라마에서 흰 쥐를 먹던 외국 배우의모습은 그 어린 내겐 꽤나 충격이었는데 지금도 후덜덜 소름이 돋는다.


이제 다시는 먹을 수 없는 메뚜기나 방아깨비를 떠올리며, 이번 생엔 고만 무도 되겠다 싶다.


keyword
이전 08화야나할머니네 고추 부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