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근무평점자, 함양군수 김종직

5년 동안 10번의 평가에서 연속 만점을 받다

by 두류산

5년 동안 열 번을 최고등급으로 십고십상(十考十上)을 하다


우리는 조선시대 지방 수령을 생각하면 흔히 조병갑이나 백낙신과 같은 탐관오리가 떠오른다.

하지만 지방 수령들이 모두 백성의 고혈을 빠는 탐관오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473년 성종 4년 7월 18일.

임금은 이조에 명을 내렸다.

"함양 군수 김종직(金宗直) 등은 정치를 잘한 공적이 탁월하니, 지방 수령의 임기가 차서 다른 자리로 옮길 때 포상하라.”

실록에 의하면, 성종은 맡은 고을을 뛰어나게 잘 다스린 김종직을 지방수령의 임기가 끝나고 조정에 돌아오면 잊지 말고 특별히 품계를 올려주어 벼슬을 내리라고 명한 것이다.


김종직이 누구인가. 훗날 그를 평가하는 내용을 실록에서 찾아보자.

1569년 선조 2년, 좌승지 기대승이 경연에서 임금에게 조선 유학의 계보에 대해 아뢰었다.

"성리학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말씀드리면, 정몽주가 동방 성리학의 시조이고, 길재가 정몽주에게서 배우고, 김숙자는 길재에게서 배웠습니다. 김종직은 김숙자에게서 정몽주의 학문을 전수받았는데 행실 또한 바르고 단정했으며 후진을 가르치는 데 정성을 쏟았습니다. 김종직의 제자가 김굉필이었고, 조광조는 김굉필에게 배웠습니다.”

실록에 의하면 김종직은 동방 성리학의 시조인 정몽주의 학통을 이어받아 제자를 가르친 조선 선비의 큰 스승이다.


훗날 사림의 조사(祖師, 스승의 스승)가 된 김종직은 함양의 백성들에게 좋은 정치를 베풀어, 경상도 관찰사가 해마다 6월과 12월 두 번씩 지방 수령의 근무성적을 평가할 때 빠짐없이 최고 등급의 성적을 얻었다.

관찰사의 지방수령 평가는 상중하 세 등급으로 나누어지고, 각 단계에서도 상중하 세 등급으로 나누어, 총 아홉 등급으로 평가하였다. 대개 다섯 번 평가에 세 번을 최고 등급인 상상(上上)을 받으면 품계를 올려주었다.


성종은 최고 등급을 5년 동안 열 번을 연속해서 받아 십고십상(十考十上)인 함양 군수 김종직의 치적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임금은 이를 기특하게 여겨 이조에게 명하여 김종직이 수령의 임기를 마치고 자리를 옮길 때 염두에 두라고 명하였다.


성종 4년 7월 25일, 사헌부와 대사헌 서거정은 포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상소를 임금에게 올렸다.

“관찰사가 제대로 평가를 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공적의 평가 이유를 일일이 기록하여서 성상께 아뢰도록 하고, 조정 대신 모두가 그 기록을 인정한 연후에야 포상하는 것이 마땅하오니, 지금 내리신 명령을 거두어주소서.”


성종은 대사헌의 상소를 읽고 답을 내렸다.

“그동안 경상 감사의 장계에서 김종직의 칭찬을 자주 보았다. 얼마 전에도, 관찰사 정효상은 김종직 등이 정치를 잘하여, 고향을 떠난 유민(流民)들이 돌아왔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과인이 승지에게 명하여 그 성명들을 기록하였다가, 벼슬을 옮기는 날에 포상하고자 한 것이다. 너희들은 포상이 어떤 정도일지 어찌 알고서 이와 같이 말하는가?”


사실 십고십상(十考十上)을 받으려면, 5년 동안 계속하여 고을을 잘 다스려야 했다. 임기가 대개 1년인 관찰사가 다섯 번이나 바뀌는 데, 어떻게 다섯 관찰사의 평가를 모두 의심할 수 있겠는가.


그럼, 김종직이 도성에서 천리 밖에 떨어져 있는 지리산 자락의 궁벽한 함양에서 어떤 정치를 펼쳤기에 십고십상을 받고 관찰사와 임금이 크게 칭찬했는지 살펴보자.


(다음 편에 계속)






(일러스트 출처)

https://blog.daum.net/inseung/6015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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